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은 나무와 굽은 나무
“아이고 이런 피가 많이 나네. 조심해서 잘했어야지?”
“아저씨, 동생이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꿰매지 않아도 될까요?”
“우선 지혈을 하고 보아 가면서...”
누나가 삼장 말목 깎기 알바를 하다 손가락을 다친 나를 끌고 차 약포로 들어섰다.
초등 6학년 늦여름이었다. 우리 가족은 오랜 기간 정들었던 300번지를 떠나 관내 메인스트리트 도로변 한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겨왔다. 아버지는 이제 막 인삼 관련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누나는 신발과 담배 주류 기타 품목을 취급하는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우리 집 도로 건너 맞은편 집에선 대규모로 인삼 농사를 짓고 있었다. 당시는 인삼밭을 꾸미는 공정 중 하나인 둥근 소나무 원목의 껍질를 벗겨내는 작업이 가장 첫 번째 코스였다. 우리는 이 것을 ‘삼장 말목 깎기’라 불렀다.
지금은 제재소에서 가공한 네모난 각목에 콜타르 비슷한 검은색 도료를 입혀 나무가 썩는 것을 막는 조치를 하는 것이 대세이다. 하지만 당시는 원목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내어 벌거벗은 통원목을 활용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눈 비에 노출된 탓에 생기는 수분으로부터 나무가 썩는 것을 방지하거나 늦추는 방편으론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 ‘삼장 말목 깎기'는 초 중등생에게는 좋은 알바 아이템이었다.
세월은 무척이나 빨랐다. 벌써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어제 우리 집 오른편 공터엔 이미 일감이 수북이 쌓였다. 3/4톤 쓰리쿼터 화물차 2대 분의 말목이 당당히 자리를 잡았다. 아르바이트생들은 꼴망태에 소먹이 풀을 베어 넣을 때 꼭 필요한 도구인 낫을 들고 이미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오전 이른 시각에 서른 명이 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이미 몸싸움을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껍질 두께가 얇고 벗겨내기엔 수월한 이른바 쭉쭉 빵빵한 8등신 에이스 말목을 사재기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에이스들을 각자 자신의 작업 반경에 골라 모셨다. 되도록 옹이나 상처가 적고 직선으로 곧게 자란 것만을 골라내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나 역시 이 무리에 섞여 이 사전 선별 작업 대열에 기꺼이 동참했다. 이 ‘삼장 말목 깎기’ 품삯은 1개당 2원이었다. 초등생 공책 1권 가격이 10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이 임시 일자리는 그리 고된 직업은 아니었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말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뒤진 자식이 오히려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곤 했다. 하지만 이런 굽은 나무는 에이스 말목에 비해 작업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에이스 말목은 공정에 애로가 덜하기 때문에 작업 중 방심을 하기 마련이었다. 옹이나 생채기가 많고 굽은 나무의 껍질을 벗겨낼 때는 왼손으로 제대로 받치고 좀 더 긴장을 해야 했고 한 번이라도 더 낫질을 가져가야 하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에이스 말목 작업 시엔 이와 달랐다. 한 손으로 말목을 건성건성 잡았다. 나무의 윗부분에서 아래로 낫 끝에 힘을 주어 끌어내리며 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훨씬 수월했다. 한 번에 깎이는 길이와 표면적, 즉 단위 시간당 작업량이 많이 늘어나는 듯했다. 이 삼장 말목 깎기 공정은 독특했다. 낫으로 한 번에 끌어내리는 동작에 껍질이 벗겨지고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이에 아르바이트생인 나는 작은 희열을 느꼈고 스트레스도 한 방에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