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안의 고교 동문 모임(3편 완)

by 그루터기

‘야, 너희들 말로 중풍이고 우리가 뇌경색이라는 것을 한방에서 침으로 고칠 수 있어? 그것은 머리 뚜껑을 열고 피딱지를 핀셋으로 떼어내야 되는 것이란 말이야.”

오늘은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 고교 동문 모임에서 연출되었다. 나 보다 한 해 더 늦게 입학한 고교동기 의대생 상준이를 비롯하여 한의대 동기 3명, 치대 선배 1명, 약대 후배 1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말 그대로 의 약학 계열 동문들이 어떤 연유인지 잘 나오지 않던 동문회에 총출동을 했다. 이변이 일어났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망국적인 의학 계열로의 쏠림 현상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의약학 계열은 이과 출신 학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임에 틀림이 없었다.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오늘의 화제와 토론의 테마는 단연 이른바 ’ 밥그릇 싸움’이었다. 서로 자신의 전공의 강점이나 상대적 우위 등을 내세우며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이번에 신입생인 된 제일 막내인 약대 후배도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선배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주장에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자신의 발언의 완급 강약 조절도 능숙하게 이어갔다. 오늘 모임은 시끌벅적했다. 모처럼 성황이었다. 하지만 캠퍼스 내의 우리 고교 동문 모임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었다.

“앞으론 자주 얼굴 좀 보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금은 중견 시인이 된 국문과 선배인 정태형에게 법대 선배인 중희 형이 일갈을 했다.

“아니, 이곳에 나오면 시나 소설에 관한 이야기 이런 것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무엇인가 얻어가는 것이 있어야 나오는 보람이 있지?”

“야 이 친구야 무어 대단한 것을 얻으려고 나오는 것은 아니지. 선후배 동문 간의 친목을 쌓고 결속력을 다지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 아니야? 서로 도울 것이 있으면 도와주고 말이지.”

두 선배의 말에는 모두 나름 일리가 있었다.

80년 5월 초 서울 소재 대학생들의 민주화를 외치는 연합 시위가 서울역 인근에서 이어가던 시절이었다. 각 대학마다 별도의 출정식을 마치고 미리 정해진 장소로 집결하는 방식이었다.

“영문과 후배 창옥이, 법대 중희, 병철이, 그리고 경영학과 시봉 후배 등이 대열의 전면에 나서는 것을 보았어. 나는 아주 든든했고 자랑스러웠어.”

고교 7년 선배 창섭이 형의 촌평이었다. 후배들이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대견했던 것이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도시나 지역명으로 이름을 지은 고등학교가 흔했다. 이런 고교 출신은 같은 도시나 지역명을 쓰는 여고와 이른바 ‘조인트 동문회’를 결성하는 것이 대세였다. 반드시 이름이 같지 않더라도 경복고와 진명여고처럼 이웃에 자리한 학교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 모교는 학교 이름에 지명이 없었다. 같은 학교 명의의 다른 여고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아쉬운 대목이었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우리 고교 동문들은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 고교 1년 후배 생까지는 학교별 입학시험을 거쳐 들어온 세대였다. 다른 무시험 전형 지역 학교 출신 고교 동문들 보다 소속감과 결속력이 월등하게 강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 모교 후배들도 무시험 전형 세대들이 주류로 자리 잡은 지 한참이 지났다. 그럼에도 캠퍼스 내 고교 동문 모임의 명맥과 색깔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사람은 삶이 무서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들 한다. 사회생활을 이어가는 운명적인 존재인 인간은 여러 조직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 시절 캠퍼스 안의 우리 고교 동문 모임은 많은 추억을 남겼고 선후배 간의 소통에 크게 기여한 아주 훌륭한 조직이었다. 같은 대학 출신 우리 고교 동문들은 모두 이를 인정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캠퍼스 안의 고교 동문 모임(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