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호구생활
처음 오픈했을 때에는 홀 안 모든 대화가 섞여 요상한 스토리로 귀에 꽂혔다. 기쁘고 슬프고 우울하거나 자랑할만한 거리가 뒤죽박죽 뭉쳐 들더니 다른 팀의 대화로 공중분해되는 것이다.
카페운영 5년을 훌쩍 넘긴 지금, 세상사는 다 고만고만하다. 행복과 불행의 척도는 각각 다르나 같았고, 또 비슷한 듯 아닌 듯했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다가온다.
사장님도 여기 앉으셔요.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보태었더니 대화상대로 낙점 됐다.
고객과 맞테이블 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농반진반 거절했다.
저 속에(내 기억 속) 얼마나 많은 내용들이 있겠어. 별의 별말을 다 들었을 텐데도 말 안 하잖아. 당신에 대한 풍문이 궁금했던 분은 이렇다 할 정보를 못 얻어 냈다.
어르신 세 분이 빙수 한 개를 시키셨다. 코로나펜데믹 때라 위생에 예민할 때라 세 개의 일인그릇에 소분해서 드렸다. 그러다 보니 3인분 같은 1인분을 받아든 고객들은 내 서비스에 아주 만족하셨다.
다음 방문에는 본인포함 네 분이 오셨다. 빙수 한 개를 시키셨다.
요 사장님은 네 그릇으로 나눠준다 자랑하신다.
그 지인은 다른 손님과 동행해서 같은 요구를 했다.
결국
라고 쓰인 문구를 한편에 적어두었다.
나누어 제공하는 일도 멈췄다.
배가 몹시 부르다며 들어선 중년여성 다섯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그리고는 머그잔을 네 개 더 요구한다. 종이컵과 물컵이 구비된 곳을 가리켰다.
타당하지 않은 이유를 들었다. 딱 한 번 만입니다. 웃으면서 잔 네 개를 건넸다. 음료 한 잔을 다섯 등분으로 나눠 마신 후 뜨거운 물을 추가로 요구했다. 도자기 주전자에 뜨거운 물과 티백을 담아 제공했다. 거절했다면 두고두고 내가 불편했을 것이다.
오후즈음, 거나하게 약주를 걸친 중년 남성 넷이 들어왔다. 시작부터 떠들썩하다. 술기운은 확성기가 되어 쩌렁쩌렁 소리를 키웠다. 그것은 고객들로 하여금 서둘러 자리를 뜨게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카페라는 자부심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음료 네 잔 선택도 한참이 걸렸다. 가리키는 메뉴마다 열심히 설명했으나 결론은 달달한 커피로 가닥이 잡혔다. 가까스로 결제까지 마치고 쟁반 위에 컵받침을 놓아두고 막 돌아서는 순간이다.
에이... 안 돼에. 여기서 담배 피우면 안 된다니까..
담배라고?
한 남성이 홀 중앙에 서서 내다보는 나를 막 발견했다. 내 시선은 중지와 검지 사이 담배에 꽂혔다. 반대편 손에 쥐어진 라이터에 엄지손가락은 지금 당장 불꽃을 피워 말어? 하는 듯 고물락거린다.
홀에서 흡연은 안 됩니다.
뭐? 뭐라고요? 왜?
말이 상당히 짧다. 나도 말을 놔 버려? 여차하면...확!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홀에서는 흡연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다시 또박또박 단어를 꾹꾹 눌러 경고를 했다.
취기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추켜올려서는 대뜸
미스테리한 숫자를 들이대며 출구쪽으로 몸을 돌린다.
쩌벅쩌벅 발망치로 자신이 지금 얼마나 화가 났는지 한껏 표현중이다.
다시 일에 집중하는데
언제 들어 왔는지...
75가 무슨 뜻인지 알아?
한다.
그냥 자리로 가면 지는 느낌이라도 들었는지 잔뜩 볼멘소리로 쩌렁쩌렁...
그건 당신 아이큐야! 알아? 아이큐가 75!
뭐래? 무시하며 돌아 섰지만 어이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무슨 애들도 아니고, 유치뽕짝이다.
아이 쫌 이리 와서 앉아라 제발...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원래 이러지 않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억지로 끌어 자리에 앉혔다. 이미 홀을 차지한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목청껏 시끌벅적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영양가는 없고 소란스럽기만 한 대화가 반복되고 또 반복, 같은 말만 백만번은 하는 것 같다. 그러더니 아내의 전화를 받은 일행중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가야한다며 서둘렀다. 얼굴도 모르는 고마운 아내분은 그들에게 귀가를 명했다.
그런데
잔을 반납하는 손은 아까 그 무례한 흡연가. 나도 모르게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섰다.
그리고는
감사합니다~
건조한 인사말로 트레이를 받았다.
그런데 이 사람 불쾌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온화하다.
미소를 잔뜩 머금고...바이바이 손까지 흔든다. 우리가 뭐 그렇게 손까지 흔들며 헤어질 사이였던가?
내 아이큐가 사정없이 디스카운트된,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해프닝이다.
그려려면 슬기로운 호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