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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번째 기업, 34번째 면접

'니체'와 수치심

by 하얀 얼굴 학생

최종 면접 당일, 그는 책상에 앉아 있다. 28번째 기업은, 1차 면접에 이어 최종 면접도 화상으로 진행한다. 화상 면접 프로그램을 켜놓고, 그는 대기실에서 대기한다. 이윽고 까맣던 화면이, 회의실 전경으로 바뀐다. 회사 측에서 쓰는 카메라 문제인지, 화면 상태가 썩 좋진 않다. 카메라는 회의실 중앙을 비추고 있으며, 면접관들은 커다란 테이블 양옆에 앉아 있다. 기본적으로 면접자들에게 보이는 것은 면접관들의 옆모습이다. 면접관들은 질문을 할 때, 혹은 정면 화면(아마 프로젝터인 듯하다)을 바라보고 싶을 때마다 앉은자리에서 몸을 비틀거나 의자를 틀어 앉는다. 그럴 때마다 면접관들의 정면 모습이 살짝 보인다.



28번째 기업, 해외영업 직무 신입 최종 면접 (화상 면접)


면접자 : 그를 포함해 총 4명 (남자 3/ 여자 1)

89kg까지 쪘다가, 살을 20kg 감량했다는 남자 면접자 1

화상면접 툴을 이용해 배경을 지운, 질문을 거의 못 받은 남자 면접자 2

다른 의류업계에서 종사한다는 여자 면접자 3


면접관 : 좌우 3명씩 총 6명 (남자 3 / 여자 3)

좌측 뒤, 뿔테 안경을 끼고 단발, 나이가 50대인 듯하며 우아한 느낌을 풍기는 여자 면접관 1

좌측 중앙, 질문을 하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 남자 면접관 2

좌측 앞, 흰머리가 많아 머리가 회색빛이며, 네모난 안경을 낀 40대 후반~50대 남자 면접관 3

우측 뒤, 포니테일 머리, 검은 재킷에 장신구를 착용한 듯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면접관 4

우측 중앙, 질문을 하지 않아 기억나지 않는 여자 면접관 5

우측 앞, 옆과 뒤를 짧게 친 검은 상고머리, 회색 재킷에 테가 얇은 네모 안경을 꼈다. 가장 질문을 많이 했으며, 면접관들 중 직급이 가장 높아보이는 40대 후반 남자 면접관 6


1차 면접 때와 마찬가지로, 면접관이 너무 많으며 질문을 하지 않는 면접관이 태반이다. 픽셀이 뭉개진 화면을 바라보며, 그는 왠지 면접관들이 다들 옷을 잘 입은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의류, 패션업에 대한 그만의 선입견일지도 모르겠다.

1차 면접 때와는 달리, 최종 면접에서의 주도권은 남자 면접관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면접관 3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면접자 일동 : 안녕하십니까!

면접관 1 : 그래요, 자기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면접자 1부터 해주세요.

면접자 1 : 안녕하세요, 28번째 기업에 지원한... ...

면접자 2 : 안녕하십니까! ... ...

면접자 3 : 안녕하세요, 업계에 대한 경험을.. ...

그 : 안녕하십니까! 28번째 기업 해외영업에 지원한 하. 얀. 얼. 굴.입니다! 저는 2가지 강점을 통해 저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 번째, 강한 실천력입니다. 저는 호주 워킹... ... 두 번째, 친화력입니다. 저는 취미 생활인 공놀이를 통해... ... 이상 두 가지 강점, 강한 실천력과 친화력을 바탕으로 28번째 기업에 기여하고자 하는 지원자 하. 얀. 얼. 굴.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1차 면접 때 면접관들의 호의를 독차지한 면접자를 최종 면접 때 볼 줄 알았으나, 보이지 않는다. 1차 면접에서 떨어진 것인지, 합격하여 그와는 다른 조로 최종 면접을 보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면접관 1 : 네 잘 들었어요. 공통 질문을 드릴게요. 밀레니얼 세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2가지, 그리고 전염병 사태 때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에 대해 각자 답해주세요.


