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 아랑 아라리요

아랑은 왜(1)

by 까치달

"아씨. 정옥아씨. 오늘 달이 참 밝습니다. 오늘이 보름이라 그러더니 정말 둥글고 환하네요. 저기 저 영남루로 가면 달이 더욱 잘 보일 듯한데, 달구경 하고 가는 게 어떨까요?"

"그러게. 유모 말대로 달이 참 밝고 아름답네. 그래, 오랜만에 달이나 구경하고 갑세."


정옥은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봤다. 정옥의 까만 눈동자에 달이 가득 담겨 노란빛을 띠었다. 정옥은 달빛에 홀린 듯 눈도 깜박이지 않고, 멍하니 달을 쳐다봤다. 환한 빛에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정옥은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옆에서 유모가 조잘조잘 말을 이었지만, 정옥의 귀에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슈스스스슥'


대나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스산하고 조용했다. 어느샌가 유모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람이라고는 유모와 정옥밖에 없는 길이라 대나무 소리는 제법 크게 들렸다. 정옥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유모에게 말을 걸었다.

"이보게 유모, 달구경은 충분히 한 듯 하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


유모는 입을 다물고는 정옥을 노려봤다. 눈에는 핏발이 서고, 손으로는 치마를 움켜쥐고 있었다.

"정옥아, 정옥아. 너는 그리도 나를 믿었더냐. 너는 나의 원수고, 내 딸의 목숨이라. 너 대신 가엾은 내 딸이 굶어 죽었으니 억울하다 말을 마라."

"유모...?"


정옥은 유모를 부르고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눈동자에는 당혹감이 어려 이리저리 흔들리고,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옥이 유모에게 다가가려는데 어둠 속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로 땋아 내린 머리는 땀에 젖어 뭉쳐있고, 옷은 누렇게 변색되어 여기저기 기워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눈은 풀려있고, 입으로는 킬킬대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뱉어내고 있었다.


"정옥아,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렸는지 아니? 지금 이 순간을 이 상황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너는 이제 내 것이다. 도망갈 생각일랑 마라."

"안국이. 네 이놈!!! 종놈 주제에 잘 대해줬더니만 이런 식으로 나를 농락하려 하느냐. 이런 은혜도 모르는 놈 썩 꺼지거라."


안국은 정옥의 말을 듣고 표정을 홱 바꾸더니 성난 얼굴로 정옥에게 다가갔다. 정옥은 안국이를 피해 달아나려 했으나 평생을 육체노동만 한 노비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이내 정옥은 안국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대밭으로 끌려들어 갔다. 정옥은 지니고 있던 칼을 뽑아 안국을 향해 휘둘렀다. 안국은 깜짝 놀라 쥐고 있던 머리채를 놓았다. 그 틈을 타 정옥은 대밭 밖으로 냅다 달렸다.

산발이 된 머리에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짧은 숨을 내뱉으며 대밭을 나온 정옥의 앞을 유모가 막았다. 웃음기도 울음기도 없는 표정으로 정옥을 잡아 다시 대밭으로 밀어 넣었다. 정옥의 손목을 바스러질 듯 세게 쥐어 잡고 차갑고 거친 손길로 정옥을 밀쳤다. 대밭에서는 안국이 씩씩거리며 정옥을 향해 뛰어왔다. 정옥이 놓친 칼을 들고 대나무를 헤치며 뛰어서는 그 칼로 정옥의 가슴께를 찔렀다. 분이 안 풀리는 듯 여러 번. 정옥이 죽을 때까지 안국은 정옥을 내리 찔렀다.


"이봐, 그만하면 됐어.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더 늦으면 나리께서 찾으러 나오실 지도 몰라."

유모는 잔뜩 흥분한 안국을 진정시키려는 듯 조심히 말을 걸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에 눈이 돌아 길길이 날뛰는 안국은 섬뜩했다. 안국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유모를 보고 다시 칼을 휘둘렀다.

"네년도 목격자지.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살려두겠어."


안국은 정옥과 유모, 두 여인을 죽이고는 대밭에 시체를 유기했다. 그리고 정옥의 집에 돌아가 정옥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고 전한다. 그녀의 아버지인 밀양 부사 윤관은 슬픔에 잠겨 부사직을 내려놓고 밀양을 떠난다. 그 후로 밀양에 부임하는 신임 부사들은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갔다.


아랑 전설의 앞부분 내용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상상이 많이 들어간 각색이므로 이것을 아랑 전설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 '아랑은 왜'를 읽고 아랑 전설을 찾아보았습니다. 아랑 전설은 밀양에 내려오는 전설입니다. 판본에 따라 아랑은 윤정옥일 수도 아랑일 수도 있습니다. 아랑을 죽인 이가 통인일 수도 관노일 수도 있고, 유모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설화의 매력입니다.

노비의 이름은 '아랑은 왜'에 나오는 이름을 차용했습니다. '아랑은 왜'에서는 안국이 정옥을 죽이지 않습니다. 그보다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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