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일기 68
동기들 일곱 명이 지난주 토요일 수원으로 놀러 왔다. 다양한 연령,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방통대 대학원 동기들이다. 사는 곳도 여기저기다. 서울, 경기를 비롯해 멀리 강원 양양에서도 왔다. 우리는 2013년에 처음 만났다.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다들 현직에 있었는데, 세월 지나니 퇴직자들도 생겼고, 나처럼 직업이 바뀐 사람들도 나왔다. 우리는 1년에 서너 차례 만난다. 처음에는 여남은 명 모였는데 몇이 떨어져 나가고 지금은 10명 안짝이다.
오늘 참석자는 모두 8명. 남자 2명, 여자 6명이다. 초여름 같은 날씨. 다들 선글라스에 모자, 양산까지 중무장이다. 수원역에서 만난 우리는, 아니 여자 동기들은 어린아이처럼 반가워 죽는다. 평균 연령 60이 넘은 여자 동기들 어머, 어머 그동안 예뻐졌네, 살 빠졌네, 하며 서로 신났다. 남자 둘은 멀뚱멀뚱 뭐 똑같구먼, 표정으로 서있다.
대장정에 나선다. 앞장선다. 수원역 로데오거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오전 10시 출발, 오후 6시 마무리 일정이다. 1만 5천 보 이상 걸으리라 짐작한다. 주말, 행리단길은 분명 관광객이 넘쳐날 것이다. 행리단길을 피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수원 화성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정해진다. 수원역부터 걸어서 팔달문(남문), 창룡문(동문), 연무대, 화홍문(북수문), 장안문(북문), 화서문(서문)까지다. 그때까지 몸이 버틴다면 팔달산 정상 서장대까지 가보려고 생각한다.
일제 침탈의 상징, 근대문화유산 부국원 구경한다. 사실, 수원은 정조대왕의 도시라 근대문화유산이라고 하면 왠지 생뚱맞기는 하다. 25년을 살았던 나조차 이번 기회에 처음 둘러보게 되었다. 하긴 일제의 수탈이 미치지 않은 곳이 전국 어디에 있을까 싶다. 부국원은 농작물의 종자를 독점 판매, 폭리를 취했던 곳이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수원은 농촌진흥청과 서울대 농대 있었을 만큼 농업에 진심인 곳이다. 게다가 전국 3대 우시장 중 한 곳이 이곳 수원에 있었을 정도였다. 수원 왕갈비가 유명한 것도 그 이유에서다.
부국원 나와 이른 점심 먹으러 간다고 하니 눈이 반짝거린다.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날이 생각보다 덥다. 시원한 평양냉면집으로 향한다. 슴슴한 맛에 호불호가 갈리지만 방문한 곳은 평타 이상인 곳. 시원한 식당에 오더니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없다. 성격 급한 데다 가이드 역할까지 한 나는 오늘 일정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불굴의 신념으로 서두른다. 하지만 여사님들(?)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예 눌어붙을 기세다. 얘기가 자연 같이 공부할 때의 에피소드로 끝없이 이어진다. 밥 먹은 지 시간 반도 더 지났다. 똥줄 탄 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댄다. 그제야 에구, 얼릉 가자, 거 EAST 샘, 숨 넘어가겠네, 하며 일어들 난다. 저마다 에구구, 허리야, 무릎이야 아우성이다. 무시한다.
곧 팔달문이다. 우와, 사진 찍고 난리다. 팔달문시장 지나 본격적인 화성 투어에 들어간다. 남자 동기와 잰걸음으로 일행을 이끈다. 동기라 하지만 일흔을 훌쩍 넘긴 분이다. 작은아버지 뻘이다. 평소 운동으로 단련되신 분이라 자그마한 체구임에도 몸이 단단하다. 오히려 나보다 건강해 보인다. 2년 전 은퇴하고 간간이 소일거리 삼아 아르바이트 하고, 자격증 하나 따려고 공부 중이라고 한다. 게으른 나를 스스로 꾸짖게 된다. 일행들 저 멀리 한참 뒤에 있다. 작전 실패다. 기다린다. 숲해설가 준비한다는 동기 회장이 이 나무 저 나무 설명하며 세상 편한 걸음으로 다가온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다. 수원이 아니라 마치 광릉수목원 온 줄 착각할 정도다.
