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로소 당신이 주인공인가요?
네 명이던 가족이 하나 더 늘어 다섯이 되었다.
3월 둘째의 결혼으로 우리에게도 멋지고 근사한 사위가 생겼다.
올해 남편은 어김없이 본인을 제외한 사위까지 총 넷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택배상자가 쌓이거나 퇴근길 장바구니를 어깨에 바리바리 싸매고 들어 온다. 생일상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거다.
일주일 삼시세끼 식사준비에 벅차했던 내 젊은 날이 소환되며 뜨끔하다.
2월 둘째 귀 빠진 날을 시작으로 구월 시월이면 해피버스데이노래가 며칠 또는 몇 주 간격으로 불리어진다. 우리에게 가을은 매리 버스데이의 계절이다.
남편표 생일상엔 미역국과 잡채는 기본이고, 주인공의 기호에 따라 스페셜디쉬가 달라진다.
뭐든 잘 먹어 주는 둘째를 위해선 전과 갈비 그 밖의 명절 같은 다양한 음식이 상에 오른다.
나의 날에는 스파게티와 스테이크를, 큰 딸아이를 위해서는 연어요리 몇 가지가 테이블 중심에 자리했다.
사위의 첫 생일상에는 장인의 마음을 듬뿍 담은 풍성함으로 상다리가 휘어질 뻔했다.
남는 게 사진이지
자자~ 축하하는 척.
기뻐하는 척.
행복한 척.
가식적인 미소 장착.
첫째 휴대폰카메라가 원격조정되고 연기자들은 역할을 수행한다. 주인공을 향한 손하트 볼하트 심지어 손가락질까지...
급조된 연출력이 과감 없이 표출된다. 애드리브가 날로 진화하는 듯하다.
처음엔 어색해 멋 찍어 하던 사위도 금방 물들어 버렸다.
2025년 11월 드디어 남편생일이 도래했다.
밖에서 먹었으면 좋겠는데...
마누라를 배려하는 따뜻한 남편의 멘트에는
그럴 순 없지!
가볍게 거절한다.
단, 큰 기대는 하지 마!
나는 카페를 운영한다. 사장 직원 설거지 청소까지 다목적이다. 감히 남편 생일상을 준비하겠다 마음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믿는 구석(집이 카페고 카페가 곧 집이라는 것)이 있다.
골목 끝 작은 카페는 웬만해선 만석이거나 오픈런 같은 경이로운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다. 한가하다. 그러나 찾는 이가 있기에 무작정 비워둘 수도 없다. 욕심내서 조리하다 CCTV 앵글에 누군가 등장하면 후다닥 내 팽개쳐진 요리는 산을 향해 줄행랑 칠 것이다. 실패확률이 없고, 맛있으며 잔치상답게 화려함까지 놓치지 않을 아이템으로 승부수를 띄어본다.
접시에 정갈하게 놓인 재료를 취향껏 손수 싸서 먹으면 된다. 먹을 사람'S 개인취향저격 식사되겠다.
재료도 최대한 간소화했다. 내 집 주방에서 준비하다가도 손님호출에 10초면 카페 출동도 가능하다.
D-1( 하루 전)
생일케이크를 위해서 냉동블루베리에 꿀을 듬뿍 넣어 은근하게 조렸다.(카페에서 작업했다)
용도별 고기류는 미리 양념해 숙성해 둔다.
오이는 돌려 깎아 잘게 채 썰고 통으로 남은 가운데 부분을 입속으로 버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양파는 잡채용과 마끼용 두 종류로 준비한다.
시금치도 살짝 데쳐 무쳤다. 다행스럽게도 가격이 많이 내렸다. 한 동안은 금치였던...
당근도 채를 쳐 잡채용은 기름 둘러 볶고, 마끼용은 생으로 두었다.
미리 불려 놓은 건 표고도 잘게 채를 썰어 양념해서 볶았다.
파프리카도 색깔별로 용도에 맞게 구분해 두었다. 열 올린 프라이팬에 물기만 날려주는 디테일.
깜박 놓친 목이버섯과 단무지를 주문했다. 새벽배송은 참으로 혜자 롭다
슴슴하게 간한 잡채용 돼지고기는 가늘게 썰어 물기가 없어질 때까지 달달 볶았다.
불고기 양념한 마끼전용 고기도 볶는다. 약간의 촉촉함만 남겨본다. 육즙은 머금고 필요 없는 물기는 날려버리겠다는 것.
불린 미역과 밑간 한 쇠고기를 들기름 넣어 센 불로 볶았더니 감칠맛이 사이사이 비집고 얼굴을 내민다. 육수를 더했더니 바글바글 수다스러워진다. 그즈음 불을 줄여 자글자글 끓게 둔다.
잠들기 전 당면에 물을 부어 두기로 한다. 나는 불린 당면을 볶아서 하는 방법을 선호한다.
이 정도면 70%는 완성이다. 내일의 태양이 내게 호의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D-Day(생일 당일)
깻잎을 씻어 물기를 제거하고 채 썰었다.
단무지도 다른 것들과 같은 굵기와 길이로 모양을 맞춘다.
생목이버섯은 데친 후 양념해서 기름에 축축함만 제거할 정도로만 볶았다.
불린 당면을 간장 설탕 그리고 참기름으로 양념한 후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둘러 볶듯이 한다. (약간의 물을 첨가하면 촉촉하고 불지 않는 잡채용 당면으로 탄생된다.)
