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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터기 Feb 06. 2024

진정한 컨텐츠란 무엇인가

                            

이 곳 책상 위에 휴대폰을 내려 놓으세요. 그 다음엔 ~~ 하세요.”
 아니, 무어 이런 따위가 있어, 세상에 이렇게 불친절한 곳이 다 있네...”

지난번 처음 귀촌 생활을 하던 당시 일이었다. 나는 읍내의 재래 시장통 입구에 자리한 휴대폰 대리점을 찾았다. 휴대폰 조작 요령에 관해 궁굼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점장으로 보이는 이 중생은 이제 신병교육대에 막 들어선 교육생들을 다루는 교관을 방불케했다. 불친절을 넘어 무례하기까지 했다.  

   

나는 제법 오랜 기간 동안 금융기관에 근무한 이력이 있다. 그래서 이런 곳을 찾을 때 이렇게 고객에게 불친절하게 응대하는 직원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었다. 금융서비스업 종사경력을 이유로 제대로 대접받고 싶은 심기가 또 발동한 것이었다. 다른 일반 고객 대비 내 기대 수준이 다소 높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일은 너무 황당했다. 참으로 지금까지 겪은 사례 중 최악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런 점장의 응대를 그대로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불친절을 넘어 아주 무례한 점장의 버르장머리를 당장 즉석에서 뜯어고쳐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통신사 또는 단말기 제조사의 직영점이나 지점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별개의 사업자인 대리점이니 어디 상부에 민원을 받아줄 곳도 따로 없었다. 지점이라면 본부 고위층에다 어필을 해 볼 수 있었지만 이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아마 이 점장은 돈이 안되는 손님이 찾았으니 어쩌면 짜증이 나서 그랬을 수도 있었다. 나는 그저 불만 섞인 항의를 던지고 이곳을 즉시 빠졌나왔다. 오늘 일진이 좋지 않은 날이라 넘겨버리기로 했다. 저런식으로 응대해서 이 대리점을 과연 제대로 꾸려 갈 수 있을지 의문으로 남았다. 아마 내가 다녔던 회사의 잣대를 들이댔다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어 중징계 처분을 면치 못했을 터였다.   

  

그후 약 2년의 세월이 지났다. 나는 다시 고향으로 두 번째 귀촌을 했다. 오늘도 읍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천변의 노상주차장에 내 애마를 세웠다. 이곳에서 가장 거리가 가깝고 눈에 쉽게 띄이는 휴대폰 대리점은 전에 내가 한번 들렀던 이곳이었다. 별로 즐겁지 않은 기억이 지워지지않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들어섰다.    

  

이제 약 3년 넘게 내 시중을 충직하게 들었던 휴대폰 케이스가 제법 연식이 되었음을 내게 알려왔다. 케이스 여러 곳이 긁히고 귀퉁이는 닳아 볼품이 없어졌다. 나아가 아래 부분은 휴대폰 본체에서 수시로 분리되어 제법 불편해졌다.


케이스 연식이 오래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다보니 케이스 뿐만 아니라 휴대폰이란 콘텐츠도 덩달아 노후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내가 찾고 있는 모델의 케이스로 교체가 여의치 않을 경우엔 무리를 해서라도 아예 최신폰으로 바꿀까도 생각해보았다.  

   

처음 이 케이스를 마련하는데도 적지않은 비용이 필요했다. 대부분 단말기 판매점에서 이런 휴대폰 케이스는 엑세서리 코너에서 따로 구입하는 것이 대세였다. 게다가 정품이라 내세우는 물건들은 제법 높은 정가표를 붙이고 있었다. 그것도 모델에 따라서 소비자가 손에 넣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휴대폰 제조사와는 전혀 다른 브랜드 제품이 거래되었다.   

   

현직에 있을 때와 여러 면에서 상황이 많아 달라진 것이 내 형편이었다. 비록 휴대폰 케이스이지만 정품임을 내세워 상당히 부담스런 가격을 부를까 좀 염려가 되었다.     

현재 보유 중인 재고는 없습니다. 제가 알아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번 점장의 무례한 응대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우선 매우 친절하였고 최소한 이곳을 찾는 고객을 밖으로 쫓아내는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번 말씀하신 휴대폰 케이스, 준비되었습니다. 시간되실 때 들르시면 됩니다.’  오랜 시일이 자나지않아 안내 메세지가 도착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그런지 문이 닫혀 있던데요?”
 예 맞습니다. 일요일은 쉽니다.”     


오늘은 이 대리점 영업장은 연로한 고객들로 제법 북적였다. 지난번 텅빈 공간을 혼자 지키며 내게 무례한 응대를 했던 점장은 보이지 않았다. 2명의 여직원이 고객에게 응대하느라 분주했다. 방금 전 고객과 얼굴을 마주보고 있던 직원이 금새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관중이던 휴대폰 케이스를 꺼내들며 내 연럭처를 확인했다. 2년전 같은 곳에서 마주했던 점장의 근무태도나 고객응대 자세와 오늘 눈에 띄는 2명의 여직원의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엄마, 그럼 이것으로 바꾼다? 마음에 들지?”

어머니 취향에 맞는 휴대폰으로 바꿀건인가를 묻는 딸의 자세엔 애교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저절로 녹아나고 있었다. 이 딸이 어머니에 대한 의견을 묻는 이런 분위기 조성을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번 내게 무례하게 응대한 점장은 이 가게를 새로운 임자에게 넘겨주고 이곳을 떠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내가 군복무을 마치기 전 대학 4년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모그룹 대졸 남사원 입사 공채에 지원을 했다.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면접시험을 진행 중이었다. 깔끔하게 검은색 양복정장을 차려 입은 면접관의 일갈이 이어졌다. 이 면접관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구경하기 여려운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실질이 제일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때론 형식이 실질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당시 면접관이 던진 이 말이 새삼 귓전을 맴돌았다


오늘은 이제껏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 케이스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 취향에 딱맞게 디자인한 물건을 손에 넣은 아주 운수 좋은 날이 되었다. 이번 여직원의 친절한 안내와 응대에 나는 갑지기 부자가 된 기분마저 들었다. 내 취향에 딱 들어맞는 휴대폰 케이스을 찾은 덕분에 나는 아예 최신폰으로 갈아타볼까하는 무리수를 접었기 때문이었다.  

    

이 보물같은 휴대폰 케이스를 장착하는 바람에 내 휴대폰은 어느새 최신폰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릇 세상 일엔 실질 못지 않게 외형, 형식도 무시할 것이 절대 아니었다. 내 휴대폰 케이스가 형식이었다면 여직원의 친절한 응대는 실질이었다. 아니, 여직원의 친절한 응대는 실질이자 형식인 진정한 컨텐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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