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64
친구 녀석 어찌나 손자 자랑이 심하던지 모임 끝나고 나서도 민수 씨 괜히 부아가 난다. 죄 없는 등받이 쿠션을 한 대 쥐어박는다. 일찌감치 비혼 선언한 첫째 녀석이 얄밉다. 겉으로는 결혼이야 본인 마음이니, 뭐, 대수롭지 않은 척, 쿨한 척했지만 결혼하지 않겠다는 첫째의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 켠이 쿵하고 내려앉았던 민수 씨다.
길 가다 애기들을 보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다가가 볼을 꼬집어 주고 싶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고, 안아 주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아내가 그러면 큰일 난다고 말리느라 바쁘다.
그럼 둘째 녀석에게 기대를 해볼까 하다가도 이제 대학교 2학년, 아직 멀었다. 아침부터 휴, 하고 깊은 한숨을 쉬는 민수 씨를 아내는 딱하듯이 쳐다본다.
“아침 댓바람부터, 하늘 꺼지겄어유. 어제 친구들 잘 만나놓구선 왜 그런대유?”
“거 둘째 말이야. 있대?”
“밑도 끝도 없이 머가 있어유?”
“여자 친구 말이여.”
“있쥬. 것두 몰러유. 맨 거울 보구, 옷 사다 날르는 거 보믄 몰러유?”
민수 씨는 박수를 치며 신났다.
“그래, 그거 참 잘 되었구먼.”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둘째는 매주 금요일 집에 온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둘째가 와 있다. 방문이 굳게 닫혀 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한창 게임 중이다. 눈 인사한다.
“어어, 그래, 그래. 계속해.”
침대에 걸터앉는다. 둘째가 저 게임 중이에요, 라며 머리에 끼고 있는 헤드셋을 가리킨다.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모양이다. 키보드를 연신 눌러가면서 민수 씨를 쳐다본다. 이럴 때는 짧게 말하고 얼른 나가야 한다. 민수 씨는 지갑에서 주섬주섬 5만 원 권 지폐 두 장을 꺼내서는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맛있는 거 사줘라.”
“?”
“거, 여자 친구 있대매?”
“감사합니다.”
둘째는 뜻밖의 공돈에 환하게 웃는다. 얼른 주머니에 쑤셔 넣는다. 민수 씨는 둘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방에서 나온다. 민수 씨는 둘째가 여자 친구라며 소개해주는 모습을 상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 후 둘째가 방에서 나온다.
“아부지, 약속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그래, 여자 친구 만나러 가니?”
궁금한 게 많다.
나이는? 어디 사니? 사귄 지는? 학생이니? 부모님은 뭐 하시니? 그래 결혼 계획은?
마구마구 우주처럼 팽창한다.
“아뇨. 중학교 친구들 만나러 가요. 그리고 아부지, 걔랑은 헤어졌어요.”
후다닥 둘째가 뛰쳐나간다. 민수 씨 멍하니 둘째 뒷모습만 쳐다본다.
※ 이 글은 픽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