국군이 서울 수복을 하고 몇 달 후 외삼촌이 소식을 전해왔다.
무사히 서울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과 함께, 인민군에게 혹시 고초를 겪지 않았냐는 안부를 묻는 인사였다.
할머니는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우리 집과의 연을 계속 이어가는 외삼촌을 고마워했지만, 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나 잘 대처하는 외삼촌을 보면 좋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불편했다. 경무대에 들어가기 위해 아버지에게 돈을 받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였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엄마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계산적이고 자기 일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모습이 그저 나는 싫었다.
그런 삼촌이 그나마 우리 집에 보탬이 되었던 건 전쟁통에 고아가 되어 우리 집에 버려진 서울 아이의 작은 아버지를 수소문해 찾아준 일이었다. 대구의 처갓집에 갔다 올 때까지 잠시 맡겨놓고 가겠다는 편지만 달랑 놓고 갔던 그 아이의 유일한 피붙이인 사람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 아이의 작은 아버지는 서울 수복 후 대구에 있던 자기 아내와 서울 본가로 돌아와 있었다. 게다가 전쟁고아가 된 그 아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장의 사장이 되어, 아이는 까맣게 잊은 채로 버젓이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삼촌은 경무대 직원임을 밝히고 그 사람을 만나 아이를 찾아가지 않은 이유를 다그치고 데려가지 않으면 경찰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겁을 잔뜩 먹은 그 아이의 작은 아버지는 그 일이 있고 사흘 만에 그에게는 유일한 질녀이자 자기 형님의 혈육을 데리러 우리 집을 찾아왔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작은 아버지가 찾아온 날 보인 행동은 우리 모두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서울 집으로 돌아가자는 작은 아버지에게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쓴 것이다.
"아니, 은수야, 작은 아버지가 일찍 데리러 오지 않아서 화가 난 게야? 왜 집에 가지 않겠다는 거니?"
그 아이는 작은 아버지의 말에도 대꾸하지 않고, 방에서 꼼짝 않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 돌아가고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서 좀 늦어진 것뿐이니 화 풀고 어서 가자."
"......."
"더 늦으면 밤늦게까지도 서울 집에 가기 어려우니 서두르자꾸나."
그 아이의 작은 아버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 보지만 막무가내로 고집부리는 그 아일 어찌하지 못하고 있을 즘 둘째 기창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전쟁이 휴전을 논하는 중에도 중학생이 된 기창이는 학교를 다녔고, 기창이가 학교를 가는 낮 동안에 그 아이는 무료해하며 기창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큰 동생 기만이는 인민군의 차출을 면하려고 절로 피신을 해 집에 없었고, 나는 집안 일과 아버지, 할머니를 수발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그 아이와 동무가 되어준 사람은 둘째 기창이가 유일했기 때문에 유독 기창이를 따른 것이다. 물론 새엄마와 옥희, 성훈이, 막내 기호는 한 집에 살았지만, 그 아이를 군식구로 생각해 쌀쌀하다 못해 눈칫밥을 먹게 했다.
기창이가 집에 온 소릴 들은 아이는 반갑게 방에서 나왔다. 그러면서 방에서 훌쩍거렸는지 눈가에 눈물 자국이 남은 채로 그제야 작은 아버지라는 이에게 말했다.
"저 오빠도 우리 집 같이 가면 안 돼요?"
순간 우리는 모두 귀를 의심했다. 기창이와 함께 서울에 가겠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믿기지 않았고,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우리 기창이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 아이의 작은 아버지는 어쩔 줄 몰라했고, 내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우리 기창이는 중학교를 마쳐야 하니 당장은 서울로 갈 수 없다는 것과 그 아이가 서울에 올라가도 우리 집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놀러 와도 된다는 약속을 해주고 나서야 그 아이를 서울로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전쟁통에 서울에서 우리 집에 왔다 일 년쯤을 살다 간 그 아이는 서울로 돌아갔고, 우리 집은 또 다른 문제로 심난해졌다.
그것은 바로 큰 동생이 출가(出家)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온 일이었다. 전쟁이 나고 우리 국군이 인민군에 밀려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지키고 있을 무렵 우리 동네까지 들어온 인민군은 동네 청년들을 인민군으로 만들어 데려갔다. 그때 큰 동생이 화를 면한 것은 외삼촌이 서울이 인민군에게 점령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피난 가라고 일러주면서 기만이는 절에 숨어 있으라고 가르쳐 줘서 가능했다. 큰 동생 기만이는 사서삼경을 공부할 정도로 한문에 능했던 아이였는데 아버지가 재혼을 하고 새엄마가 들어오면서, 새엄마는 더 큰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기만이를 시셈하며 서울 가는 걸 막았었다.
그렇게 집에서 지내던 중 전쟁이 났고, 인민군이 차출해 갈 상황이 되자 이모할머니 절에 보낸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화를 피하려다 더 큰 걱정거리가 생긴 꼴이 되고 보니 할머니는 대를 끊길 수도 있다며 큰 걱정을 하셨고, 아버지는 호통을 치실 기력도 없으셔서 속수무책으로 자리를 보전하시고 있었다. 그때 속으로 좋아할 새엄마를 생각하니 난 속에 불이 났다. 기창이는 아직 어리고 아버지는 자리에 누우시고 할머니 또한 연로하시니 기만이 없이 나 혼자 새엄마를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새엄마는 아버지 자식도 아닌 성훈이를 자꾸 큰 공부 시키겠다고 서울에 보내겠다며 자리를 잡게 땅을 팔아 돈을 마련해 달라며 아버지께 채근을 했다. 아버지는 또 어쩔 수 없이 땅을 팔 생각을 하신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의 욕심과 집착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잠을 청하기도 힘들다. 오늘도 엄마가 더욱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