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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띠또 Nov 28. 2022

하나이자 둘, 둘이자 하나

마음가짐

이 사람과 '왜' 함께해야 하는지 이유를 찾아 결혼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이제는 how, 어떻게 살지 잘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흐름일 것이다.

하루뿐인 결혼'식'만을 위한 결혼이 아니라

두고두고 마음속에 담아 두고 둘이서 살아갈 앞 날을, 희로애락으로 가득할 둘의 미래를 가슴으로 준비하고자 한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 중 하나인 '머리와 어깨'를 추천하고 싶다.


아래는 간단한 감상 기록이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1920년대 일명 ‘재즈시대’라 불리는 풍요롭고 사치스러웠던 미국 사회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당시 미국이 1차 대전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겪은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방탕한 삶으로 상처를 잊고자 했다. 그러나 외면은 치유의 힘이 없다. 사람들은 여러 이벤트가 가득한 화려한 삶 속에서도 짙은 허무를 느낀 듯하다. 피츠제럴드의 이야기는 화려하면서도 초라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파란만장한 인생으로도 유명한 작가이기에 그렇게 생생한 묘사가 가능했으리라. 피츠제럴드는 가장 유명한 역작인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장편 5편과 160여 편에 달하는 단편들을 세상에 내놨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 덕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컸다. 무절제한 생활로 피츠제럴드 부부는 빚더미에 앉게 되고, 결국 아내 젤다가 신경 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피츠제럴드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단편을 쓰게 됐고, 준비하던 장편을 끝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뜨게 된다. 지극히 ‘작가’ 다운 삶이다. 아내 젤다는 글쓰기에 소질이 있었지만, 그러나 항간에 따르면 피츠제럴드는 아내가 글 쓰는 것을 싫어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기 작품에 아내의 글을 일부분 베껴 썼다고 하니 글솜씨가 상당한 아내를 인정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작가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머리와 어깨’는 이러한 사정이 여실히 반영된 작품이다. 호레이스는 문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고독한 천재다. 한편, 마르샤는 온몸을 떨고 어깨를 흔드는 춤으로 유명세를 얻은 무용수다. 둘은 호레이스 사촌의 장난 같은 주선으로 만나게 된다. 마르샤의 쾌활하고 거침없는 행동은 호레이스의 마음을 흔들어 놨고, 호레이스의 진지한 태도는 마르샤에게 신뢰를 준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결혼해 부부가 된다. 레이스가 공부를 마치고 자리를 잡기까지 마르샤가 계속 춤을 추며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로 둘은 서로를 ‘머리’와 ‘어깨’로 부른다. 그러던 중 아이가 생겨 호레이스는 가정을 위해 논문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로 결심한다. 뜻 밖에도 호레이스는 곡예에 재능이 있었고 스스로 개발한 신기한 동작들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아이를 돌보며 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마르샤는 남편의 책을 읽다가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별 뜻 없이 썼던 글이 책으로 출판되고 큰 호평을 받는다. 호레이스는 잊고 있던 지난날의 꿈을 떠올리며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피츠제럴드가 이 이야기를 쓸 때 얼마나 복잡한 심정이었을까. 아내를 사랑하지만 질투는 나고, 불행해진 결혼 생활을 돌리고 싶고… 많이 착잡했을 것 같다. 호레이스와 마르샤는 행복한 부부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여러 회한이 담긴 결말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결말에서 호레이스의 우상이었던 프랑스인 작가가 마르샤를 직접 찾아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마르샤를 칭송하는 글도 잡지에 싣는다. “마르샤 타박스는 호레이스 타박스와 결혼했다. 그는 매일 저녁 자신의 놀라운 공연으로 관중들을 기쁘게 해 준다. 이 젊은 부부는 자신들에게 머리와 어깨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이 말은 필시 타박스 부인정신적 소양을 채우고, 남편의 날랜 어깨가 그 가정의 부에 기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타박스 부인은 ‘천재’라는 명칭을 들을 만하다.’ 이거 어째 뭔가 바뀐 느낌이 든다. 촉망받던 천재는 열일곱에 예일대에서 석사과정을 밟던 호레이스,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삶을 살아내다 보니 갈망하던 꿈도 잊고,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고 있다니. 인생이 참 얄궂다. 그러나 시작이 어떻든 이제는 그렇게 되어 버린 것…     


    호레이스와 마르샤는 묘하게 '쇼코의 미소'의 두 주인공인 쇼코와 소유를 떠올리게 했다. 두 소설 모두 두 주인공을 대비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비교’라는 형식이 같다. 그런데 ‘부부’와 ‘친구’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비교가 주는 느낌이 달랐다. 쇼코와 소유는 철저하게 대비된다. 가령, 소유가 자유로운 젊음, 무한한 가능성을 만끽하고 있던 날들이 쇼코에게는 깊은 우울의 시간이었던 것, 현실을 맞닥뜨린 소유가 절망할 때 쇼코는 기운을 차리고 사회 구성원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모습 등 어느 한 명이 잘 될 때 다른 한 명은 초라한 시간을 견디는 모습이 반복된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냈지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없거나) 주지 않는다.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친구다. 그러나 호레이스와 마르샤의 관계는 다르다. 누구 한 명이 잘 안 풀릴 때 다른 한 명이 기다려주고 적극적으로 상대를 받쳐준다. 나의 힘든 시간은 오히려 상대방의 진가를 알 기회가 된다. 그것이 부부이고 가족이다. 몇 주 전에 ‘쇼코의 미소’를 읽을 때는 둘의 관계가 이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수긍이 된다. 무엇이든 쉽사리 단정 짓지 말고, 언제나 되돌아보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여러모로 느낀 점이 많다. 갓 시작한 부부가 경제적 어려움에도 서로를 감싸주고 희망찬 미래를 그리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독립된 존재로서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나도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마르샤가 가장 역할을 맡아야 했을 때 남편을 타박하지 않고 오히려 장난스레 우리는 ‘머리와 어깨’라며 묵묵히 일을 계속해 나간 부분을 읽고 참 현명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호레이스가 자신이 나설 차례가 됐을 때 평생 꿈꿔오던 것을 아무 미련 없이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남편의 건강을 염려해 운동 좀 하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당신이 운동을 제대로 시작하면 나도 책을 읽겠다는, 호레이스가 혹 할 만한 ‘조건’을 내걸어 남편의 건강을 챙기고, 그 덕에 호레이스는 또 다른 재능을 발굴해 자신감도 얻고 가정에 큰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도 스스로도 작가로 명성을 떨치게 되니 마르샤는 멋있는 여자다. 나도 나로서 내 일을 열심히 하면서,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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