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우울에서 평범하게 행복해지기
나. 그리고 나.
“본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
면접에서 종종 나오는 이 질문을 지금 나 자신에게 해보자. 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우울증, 무기력함, 회피.
밖에서 나를 보는 세 가지 단어를 말해보자.
밝음. 잘 웃음. 활동적.
대립되는 것 같은 이 단어들도 사실 끝과 끝은 연결되어 있다. 우울하다고 해서 하루 종일 우울한 것은 아니며, 눈물이 자주 난다고 해서 웃을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서 이상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현대 사회에 아주 흔하고 흔한 사람이라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이 글은 평범하게 우울한 사람이 조금은 나아져보려는 첫걸음이며, 혹시나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공유하고 싶다는 대화의 시작이다.
‘남들이 다 힘들다고, 내가 안 힘든 것은 아니다.’
나는 평범하게, 남들보다 어쩌면 조금은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름 연봉과 워라밸이 괜찮다는 회사에 다니며, 힘듦을 호소할 때면 그래도 대감집 노예가 낫다는 말을 듣는다. 나는 30대 대감 집 노예이며,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우울에 자격 조건은 없다.’
내가 우울증인 것을 알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내가 나약한가, 내가 예민한가’이다. 남들 다 잘 살아가고 있는데, 난 왜 이렇게 회사 생활이 힘들고, 인관관계가 힘들고, 삶이 지치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거나, 몸이 많이 아프거나, 특별히 불우하거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다. 우울에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평범한데도 우울한 스스로를 보며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 같았다.
‘정답이 있는 사회’
한국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사람들의 개성이 존중되기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획일화된 한 가지 유형에 스스로를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바람직한 인간이란 자고로 아침형 인간이어야 하며, 부지런해야 하며, 자기 관리도 열심히 해야 하며, 재테크를 열심히 해야 하고, 특정 나이대에 대학을, 취직을, 결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나는 야행성 인간이었으며, 남들보다 활발하고, 게을렀으며, 30대의 나이에 퇴직을 고민하며 미혼인 상태다. 나의 기질과 고민들을 사람들은 튄다거나, 걱정하거나, 이상하다며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는 했다. 특히 회사에 취업을 하며 '바람직한 직원'상이 정해진 세상에서 나는 내가 가진 성격들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되었고 자신의 기질을 고쳐야 하는 단점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들은 내가 사회생활을 퍽 잘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도 잘 걸고 살갑게 선배들도 대한다. 하지만 웃고 있는 만큼 상처도 많이 받는다. 무례하거나 비난 어린 말에 하루 종일 치이고,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서명에 넣어야 할 정도로 다른 사람 눈치를 보고 살아가고 있으며, 퇴근 후에는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몸을 부여잡고 ‘그래도 일할 데가 있는 게 어디야’라고 되뇌어 본다. 다른 사람들은 퇴근 후에 자기 계발도 하고 주식공부도 한다던데… 스스로가 부족한 것 같아 자괴감이 몰려온다.
자기혐오가 늘어날 즘, 직장 내 힘듦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결국 우울증으로 인한 3주가량의 병가를 내었다. 갔다 와서의 나의 자리도, 3주간 무엇을 할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도,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 회피라는 생각이 들어도, 우선 날 생각해야 했다.
이 글은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이자, 다른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나의 진심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나의 도전이다.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이 글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