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지원팀 막내 하얀 얼굴 사원. 그는 사무직이자 관리직으로, 회사 내부 사무 공간에서 일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뿐만 아니라, 사업지원팀의 직원들이 모두 똑같다. S 팀장, T 과장, U 과장, V 차장, W'2 사원 모두 구분할 것 없이 같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점심 먹을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파티션 내 자리에 앉아있다. 그나마 막내인 그의 활동 반경이 넓은 편에 속한다. 가끔 창고에서 키보드/마우스 따위를 불출해야 해서 층을 이동하거나, 출력한 전표를 제출하러 위층 관리팀을 다녀오거나.
그에게 배정된 업무상 회사 건물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사업지원팀 본연의 업무로 바깥에 나가야 하는 경우가 딱 하나 있다. 내용증명을 발송하러 우체국에 갈 때다.(내용증명도 왜 굳이 사업지원팀에서 송부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왕복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그는 우체국을 갈 때가 참 즐거웠다. 억지로 붙잡혀있던 죄수마냥, 바깥에 나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즐거웠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도, 경적을 울리며 지나다니는 차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빛 나뭇잎도, 살갗을 태울 것처럼 내리쬐는 태양도, 혹은 비가 떨어질 것 같이 우중충한 회색빛 하늘도. 그는 바깥공기를 참 좋아하고, 그리워했다.
그랬던 그에게 나들이의 기회가 생겼으니, 바로 '스프레드시트 교육'이다.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은 영업팀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C 대리의 건의로부터였다. C 대리는 간간히 사업지원팀에 찾아와, 후임인 A 사원에게 스프레드시트 교육을 받게끔 하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전표를 치던 그는 귀를 쫑긋 세우며, 자신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업지원팀은 구성원들의 성격과는 상반되게, 꽤나 보수적인 팀인 모양이다.
A 사원은 스프레드시트 교육을 받기 위해 며칠간 회사 외부에서 교육을 수강하는 것이 확정됐다. 교육받는 동안에는 회사에 올 필요 없이, 교육받는 장소로 직접 출퇴근을 하면 된다고 한다. 언뜻 듣기만 해도, 상당히 자유로울 것 같다. 그도 가고 싶지만, 잠자코 있는다. 창고에서 물건 불출하고, 전염병 전표 치고, 전염병 전표 출력해서 위층 관리팀에 제출하고. 그가 하는 업무에 '스프레드시트'를 쓰는 것이 있나? 스프레드시트라는 것이 애초에 무엇인가? 구글에서 만든 엑셀 같은 거라는데. 근데 그는 엑셀조차도 제대로 쓰고 있나?
그를 구원해준 것은 C 대리였다.
C 대리 : 얼굴아, 요즘 어떤 일들 주로 하니?
그 : 아 대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염병 전표 처리, 전염병 전표 제출, 전염병 백신 접종 현황 파악, 그리고 창고에서 신규 입사자 물품 불출 등을 맡고 있습니다!
C 대리 : 그래 음... 혹시 T 과장님이나 U 과장님이 어떤 일 하시는지는 잘 알아?
그 : 실적 관리하신다고만 들었는데, 잘은 모르겠습니다.
C 대리 : 인수인계 받고 있어?
그 : T 과장님 업무를 많이 받게끔 하겠다고 하시는데, 바쁘셔서 그런지 아직 본격적으로 알려주시진 않았습니다. 원가랑 매출 부분 어떻게 알려주겠다고 말씀해주시긴 했습니다.
C 대리 : ... 그래 아무래도 바쁘시니까. T 과장님은 특히 맨날 야근하시더만
그 : 맞습니다.
C 대리 : 너무 바쁘셔서 인수인계할 여유가 아직 없으신 거일 수도 있고. 사업지원팀에서도 엑셀 많이 쓰지?
그 : 네, 많이들 쓰시는 것 같습니다.
C 대리 : 내가 보기엔, 스프레드시트 교육이 우리보다도 오히려 사업지원팀에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스프레드시트가 지금 우리는 단순히 공유용, 협업용으로만 쓰고 있는데. 이게 깊이 공부해보면 활용 방향이 정말 다양해.
그 : 아...
C 대리 : A는 이번에 교육 들으러 갈 거거든. 사업지원팀에서도 이참에 같이 배웠으면 좋겠는데. 물론 아주 고급 기능을 알려주는 건 아니고, 입문자용 교육이야.
그 : 아...
며칠 뒤
C 대리 : S 팀장님께 말씀드렸어. 얼굴이 너도 A랑 같이 스프레드시트 교육 들으러 다녀와. 장소랑 일정은 A한테 듣고.
그 : (?!!) 감사합니다!
그 : 팀장님, 스프레드시트 교육 다녀오겠습니다.
S 팀장 : 그래~
이때의 그는 몰랐지만, 그는 C 대리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