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자 떠나라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이맘때면 늘 아쉽고 생각이 많아진다. 모든 것을 다 뒤로 하고 아홉수 마지막 며칠을 즐기기 위해 남해안을 5박 6일 코스로 한 바퀴 돌 생각이다. 크리스마스 이브라 서울에서 내려가며 미리 하루만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숙소를 예약했다. 나의 여행 습관은 즉흥적이다. 대충 목적지를 정하고 발길이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게 좋다. 다 저녁에 도착하여 숙소 체크인을 하고 크리스마스 밤미사를 보기 위해 전동성당으로 갔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신부님 말씀대로 팰리스나비다다. 나는 다문화가 좋다. 같이 어울려 잘 사는 게 어떤가. 한민족이라고 한국인만 사는 건 싱겁다. 런던스케치 책에서 보니 런던도 20세기 초만 해도 영국인만 있었으나, 지금은 다문화가 자연스럽다. 우리도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이튿날.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 산책을 나가는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프랑스 부부를 만났다. 먼저 인사를 건넸다. 파리지엥들의 느긋함과 약간의 거만함으로 나의 인사를 받고 몇 마디 주고받았다. 그 부부의 표정이 밝아지는 걸 느꼈다. 한국에 와서 그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나는 외국에 가서 볼거리를 보는 것보다 사람들의 친절이 더 그 도시를 기억하게 했다. 나도 주저 없이 우리의 친절을 보여줄 때다. 내 기분마저 좋아진다.
담양에 죽녹원으로 가는 길에 함박눈이 내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나는 동심으로 돌아갔다. 마구 소리 지르고 셔터를 눌러댔다. 오랜만에 느끼는 크리스마스 감성이다. 느끼는 자에게 선물은 온다. 대나무 숲을 함박눈을 맞으며 걸으니 이 무슨 횡재인가. 대나무의 서걱거리는 소리가 일 년의 피로를 한꺼번에 몰아냈다. 관장제림을 걷고 냇가 돌다리를 깡충깡충 뛰다시피 건넜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내 감정이 늙지 않아야지.
담양 하면 떡갈비지. 국수거리에 있는 옥빈관을 찾았다. 사람들로 가득 찼다. 자리에 앉자마자 밑반찬이 나왔는데, 일단 큰 접시에 수북이 정갈하게 담아냈다. 벌써 눈으로부터 식욕이 올라왔다. 떡갈비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야채샐러드와 감자를 얇게 채 썰어 드레싱을 올린 것이 나오고, 그밖에 내가 좋아하는 가지탕수육, 가시오갈피나물, 죽순무침, 간장게장, 꽃게무침 등등 전부 간이 딱 맞고 맛있었다. 이어서 나온 메인 요리 떡갈비는 겉이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나고 잡내 없이 부드러웠다. 사실 떡갈비가 메인인데 나는 밑반찬이 더 좋았다. 떡갈비는 너무 부드러워 약간 투박한 식감을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았으나 먹을만했다.
다음은 순천으로 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