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63
4월 5일은 식목일이자 우리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하다. 당시 식목일은 휴일이었다. 주 6일 근무였기에 결혼식 있던 토요일 그날은 모처럼 맞이하는 연휴였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찬란한 봄날, 꽃놀이 가려고 마음 단단히 먹은 선남선녀들의 데이트를 가로막는 불청객이었던 셈이다. 친구들의 투덜거림과 눈총을 단칼에 베고 버진 로드를 걸었던 기억에 간혹 웃음이 떠오른다.
당시에는 꽃이 피는 순서가 있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예뻐도 자주 보면 마음도 시들시들해지는 법. 긴 겨울 끝 노랗게 피는 산수유가 그리 반갑고 예뻤지만 그도 잠시. 질릴 뻔하다 싶으면 하얀 목련이 툭 하고 피었다. 와! 순백색에 감탄하다 잊힐만하면 노란 개나리가 천지삐까리로 물들었다.
그러다가 벚꽃이 터졌다. 분홍빛 곁들인 하얀 벚꽃은 밤에 더 장관이라 그 핑계로 밤 데이트를 즐겼다. 여의도 윤중로는 그런 연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지만 그마저도 즐거웠다.
무심하게 벚꽃마저 지고, 마침내 5월 오면 장미가 정열적으로 게, 물렀거라!, 당당히 거만한 붉음을 뽐냈다. 그렇게 자연은 천연의 색을, 봄이란 이름으로 달마다 보따리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서로 어찌 그리 잘 알고 순서대로 나란히 피었던지.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꽃들이 한꺼번에 피기 시작했다. 산수유, 목련, 개나리, 벚꽃까지 시도 때도 없이 같이 폈다. 아! 좋은데. 과하다. 너무 많다. 꽃이 순서대로 피는 모습을 기다리는 멋이 없어졌다. 꽃도 세상의 빠름을 닮아가는 것일까. 천천히 즐기고 싶은, 천천히 세월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아 나는 괜히 떨어진 목련꽃 이파리를 발로 툭툭 찬다.
꽃다웠던 아내도 이제 환갑이 다 되어간다. 피고 지기를 몇 해던가. 해마다 빛깔이 달랐고, 봄꽃처럼 모양과 향이 달랐지만 그래도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과하지 않게 노랗게, 하얗게, 연분홍색으로 수줍게, 붉음으로 화끈하게, 간혹 무섭게(?) 오랜 세월 나와 함께 했던 아내가 봄꽃보다 예쁘고 좋다. 한꺼번에 피지 않았듯이 하루아침에 지지 않을 아내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번 주말 우리는 속초로 여행을 간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곳이다. 권금성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던 설악산 자락과 동해안 해변을 같이 바라보던 신혼의 풋풋함이 떠오른다.
2006년부터 식목일은 휴일이 아니다. 그동안 나라에서 우리의 결혼기념일을 휴일로 챙겨줬는데, 아쉽다. 혹 생각이 바뀌면 우리는 흔쾌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