“자, 자. 샘들. 서둘러요.”
재촉한다.
“천천히 가, 힘들어, 날이 여름이여.”
“좀 쉬었다 가. 어디서 쉬어요?”
“근데 얼마나 왔어요, 우리?”
헉, 벌써부터 이런다고.
“쪼그만 더 가면 돼요. 힘들 내요. 샘들.”
어르고 달래고 간신히 창룡문이다. 사진 찍자고 하니 그새 우르르 신난다. 하늘은 파랗고, 연은 두둥실 하느작거리고, 우리는 까르르 들썩거린다. 잔디밭은 땡볕이다.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서둘러 연무대 그늘로 옮긴다. 앉으니 시야기 탁 트이고 바람 시원하니 멍 때리기 참 좋다. 그러니 또 일어설 생각들이 없어진다. 아니 된다. 이제 반도 못 왔다.
“자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먹으러 가야죠.”
“어디 어디?”
“나는 말차라떼야. 핫으로.”
아휴 못 말려. 굽이굽이 성곽 따라 걷는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보인다. 성벽 머너로 용연도 보인다. 용연 잔디밭 곳곳에 나들이객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젊은 연인들의 사랑스러운 기운이 곳곳에서 넘실댄다.
“캬, 젊음이 좋구먼.”
나이로 막내인 여자 동기다.
“EAST 샘, 일루 와, 나랑 팔짱 끼구 한 장 찍자. 내 심란해서 안 되겄어.”
까르르 놀린다.
오후 1시가 훌쩍 넘었다. 수원 화성 정문 격인 장안문이 아스라이 보인다. 정문이라 위용이 당당하다. 주변으로 상가들도 많고 관광객도 많이들 보인다. 알록달록 예쁜 카페와 음식점들. 그중 줄이 긴 감자튀김집이 보인다. 한 번 먹어보자며 주문한다. 짭짤하고 고소하니 맛있다. 평소 햄버거랑 같이 먹던 감튀 하고는 맛이 다르다며 다들 집어먹는다.
“역시 감자튀김은 벨기에지.”
“근데 프렌치프라이라고 하잖아. 왜 그런지 알아?”
역시 상식 풍부한 동기들이다. 알은체 하려고 했는데 틀렸다.
“아! 목말라, 아아 언제 먹으러 가요.”
“맞아, 맞아. 말차라테 땡기네.”
“오래 걸었더니 당 떨어지네. 어지럽다.”
아직 마지막 코스, 화서문이 남았다. 팔달산 정상 서장대는 마음속에서 진작에 접었었다.
“다 왔어요. 조금만 가면 돼요”
목마른 중생들을 이끌고 오아시스를 향해 마지막 힘을 쏟아 이들을 이끌어야 한다.
“그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응, 그려. 거 있잖여. 산에 가믄 말이여. 숨이 턱 밑까지 차고, 다리는 풀리고 힘들어 죽겄는디. 꼭 그려잖여. 다 왔다구.”
“샘, 맞아, 딱 그 짝이네. 아직 멀었지. 우리 꼬실려구.”
그러면서 재잘재잘 따라나선다. 입으로는 에구 힘들어 하지만 가만 보면 다들 근성 있다. 하긴 회사일 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하던 가락이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 8명 중 박사가 2명, 박사 과정 중인 사람 1명, 나머지는 죄다 석사다. 가방 끈 무지 길다들.
다행히 카페에는 자리가 있었다.
“와! 2만 보 넘게 걸었다.”
다들 핸드폰에 설치된 만보기를 본다. 생각보다 많이 걸었다. 수원 화성을 이렇게 풀 코스로 걸어본 적이 없었다고, 너무 좋았다고 박수 친다. 오늘 동서남북을 다 돌았으니 쉽지 않은 코스인 건 사실이었다. 서장대까지 가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 가까운데 서장대까지 갈까요?”
등짝 스매싱 당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가니 동기들이 더 편안해진다. 10살 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기란 이름으로 묶인 우리. 다들 건강하게 오래 뵈유,라는 인사말이 일상인 우리. 다음은 강원 양양에서 보기로 한다. 1박 2일로. 서핑을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농담하자 그 몸으로다? 까르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