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일기

5. 업무 매뉴얼

by EAST

공기업 경비원은 인기가 많다. 아파트 경비원에 비해 일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 때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 공공 부문의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고자 2017년부터 시행된 정책의 결과였다.


입사 면접 당시 면접관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면접관은 내가 다니기만 한다면 만 65세까지 계속 다닐 수 있다고, 마치 본인이 정년 보장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뜻밖의 수확에 쾌재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단기 고용직에 진절머리가 나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좀 몸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계약 만료로 그만두어야 했다. 계약 만료를 1~2개월 앞두고 있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재계약을 하게 될지, 아니면 다른 자리를 서둘러 알아봐야 할지. 그런 신경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었다.


처음 본사로 배치받았을 때 근무는 석간 근무였다. 바짝 긴장한 상태에서 근무했던 터라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2월의 매서운 한파가 부는데도 불구하고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근무 첫날부터 업무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허둥지둥 댔다. 그러는 게 당연한 것이라고, 차츰 익숙해질 것이라고 동료들이 따뜻하게 말해주었지만, 사실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직원들의 퇴근이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출입 차량도 뜸해지는 저녁 8시쯤 되자 비로소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잠시 쉬는 시간 동안 걸으면서 내가 과연 이 일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어둡고 짙푸른 하늘과 둥근달이 있었다. 외롭다고 느꼈다. 그 순간 눈물이 조금 나왔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자 차츰 일에 익숙해졌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무엇보다 하루에도 수백 대가 넘는 출입 차량들을 구분하는 게 급선무였다. 직원차, 업무차, 정기적으로 출입하는 차, 택배차, 방문차, 심지어는 잘못 들어온 차(근처에 공공기관 2개가 더 있다) 등등. 게다가 걸어서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는 직원 아닌 사람도 생각보다 꽤 있었다. 사원증을 착용하지 않고 오는 직원을 방문객과 구분하는 눈썰미가 내겐 아직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때였다.


이때 느낀 게 바로 업무 매뉴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3개월 수습이라고 하는데, 회사에서도 경비팀에서도 변변한 교육용 자료가 없었다. 현장에서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알려주는 게 끝이었다. 그러다 보니 막막했다. 일 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부터 알려주어야 할지, 어떻게 알려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경비팀 배치받고 나서 한 달이 고비라고들 했다. 한 달만 잘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큰 문제가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3개월 지나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다. 이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들 몫이었다. 새로 다시 알려주어야 하니까. 게다가 공석이 생기면 다른 조에서 대근을 들어와야 한다. 공석 생긴 조의 앞뒤 조에서 대근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16시간 연속 근무라 다들 기피한다. 사람을 새로 뽑을 경우 아무리 빨라도 보름의 시간이 걸린다. 그동안 계속 대근하다 보면 피로가 쌓인다. 몸에 좋을 리 없다.


기억을 되살려, 최대한 자료를 의지해서 낑낑대며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A4 용지 10장 정도의 분량이 나왔다. 신입 대원에게 건네주었다. 부담이 될까 봐 조심스러웠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도움이 많이 된다고 좋아했다. 내가 처음 올 때 느꼈던 막막함과 외로움을 그 매뉴얼이 조금이나마 없애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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