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리 300번지 시대
300번지 본채 안방 아래 출입문 맞은편엔 정사각형에 가까운 직사각형 쪽문이 자리했다. 이곳을 통해 뒤꼍으로 가끔씩 드나들 수 있었다. 쪽문과 천장 중간 정도엔 사진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단에 두 개의 못을 받침대 삼고 액자 중앙 상단은 끈을 끼워 벽에 박힌 못에 붙들어 매었다. 앞으로 약간 기울인 사진액자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6. 25 한국 전쟁 당시 위생병으로 참전 후 이제 막 전역한 아주 호남형의 20대 중반 아버지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들어왔다. 오른쪽 맞은편이었다.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 당시 막내인 나를 무릎에 앉힌 어머니와 아버지 두 누나 형 6명의 가족사진이 자리했다. 머리의 무게를 버거워하며 떼를 쓰고 있는 나를 달래기 위해 장난감 대신 손에 쥐어준 열쇠뭉치를 던지는 찰나가 잘 포착된 스냅사진이었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를 치른 후 찍은 기념사진도 볼 수 있었다. 사모관대 차림을 한 외삼촌과 양볼에 연지곤지를 찍고 머리 위엔 족두리를 쓴 외숙모의 행복한 모습이 액자의 우측 상단을 차지했다.
삽으로 두엄이나 재를 담아 운반하는 새끼로 꼬아 만든 산태미의 용도도 다양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 오후 어둠이 오기 전이었다. 쪽문에서 장독대가 시작되기 전 부근의 눈을 반평 정도만 깨끗이 쓸어냈다. 그래서 흙바닥을 만들었다. 그 공간의 뒷 열 중앙 지점에 산태미를 세웠다. 빨래 방망이보다 약간 길고 훌쭉하지만 튼튼한 막대기를 산태미의 앞 쪽 상단의 중앙을 고였다. 버팀 막대기 아래쪽을 새끼줄에 길게 매어 쪽문 안쪽에서 새끼줄의 또 한 끝자락을 손으로 잡았다. 호시탐탐 참새가 모이기를 숨을 죽이고 애타게 기다렸다. 산태미 안쪽 구역엔 쌀이나 벼톨을 닭에게 모이 주듯이 이미 ‘흔쳐’ 놓았다.
숨을 죽이며 참새가 모이기를 학수고대했다. 드디어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한 시점에 회심의 새끼줄 당기기를 반복했다. 눈이 멀거나 동작이 우둔한 참새를 찾기 쉽지 않았다. 참새고기를 맛보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300번지 본채 안방 뒤편 쪽문을 열면 3평 내외의 장독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가로줄 하여 뒷 열부터 대 중 소로 장독 단지 여나무 개가 나름 질서 있게 열병식을 하고 있었다. 가운데 부분이 기이할 정도로 뚱뚱한 모양을 자랑하는 간장 제조용 된장 단지 세 개, 간장을 빼어낸 된장만 따로 담은 중간 크기 장독 대여섯 개, 옹기종기 모여 서로 간 우정을 과시하는 소형 단지들이 사이좋게 무리를 지어 있었다.
통풍과 채광을 위해 커다란 뚜껑을 수시로 열어놓는 가장 큰 장독 안엔 시커먼 간장 후보 물이 찰랑거렸다. 맑은 하늘을 부지런히 오가는 세털 구름이 이 적갈색 액체에 비쳤다. 네모난 매주 덩이 대여섯 개가 둥둥 떠돌아다녔다. 붉은색 마른 고추와 숯덩이, 반 움큼 정도의 통깨도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곤 했다. 외부의 불순물이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 모기장보다 코가 훨씬 촘촘한 천을 둥글게 잘랐다. 이를 장독 입구 턱 홈에 고무줄로 팽팽하게 옭아맸다. 간장을 담은 이 커다란 장독 바깥 둘레엔 매미 허물과 모양은 비슷하나 크기가 훨씬 작은 길쭉한 염분 허물이 불규칙하게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곳은 숨바꼭질 놀이 중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숨기고픈 단골 도피처였다. 장독 뒤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심심풀이로 이 괴이한 물건의 맛을 보곤 했다. 그저 찝찔한 소금기 이외에 별 다른 메리트가 없었다. 왜 그랬을까 하는 이유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중간 크기 장독엔 간장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기간 소금물에 담겨 제 역할을 다한 된장을 따로 분리하여 담기도 했다. 매주 가루, 고춧가루, 찹쌀 엿기름 등을 섞어 만든 빛깔 고운 고추장이 그 품위를 자랑하며 버티고 있었다. 광 안의 별도의 단지에 보관하는 쌀 보리쌀 밀 등 낱 곡식과 달랐다. 야외에 자리 잡은 단지엔 약간의 습기를 먹어도 큰 문제없는 소금, 무청, 새우젓갈, 제수용 굴비 묶음 등 먹거리를 고이 담고 있었다.
지금 흔히 사용하는 축하용 난 화분과 유사했다. 이보다 용량과 신장이 훨씬 우위의 호리호리하고 훌쭉한 모양의 특이한 단지엔 아주 소중한 보물이 숨어 있었다. 초여름 날 툇마루에서 우리 가족 모두가 즐겨 먹던 ‘큰 고모 표 상추 된장 비빔밥’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 다른 메뉴의 메인 재료였다. 꼭꼭 숨어서 가족들의 조속한 부름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지역과 지방에 따라 음식에 대한 명칭이 다른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 훌쭉한 단지 안에서 호시탐탐 세상 구경할 날만을 기다리는 ‘싱건지’도 그중 하나였다. 상대적으로 염도가 높고 많은 양념이 버무려진 김장 김치와 달랐다. 심심한 맛에다 고춧가루 등 웬만한 자극적인 양념을 넣지 않아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였다. 뿌리 부분을 제거한 파룻파릇한 줄기 부분인 무청만을 모아 쫑쫑 썰어 담그는 김치였다. 심플하고 소박한 음식의 대표 주자였다. 시큼한 맛이 일품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고가의 고추를 마련하지 못하는 집안에서 주로 김장 김치 대신 장만을 했다. 또는 여유가 있더라도 맛보기용이나 별미 음식으로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담그기도 했다. 사실은 이것이 대박 음식이었다.
이 싱건지와 ‘등겨장’ 된장국을 조합하여 버무리면 환상적인 ‘싱건지 된장 비빔밥'이 탄생했다. 아주 지독한 고추장 마니아인 나도 싱건지가 주재료가 될 경우엔 고추장이 아니라 반드시 등겨장만을 찾았다. 어렵고 힘든 시절에 마지못해 먹던 소외 음식이 몸과 건강에 좋은 웰빙음식으로 팔자를 고친 것이었다.
장독대에 자리한 대부분의 단지가 본디 제짝으로 정해진 뚜껑과 한 몸을 이루었다. 그렇지 못한 때에는 고무 대야나 ‘퍼니기’, 주름과 상처가 많은 양재기 등으로 그 뚜껑 역할을 대신했다. 바람에 날리지 않게 납작한 돌을 머리 위에 이고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