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실에서

내맘대로 일기 65

by EAST

봄비가 내린다. 제법 많이 내린다. 저녁 7시. 직원들은 얼추 퇴근을 다 했다. 경비실에서 보면 수령 40년은 족히 된 커다란 벚나무가 한 그루 있다. 세찬 비바람에 벚꽃잎들이 춤추며 떨어진다. 불과 하루 전만 하더라도 만개한 벚꽃은 장관이었다. 직원들은 그 앞에서 사진 찍고 야단법석이었다. 웃음소리가 아직까지도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내리는 비로 절반 이상 떨어져 듬성듬성 볼품 없어져 버렸다. 아! 어제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후회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라고 묘비에 썼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떠올랐다. 살다 보면 망설여질 때가 참 많다는 생각을 한다. 할까 말까, 고민하다 끝내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 그리고 후회들이 흩날리다 땅에 떨어진 벚꽃잎처럼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가장 최근에는 집과 가까운 지사로 전근 신청할 기회가 있었는데, 결국 하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솟구친 기름값을 생각하면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출근 거리는 전근을 가는 이유로서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게다가 아침 일어나는 시간도 40분이나 늦출 수 있다는 점은 아주 큰 장점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나는 왜 머뭇거렸을까? 답은 간단하다. 이곳의 익숙함과 새로운 곳의 낯섦 사이에서 나는 고민하다 결국 눌러앉았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보수적이다.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잘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와는 다르게 쉽게 훌쩍 옮기는 동료도 있다. 사실 그들을 보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집이랑 가장 가까운 지사로 가라고, 말하는 직원도 여럿 있었다. 그러면 나는 여기가 좋아요,라고 답한다. 사실 그 말속에는 두려움이 살짝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전근 간 직원을 만나면서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출·퇴근 시간과 그곳의 근무 환경 등을 듣고서는 좋은 기회를 차버렸구나,라는 후회를 하게 되었다. 결심을 굳히자 이곳에서의 익숙한 생활이란 것도 결국 내가 만들었던 것이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 역시 내가 만들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 쉽게 받아들여졌다. 쓸데없이 고집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제 우물쭈물하지 않겠다. 예쁜 꽃이 피면 당장 사진을 찍자. 이런저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던 여행, 떠나자. 자취하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사랑한다, 말하자. 그래 살 빼자.


빵!

택배차 경적소리에 생각에서 깬다. 입구 차단기 버튼을 꾹 눌러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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