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내맘대로 일기 38

by EAST

자동차는 크고 튼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안전하다고 믿었다. 월급에 비해 턱도 없이 큰 차를, 비록 중고차이지만 덜컥 산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문제는 유지비. 중고차는 고장이라는 복병이 언제라도 툭 튀어나와 내 지갑을 노린다. 그래서 유지비가 생각보다 더 들어간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게다가 먹성까지 무지 좋다. 하루 편도 20km 출·퇴근길. 5만 원 주유하면 딱 1주일 만에 기름을 다 먹는다. 연비는 대락 7km. 그나마 출·퇴근 시간이 러시아워와 겹치지 않아서 이 정도지, 간혹 사고가 나서 차가 막힐라치면 연비는 영락없이 4~5km로 곤두박질친다. 기름 먹는 하마가 따로 없다.


1년 끌고 안 되겠다 싶었다. 대부분 시내 주행만 하는데 굳이 큰 차 필요 없다고 아내를 설득한다. 그런데 이번엔 아내가 반대한다. 오히려 한 수 더 뜬다. 그럼 연비 좋은 새 차로 한 대 사세요, 한다. 게다가 덧붙인다. 안전하고 큰 차로.


아내는 원래 차에 대한 욕심이 없었고 차에 대한 지식도 일천하다. 그랬는데 그동안 큰 차를 타면서 넓은 실내, 부드러운 주행감, 고속 주행 시 안정감을 알게 되었다. 그것들은 다른 차를 타면서 몸으로 비교 체득한 경험들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마치 입에 착착 감기는 고급 요리를 경험한 사람이 그 맛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중고로 산 내 차가 최고급 하이엔드 세단은 아닐지언정 그래도 나름 대형이기에 웬만한 차보다는 승차감이 좋은 건 사실이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인가? 알쏭달쏭해진 나는 어떻게든 아내를 설득해야 했다. 새 차는 전혀 계획에 없던 일이다. 목돈이 들어간다. 아깝다. 그런데 웃기는 건 중고차를 사기 전까지는 서로의 입장이 딱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그때 아내는 우리 형편에 큰 차는 필요 없지 않냐고 물었고, 나는 예의 안전론을 들먹이며 박박 우겼다. 결국 내 뜻대로 큰 차를 샀고, 그 결과 아내 말 듣지 않은 나는 지금 후회막급이다.


그런데 나의 고민은 뜻밖의 일 때문에 잘 해결되었다. 수육용 돼지고기 사러 재래시장 갔을 때였다. 일 다 마친 후 공영주차장으로 갔다. 주차장 빠져나오려고 출구로 가는데, 앞에 있던 소형차가 출구를 지나친 것을 알아채고 후진하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워진다. 설마, 했는데 자꾸 다가온다. 멈출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바로 코 앞. 빵! 하고 경적을 한 번, 어라! 멈추지 않는다. 한 번 더 울렸다. 두두둑! 기어이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후진(나쁘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 차량 운전자가 내렸다. 당황한 운전자는 꾸벅 인사하며 죄송하다고 한다. 차를 살펴봤다. 후진(자꾸 강조하지만 아니다, 나쁜 차) 차는 멀쩡했다. 그런데 왜 이리 큰소리가 났지? 이번엔 내 차. 별 탈 없는 듯싶었다. 통행로라서 일단 서로 차를 빼기로 했다. 후진 차가 차를 이번엔 다행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내 차 범퍼가 그 순간 툭 분리되더니 대롱대롱 매달린다. 뒤따라 나온 아내가 입을 딱 벌린다. 크고 튼튼한 차의 공식이 와장창 깨져버린 순간이었다. 후진 차 운전자의 알 듯 모를 듯 미묘한 미소와 우리의 멋쩍은 미소가 엇갈렸다.


돌아오는 길, 연비 좋은 소형 하이브리드 차량을 우린 알아보고 있었다. 우리를 들이받았던, 하지만 멀쩡했던 차량과 동일 차종이었다는 건 아이러니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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