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에 들이는 주의에 비해 곧은 나무의 그것은 아무래도 덜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때론 말목을 놓쳐 땅바닥에 떨어 뜨리기도 했다. 결국은 진도가 훨씬 빠르게 잘 나가리라는 기대와 달리 1개당 투하하는 총 작업시간은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이나 기타 부위를 베거나 생채기가 날 가능성은 훨씬 높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미리 사재기를 해놓은 곧은 말목을 깎아 내리던 중 큰 사고가 터졌다. 왼손 검지 둘째 마디의 구부러지는 곳에 3 센티를 넘는 열자상을 입었다. 상처는 깊었다. 이 상처에 대한 근본적인 처치는 봉합이었다. 당시 우리 관내에는 제대로 된 의원은 물론 약국도 찾을 수 없었다. 약방과 약포가 각각 한 군데씩 자리했다. 오랜 기간 보건소 터였던 곳을 차지했던 심 의원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간 이후였다.
차 약포 주인장의 판단에 맡긴 것이 결국 화근이 되었다. 대부분 여성들 반지의 정위치는 왼손 약지가 대세다. 그런데 요즘 이것이 랜덤으로 바뀌었다. 임시변통으로 지혈을 하고 봉합을 하지 않은 채 상처 부위의 치료를 마무리한 후유증은 제법 컸다. 삼장 말목 깎기 알바 덕분에 왼손 검지에 굽은 말목 옹이와 똑같은 상처를 훈장으로 얻었다. 이 훈장은 평생 나와 같이 갈 수밖에 없는 새 식구가 되었다. 나는 본디 손목시계의 행방을 잊은 지가 오래되었다. 반지는 더욱 그랬다. 반지를 가끔 장착을 한다 하더라도 그 정위치를 랜덤으로 가져가는 부류가 아님에 감사한다.
이번 알바에서 부지런히 낫질을 하여 얻은 노동의 대가는 282원이었다. 말목 하나를 깎아내는데 대한 보상은 2원이었으니 141개나 되는 말목을 깎아낸 것이었다. 내 절친 종수는 장마철인 미꾸라지 잡기 알바 시즌엔 늘 분주했다. 사기그릇 하나에 가득 채워 80원을 손에 쥐었다. 이 미꾸라지 알바가 삼장 말목 깎기 알바보다 더 돈이 되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미꾸라지 잡는 일은 내 전공 분야가 아니었다. 사람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곳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당시 내가 에이스 원목 사재기를 좀 자제했더라면 왼손 검지 둘째 마디의 옹이 훈장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능률만을 쫓다 보면 거기에는 늘 부작용이 생겼고 그늘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지금도 이와 같은 알바 자리가 다시 생긴다면 이제 나는 두 번째 훈장을 얻는 시행착오를 피할 자신이 생겼다.
“그래도 영업을 하는 분들은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지요?”
내 고교 절친이 근무하던 모 공기업 본부장의 일갈이었다.
나는 결코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내 주위엔 이른바 꽃길만 걷는 로열 패밀리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주요 부서 보직을 두루 거치며 이른바 경력 관리를 받는 혜택을 누렸다. 인사발령 때마다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직장생활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은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 대비 거친 들판에 널브러진 야생화의 질긴 생명력에 주목할 시점이다. 굽은 나무를 피하고 곧은 나무만을 찾아 나설 일이 결코 아니었다.
나는 손가락 상처 부위를 바늘에 실로 꿰어 봉합하지 않았다. 임시 처치에 그친 바람에 평생 옹이라는 훈장을 달고 사는 불이익을 받았다. 근원적이 처치법인 봉합시술을 놓친 것이 못내 아쉽다. 통증을 피할 수 없고 거추장스럽게 절차와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면 돌파를 하는 편이 훨씬 나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