그는 면접관 1의 두 질문이, 왜 함께 묶여있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두 질문의 연관성도 떨어져서, 그는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다가 두 번째 질문을 약간 까먹기까지 한다. 그의 차례는 마지막이었는데, 그는 답변을 구상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답변을 생각해내느라, 앞선 면접자들의 답변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다.


면접자 1 : 네, 저는 성실과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는... ... 네, 그리고 전염병 사태로 인해, 저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얼마 전까지 몸무게가 89kg까지 나갔습니다. 전염병 시기, 운동과 다이어트를 통해 20kg를 감량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습니다! ... ...

면접자 2 :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면접자 3 : 아, 네, 저는, 밀레니얼 세대가, 음, 소통과 피드백을 중요시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일을 할 때에도, 어, 여러 상황들이 있었는데요. ... ... 아 그리고, 전염병 때 저는 비대면 활동을 많이 했어요. 아무래도, 사람들과 대면을 할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어, ... ...

그 : 네, 저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중요하게 여치는 가치 두 가지로, 목표와 비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으로, 잦은 퇴사와 이직을 들곤 합니다. 저는 이러한 현상이, 밀레니얼 세대가 목표와 비전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들도, 무조건 워라밸만 추구하지 않으며 성장 가능성이 있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어 합니다.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제시한다면, 밀레니얼 세대들도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전염병 시기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염병 시기, 다른 이들과 단절되어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또 그동안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돌아보며 제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취미 활동을 하며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면접관 1 : (그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정정드리자면, 질문은 전염병 시기에 어떤 것을 배웠는지였습니다.

그 :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아, 알겠습니다.



이후 면접은, 면접관들이 개별적으로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1차 면접 때와 비슷하게, 이번에도 업계 경험이 있다는 면접자 3에게 면접관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면접관 4 : 면접자 3 씨, 지금 의류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고요?

면접자 3 : 네 맞아요.

면접관 4 : 어떤 회사인가요?

면접자 3 : OOO입니다. 같은 의류 업계이긴 한데, 벤더는 아니에요.

면접관 4 :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요?

면접자 3 : 아, 고객사와 커뮤니케이션을 위주로 담당하고 있고요. 어, 그외에도... ...


면접자 3은, 20대 초반이나 중반의 여성이며 인상이 좋은 편이다. 나이도 어린데, 가끔씩 방긋방긋 웃는 얼굴에서 순수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답변이 명확하지 않고 말도 늘어진다. 어쨌든 면접관들은 면접자 3에게 유달리 호의적이다.



면접관 6 : 면접자 3 씨, 같은 업계에 있다고 하니까 질문을 하는 건데요. 그, 본인이 일하는 회사에서 우리 28번째 기업의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일을 하다보면 업계 관련해서 여러 소식을 듣기도 하고 할 거잖아요? 어때요?

면접자 3 : (긴장한 듯) 아, 그, 아무래도 28번째 기업이 업계에서는 1위잖아요? 저도, 일을 하면서 28번째 기업의 이름을 많이 들었습니다. 28번째 기업은 지금 여러 공장을 갖고 있고, 유명 브랜드의 옷들도 담당하고 있어서 반드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28번째 기업과 접점이 있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28번째 기업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곤 했어요. (답변이 산으로 간다)

면접관 6 : 어떤 접점이 있었습니까?

면접자 3 : 아, 그, 직접적인 것은 아니었고요. 간접적으로 28번째 기업과 연관이 되어 있었던 거였습니다. ... ... (문득 떠오른 듯) 아 그래서, 28번째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좋습니다.


그는 면접이 돌아가는 분위기와 면접관들의 태도에서, 이미 합격자가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답변이 명확하지 않긴 하나, 결국 면접관들은 동종 업계 경험을 가진 면접자 3을 점찍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너무 한 지원자에게만 질문이 몰리는 것을 자각한 것인지, 면접관 3이 갑작스럽게 그를 지목하여 질문한다.


면접관 3 : 그, 하얀 얼굴 씨. 자기소개서를 보니까... '니체'와 수치심? 에 대해 적어주셨군요. 이 책을 읽고 본인이 생각한 바가 무엇인지 말해보세요.


