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변경, 이력서 수정
급한 면접들을 처리하고, 그는 오랜만에 연인을 만난다. 아직 면접이 계속 남아있긴 하나, 굵직한 기업 면접들은 일단 처리했으므로 잠시 여유가 있다. 연인과 카페에 있던 중,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02로 시작하는 번호다. 연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받는다.
그 : 여보세요.
02 : 네 여보세요, 하얀 얼굴 씨 맞으신가요?
그 : 네 맞는데요.
02 : 안녕하세요. 저는 33번째 기업 인사 담당자입니다.
그 : ?! 아 안녕하세요!
일주일 전에 면접을 봤던 33번째 기업이다.
인사 담당자 : 네, 면접 결과 안내드리려고 전화드렸어요. 혹시 메일 확인하셨나요?
그 : 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인사 담당자 : 아, 하얀 얼굴 지원자께서는 1차 면접 합격하셨습니다.
그 : 아 감사합니다!
그는 일주일 전 보았던, 33번째 기업에서의 면접을 기억한다. XXX전투를 응용한 PT 문제, KPI와 BSC를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으며 면접관으로부터 건들거린다는 피드백을 받았던 면접이다.
인사 담당자 : 네, 관련 내용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하얀 얼굴 씨의 경우는 추가로 안내드릴 사항이 있어서요.
그 : 네.
인사 담당자 : 원래 지원해주신 직무가 '경영혁신' 직무이신데, 2차 면접부터는 '보드영업' 직무로 직무를 변경해서 진행하려고 해요. 괜찮으신가요?
그 : 1차 면접 면접관님들이 그렇게 결정하신 건가요?
인사 담당자 : 네.
그 : (잠시 고민하나) 네, 보드영업 직무로 진행해주셔도 좋습니다.
1차 면접 막판, 인사팀으로 보이는 면접관이 그에게 영업 직무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긴 했었다. 그 영향이 아닌가 싶다.
인사 담당자 : 네 감사합니다. 그러면, 하얀 얼굴 지원자께서 기존에 제출하신 이력서가 아무래도 '경영혁신' 직무에 맞춰서 작성이 되어 있으시거든요. 이력서 수정 페이지를 열어드릴 테니, '보드영업' 직무에 맞게 다시 작성해주시면 됩니다.
그 : (고맙긴 하나 약간 귀찮다) 혹시, 어떤 것들을 수정해야 하나요?
인사 담당자 : 기본 인적사항 같은 것들은 그냥 두시면 되고요. 아무래도, 자기소개서 부분을 영업 직무에 맞춰서 수정해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너무 다 고치실 필요는 없고, 보셨을 때 고칠 부분이 있다 싶으신 것만 고쳐주시면 됩니다.
그 : 알겠습니다.
인사 담당자 : 네 그럼, 이력서 수정 부탁드립니다.
그 : (갑자기 떠올라) 아 담당자님, 질문드려도 되나요?
인사 담당자 : 네.
그 : 혹시, 1차 면접 면접관님들이 저에 대해서 어떤 피드백 주신 게 있나요?
인사 담당자 : 음 제가 전달받은 건, '의사 표현이 강하다,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다' 이렇게 받았어요. 그래서 영업 직무로 바꾸신 게 아닌가 싶네요.
그 :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 담당자 : 네 그럼, 이력서 수정 부탁드립니다. 2차 면접 안내는 보내드린 메일 보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수십 차례의 면접, 그동안 인사 담당자와 통화한 것만 해도 십수 차례는 될 것이다. 어느덧 인사 담당자를 대하는 긴장이 무뎌졌는지, 그는 자신에 대한 면접관들의 피드백까지 물어보는 경지에 도달했다.
인사 담당자의 어투, 전달받은 상황과 분위기는 꽤 우호적인 듯하다. 그는 1차 면접에 합격했으니 당연하다. 인사 담당자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경영혁신이 아니라 보드영업으로 직무를 전환해서 진행할 테니 기존 이력서의 자기소개서를 보드영업 직무에 맞게 수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는 이 부분에서, 또다시 망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미 제출된 이력서를 굳이 수정해가면서까지 그를 다음 전형으로 데려가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1차 면접 때의 면접관들이, 그의 잠재성을 파악하고는 보드영업 직무 합격자로 눈도장을 찍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후에 임원들이 볼 이력서를 미리 수정해가며 그를 밀어주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입이 찢어진다.
전화를 받을 때 연인도 함께 있었으므로, 연인은 그를 축하해준다. 축하에 더해, 자기소개서를 고치는 데 도움까지 준다. 그와 연인은, 데이트 겸 자기소개서 수정을 위해 다음날 다시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