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 최종 면접 준비

혈소판 수치

by 하얀 얼굴 학생

29번째 기업 최종 면접 준비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으니, 일전에 신체검사를 했던 병원이다.


그 : 여보세요.

간호사 : 안녕하세요, 신체검사하셨던 하얀 얼굴 님 맞으시죠?

그 : 네 맞는데요.

간호사 : 채혈 검사에서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게 나오셔서요. 다시 방문하셔야 해요.

그 : 신체검사를 다시 해야 된다고요?

간호사 : 아뇨, 채혈만 다시 하시면 돼요.

그 : 혈소판 수치가 낮다고요?

간호사 : 아, 별 건 아니고요. 가끔 피를 너무 적게 뽑거나 하면 혈소판 수치가 적게 나오기도 해요. 가까운 시일 내에 방문하셔서 채혈만 다시 하시면 됩니다.

그 : 알겠습니다.


피만 한번 더 뽑는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생각할수록 그는 어이가 없다. 그는 29번째 기업 취업을 위해 어떤 역경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투철하다. 하지만 지금의 역경은, 애초에 생겨날 필요도 없었고 이를 이겨낸다고 해서 무언가 보람찬 것도 아니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는, 의미 없는 역경이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그는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병원에 도착하여 내부로 들어간다. 그가 신체검사를 할 때는, 29번째 기업 취업준비생들을 비롯해서 다른 회사 일정도 겹쳤는지 사람이 바글바글했었다. 그가 재검을 받으러 온 때는 평일이다. 신체검사 철이 지났는지, 그렇게 바글바글했던 병원이 한산하다.


그는 채혈을 담당하는 간호사에게 다가가 이름을 말한다. 간호사는 그를 앉히고는, 오른팔에 고무줄을 묶고 피를 뽑는다. 그는 피 검사에서 재검사를 받는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는 다른 지원자들보다 두 배의 피를 뽑은 셈이 됐다.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구나. 그는 빠져나가는 피를 보며 생각한다. 단톡방에서 그렇게 피뽑탈 피뽑탈, 피 뽑고 탈락하면 억울하다고 외치던데, 피를 배로 뽑은 그의 경우는 배로 억울할 터다. 물론 그는 자신이 떨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피를 뽑고 돌아와, 그는 최종 면접 준비를 계속한다. 지금까지 그가 경험해본 바에 따르면, 최종 면접이라고 해서 딱히 새롭게 준비할 것은 없다. 특히나 그는, 1차 면접 때 이미 상당히 신경써서 면접 준비 자료를 만들었다. 최종 면접이라고 해서, 굳이 면접 준비 자료를 다 갈아엎을 필요는 없다. 기존의 면접 준비 자료를 계속해서 보면서, 면접 질문만 임원용으로 대비한다.


최종 면접, 즉 임원 면접이다. 그는 임원을 만나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한없이 멀고 어렵다. 임원이라고 하면, 왠지 엄청난 통찰력과 깊이를 가진 사람들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실무진들은 직무 역량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임원들은 인성과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 관심을 가지리라. 아마도 그럴 것 같다.


그도 최종 임원 면접을 몇 차례 경험해보긴 했다. 임원 면접관들의 첫인상은, 그의 예상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애초에, 임원들은 질문 자체를 별로 하지 않아 면접 시간이 짧다. 임원 면접에서 탈락했을 때 난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질문이 별로 없어 답할 기회도 없었는데 떨어지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실무진 면접도 알쏭달쏭할 때가 많은데, 임원 면접은 더하다고 생각하는 그다.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간절한 취업준비생이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할 따름이다. 임원들이 좋아할 것 같은 장기적인 방향, 29번째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등을 들이판다. 그가 최종 임원 면접을 위해 준비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1차 면접 때 열심히 만든 면접 준비 자료 다회독

2) 회사 연혁을 눈여겨보고 암기

3) 모 건축가의 '공간의 미래' 독서 (29번째 기업은 건자재 제조 부문 비중이 가장 크다)

4) ㄴ-2그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상상

5) 조카에게 경영권을 양보하고 분리해나온 'ㄴ-2그룹 회장'의 성향 상상


29번째 기업에 대해 계속 암기하면서, 그 나름대로 29번째 기업의 미래를 상상한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대입해보기도 하고, 29번째 기업에서 발간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도 읽어보고, 조카에게 ㄴ그룹을 양보하고 분리해 나온 ㄴ-2그룹 회장의 심리도 상상해본다. 어떻게 말하면 회장이 좋아할까. 조카에게 양보하는 모습에서 배려심을 느꼈다고 해야 좋아할까, 분리한 계열사들에서 회장의 야심이 느껴진다고 해야 좋아할까. 그런데 회장이 면접관으로 참석하긴 하는가. 혹시 모르니, 온갖 상황을 상상하는 그다.



어느덧 최종 면접일이 다가온다. 그는 임원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29번째 기업의 번쩍이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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