니체가 아니라 '나체'다. 글씨가 작아서 잘못 본 것일까. 그는 면접관이, 그가 읽은 책에 그다지 관심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간만에 찾아온 기회에 대한 그의 대답도 짧아진다.


그 : (면접관의 잘못된 발언을 수정하려다가 그만둔다) 아 네, 제가 읽은 3부작은, 성과 수치심에 대해 고찰한 책입니다. 수치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나체는 수치심과 연관이 있습니다. 나체는 수치심을 유발하니, 인간은 몸을 가리고자 할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는 의복이 인간의 깊은 본성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의복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일깨워준 책입니다.

면접관 3 : (계속해서 종이만 내려다보며 반응이 없다)




면접이 슬슬 끝나가는 분위기다. 이때, 면접관 6이 갑작스레 말한다.


면접관 6 : 면접자 3 씨,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죠?

면접자 3 : 네, 맞습니다.

면접관 6 : 그러면, 우리 회사로 이직을 하려는 거잖아요?

면접자 3 : 네.

면접관 6 : (장난스러운 어투에서, 점점 엄한 말투로 바뀐다) 면접자 3 씨는, 동종 업계 근무자라 우리 회사로 이직 안돼요. 우리 업계는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서로서로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이직 못합니다. 우리 회사 입사 안돼요.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옛끼, 떽 하는 듯한 느낌이다. 장난인 줄 알았는데, 면접관 6은 해당 발언을 마치고는 화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20초가 넘도록 말이 없다. 침묵이 이어지자, 면접자들은 무언가 억지로라도 반응을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면접자 일동 :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 아... 하하....

면접자 3 : (당황하여) 네....? 아.... 하하....


그는 애초에 면접관 6이 아재 개그를 하는 것이라고 눈치를 챘다. 하지만, 아재 개그라고 하기엔 면접관 6의 태도가 너무 완강하다. 자신의 개그에 대한 반응을 기어코 보고 말겠다는 태도다. 분위기가 썰렁해지다 못해, 아예 파탄나기 직전까지 간다. 너무 완강해서, 아재 개그를 예상했던 그조차도 면접관 6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만일 정말 입사가 불가능하다면, 뭐하러 굳이 최종 면접에까지 올린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면접관 6이 장난을 치는 것이리라.


면접자들이 어색한 웃음을 짓고도 약 15초가 지나서야, 면접관 6이 입을 연다.


면접관 6 : 허허허... 아유, 그런 거 없습니다. 입사 가능합니다. 그냥 해본 소립니다. 허허...

면접관 일동 : 하하허허...

면접자 일동 : ?? 하하...

면접자 3 :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아 네, 하하...

면접관 6 : 이것으로 면접을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면접자 일동 : 감사합니다!




면접이 끝나고, 그는 노트북을 닫는다. 최종 면접이 끝나 후련하면서도, 이후의 상황을 생각하며 그는 머리가 복잡하다.


약 일주일 뒤, 28번째 기업으로부터 결과 안내 메일이 도착한다.

최종 면접 불합격


불합격 통보는 언제나 아쉽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쉬움보다 해방감이 훨씬 크다. 최종 합격을 했다면, 그는 별 수 없이 입사를 했을 것이다. 28번째 기업으로부터의 불합격 통보로 인해, 그는 꺾였던 날개가 되돌아온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다짐한다. 의류/패션업계에는 다시는 지원하지 않으리라. 입사하지도 않았는데, 직무 인터뷰와 브이로그만 봐도 가슴이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던 그다. 그는 자신에게 결코 맞지 않는 업계를 제대로 찾아냈다. 다만, 그런 그가 어떻게 28번째 기업의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는지는 의문이다. 패션과 의류에 문외한이더라도, 그의 열정적인 성향을 보고 기회를 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면접 들러리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을까.


여러 생각이 들지만, 그는 생각을 접는다. 최종 합격을 했으면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터다. 최종 면접 탈락 통보를 받고 오히려 홀가분해진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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