어제 준비해 둔 잡채재료들은 다시 팬에 올려져 온기를 되 살리고, 모든 것들은 합채 되어 잡채가 된다.
전날 끓여 둔 미역국도 한 번 더 바글바글 열기를 더해준 후 Step1 정도의 온기로 식지 않도록 조치해 둔다.
마끼용 간장 소스(다시마물+식초+고추냉이+간장+맛술)를 만든다
다시마물에 잠겨놓은 쌀은 딱 좋은 시간에 지어지도록 시간을 맞춰두었다. 동시에 초밥용 배합촛물 미리 준비해 두기.
김치 냉장고에서 드디어 내 사랑 날치알을 꺼내 왔다. 소주와 맛술의 협력으로 비린맛이 꺼져! 버렸다.
가족들 도착 예정시간은 다섯 시 30분. 카페 마감시간 6시.
진정 오늘은 그대를 위한 날인가? 참으로 한가한 오후다. 오늘의 태양은 내 편이었구나.
생크림에 설탕은 원 레시피의 반만 넣는다. 가족들 먹을 거니까 덜 달아도 되고 말고 좋고.
어제 만들어 둔 블루베리시럽이 딱 알맞은 점도로 굳어 있다. 참으로 이쁜
찐 보라색이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본다. 한 번 더 맛?을 본다. 자꾸 손이 간다. 이제 그만~~~
휘핑시작, 홀에 손님이 계시지만 카페라는 환경에서 베이킹은 오케이다. 휙휙 돌리고 돌리고 돌리다가 들어 올려지는 봉우리. 이거거든!
초록 무늬 이쁜 접시 위에 제누와즈 한 장을 올리고 레몬시럽을 바른다. 그 위에 단단하게 휘핑된 생크림을 듬뿍 펴 바른다. 그리고 나서 블루베리시럽을 쫘악 아니 살살 달래 가며 펼치다 보니 다소 거친 듯 몽글한 보라색 러그 같다.
두 번째 제누아즈까지는 그렇게 하면 된다.
드디어 세 번째 장을 올릴 차례.
실패하면 망하는 장.
이쁨과 놀람과 멋짐, 동시에 탄성이 터지면 좋을 윗단이다.
생크림을 두껍게 입혀두고 가운데 스폿에만 둥그렇게 시럽 듬뿍으로 강조하기로 한다.
테두리는 남은 시럽을 채로 걸러 생크림과 섞어만든 보라크림이 짤 주머니에 담겨 고깔 모양으로 둘러쳐질 것이다.
봉우리마다 한 개씩 얹어보니 그런대로 모양이 난다. 중심에도 크림으로 마지막 화룡점... 정? 뭔가 좀 부족한 듯...
흠...
금가루를 떨리는 손을 부여잡아 올려준 후 멀찍이서 바라본다.
흠...
생크림이 남았쟈나 걍 둘 거니? 마지막까지 쥐어짜 내어 밑 테두리 돌려 막기 시도.
다 왔다. 1% 부족? 뭐? 옳지!
마당국화가 소란스럽다. 유난히 이쁨이 넘치는 한 송이씩만 초이스. 요염하게 빨간 보석 같은 남천열매도 한 줌 올렸다. 끝.
세상 단 하나, 내 사랑 그대를 위한 케이크 완성!
식사 10분 전
가족이 완전체가 되자 조급해진다. 그래도 침착. 이제는 굳이 혼자 할 필요가 없다. 지시와 동시에 준비된 조력자들은 각자의 역할에 바로 돌입한다.
갖은 재료를 접시에 질서 정연하게 담아볼 것!
갓 지어진 밥에 배합초를 넣어가며 살살 달래듯 섞어 줄 것!
모든 사람의 손에 거슬림 없게 셑팅하라는 명 받은 사위는 제 팔을 뻗어 가늠한다. 예상치 못 한 기하학에 고민중이다.
엄마! 카페 마감했어?
아차차!! 마감하고 올께~~~~
첫째가 사온 방어가 살이 제대로 올랐다. 남편의 원 픽! 울 남편 신났다.
에... 선물증정이 있겠습니다. 거 입이 너무 귀에 걸리는데요. 남푠님!
꽃 바구니 안에서 돈이 줄줄이 사탕처럼 나온다. 다른 놈은 봉투째로 아빠 손바닥위에 덥석.
선물상자를 들이밀며 둘째의 잔소리.
아빠! 아끼지 말고... 제발.. 팍팍!! 그래야 또 사드리지...
마끼 참 오래간만에 먹는구만. 잘 했네.
엄마가 애썼네.
이 요리는 우아하게 먹을 수가 없어.
입이 쩍쩍 벌어지고 우걱우걱 씹는 소리...
애들용(반려동물)도 준비했지롱.
간 없이 살짝 익힌 고기가 덩어리채로 이 놈 저 놈 입에 물려진다.
배부르게 먹어도 부담이 없잖아.
담엔 아빠가 제대로 된 김밥 말아 줄게
꺄악! 케잌 너무 이쁜데.
점점 근사해지는데요.
이 집 케잌맛집이네.
하하 호호. 사람도 동물도 모두 모두 씐났다.
올해 울 가족 생일잔치의 마지막 피날레는 남편이었다.
일 년 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도 잘 부탁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