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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dy Spider Jan 08. 2024

[01/07] 켈리와 새해 첫 데이트

우리 둘 다 T 맞다 그치!

# Prologue

80년대생 초딩맘들은 육아라고 하면  왠만하면 오은영 박사님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는다. 그 중 T형 엄마들은 자녀에게 애정과 정서 표현이 부족한 부모가 결국 진짜 "금쪽이"였다는 오 박사님의 말씀을 들으면 속으로 뜨끔뜨끔한다. 호, 혹시 나의 정서 표현 부족(나의 경우 거의 생략에 가까움)이 내 딸, 내 아들에게 영향을 미치면 어쩌지!? 그런데 오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오 박사님도 NT형이었다는 것을! 다만, 그 분은 NT라고는 하지만 공감 능력과 따뜻한 의도를 갖추었을 뿐이다. 


그래도 나에게 다행인건, 내 딸이 나와 참 유사한 성향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유전 원리에 따라 닮아 나왔겠지! DNA는 못 속인다고!) 오늘은 언제나 그렇듯 나와 딸의 아지트인 홍대에서 이것 저것 구경하고 데이트를 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우린 정말 T야 하는 순간들이 있어서 기록해 본다. 연역적인 나의 특성상 하나의 연결된 사상과 주제를 보여주지 못하는 브이로그 같은 쪽글은 어떻게 분류할지 고민할 것 같아서 한동안 브런치 글쓰기를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켈리를 만나고 감이 살아있을 때 내 인생을 기록하는 차원에서 몇 자 적어본다. 


# 너는 물이고, 나는 공기야.

켈리가 커 가면서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행동에 대한 욕구가 더 커지는 것 같다. 현재 아이를 도맡아서 키워주는 아빠(btw, 나는 별거(이혼) 중 / 비양육자 부모)는 사사건건 뭐를 못하게 한다고 한다. 아이브 "덕질"도 인생 낭비라고 하고 하지 말라고 하고, 아이가 세뱃돈, 용돈 모아 자기 돈이 있지만 그것을 막 쓰게는 하지 않고 관리를 하는 것 같다. (물론 이 지점은 나도 동의한다) 켈리가 오늘 던진 화두는 이것이다. 엄마는 내가 이렇게 아이브 덕질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다. 

켈리 : "엄마, 엄마는 내가 이렇게 아이브 덕질하는거 어떻게 생각해?"

엄마 : "엄마는 괜찮은 거 같은데. 어차피 인간의 흥미나 사랑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너가 지칠 때까지 해 봐. 아마 크고나면 하라고 해도 안할걸. 엄마는 뭐를 하든지 끝까지 가보고 거기서 느끼는 바가 있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켈리 : "근데 아빠는 그게 인생 낭비라고 하지 말래."

엄마 : "글쎄, 어느 한 사람의 특정 시점에서 인생이 "낭비"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그거는 아빠만의 관점 같은데. 아빠 말도 일리는 있을 수도 있지. 그런데 있잖아, 너는 엄마는 해도 된다 하고 아빠는 하지 말라고 하고 그러면 좀 혼동되지 않아? (부모간 양육 방식의 차이가 극명하면 자녀에게 혼동과 불안정을 준단는 것을 금쪽이에서 언젠가 본 게 있어서 물어봄)"

켈리 : "응, 나는 괜찮아. 아빠 말 들어주고 엄마 도움 받아서 아이브 포토카드 사면 되자나. (현실적인 아이)

엄마 : "하하하, 너랑 나랑 비슷한 것 같아. 자유로운 영혼! 그거 알아? 물은 아무리 좁은 틈새도 찾아서 거기로 흘러가. 너는 물이고, 엄마는 공기야. 통제될 수가 없어. (그리고, 아빠는 (아마도) 쇠 같아.)"


# 탕후루 사건

맛있는 점심을 먹고 요즘 유행하는 탕후루를 하나 사서 나눠 먹다가 켈리 목에 탕후루 사탕이 살짝 걸렸다. 

켈리 : "엄마, 목이 살짝 따가운데 탕후루 사탕조각이 걸렸나봐"

엄마 : "응 근데 그거 설탕으로 만든거라 네 목에서 녹을 껄. 목이 따뜻하고 수분이 많잖아. 어차피 너가 이겨."

켈리 : "아 맞네,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아!"

엄마 : "첨에 아프다가 나중에 안 아플걸"

켈리 : "아 진짜! 엄마 말이 맞네!"

이런 대화를 길거리에서 나누는데 문득 내가 정말 T여도 한참 T다 생각이 들었다. ㅎㅎ 원래 "안 아파? 많이 아프겠다~~"라고 해야 할텐데... 혹은 불같이 화를 낼 수도 있겠지 "그러게 천천히 좀 먹지!!" 라고. "보통"의 엄마라면.. 근데 "보통"의 딸이라면 더 엄살을 부렸을 법도 한데 엄마 말이 맞다고 좋아하는 켈리도 슈퍼 T 같았다. 


# 출제자의 의도

켈리와 밥을 먹으며 "(고슴)도치맘'의 순간을 느낀 대화를 역시나 self-documentation 목적으로 기록한다. 

엄마 : "엄마가 요즘에 외교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 영상 찍어 보내주거든. 어떻게 시험 준비하는지 알려주는 거야"

켈리 : "예를 들면?"

엄마 : "응, 엄마 전략은 장점 강화 단점 방어 전략이야. 너는 5개 과목을 시험보는데 너가 잘하는 게 2개고, 못하는 과목이 3개 있으면 잘하는 과목 공부를 우선적으로 할꺼야, 못하는 과목에 더 집중할꺼야?"

켈리 : "잘하는 과목"

엄마 : "오, 너도 나랑 똑같네. 맞아, 왜냐면 이게 5개 과목 평균 점수로 통과하는 거라서 잘하는 과목에서 점수를 확 땡겨 올리고, 못하는 과목은 최대한 방어하면 되거든. 근데 이게 공부 과정에서 심리적으로도 영향을 미치는게 잘하는 과목을 공부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못하는 과목 공부하는 괴로움을 어느 정도 없애주는 것도 있어. 근데 잘 아네~"

켈리 : "응, 근데 내가 잘하는 과목이라고 답한 이유는 원래 보통 사람들은 못하는 과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텐데, 엄마가 이 문제를 낸 것 자체가 엄마는 다르게 생각한다는 거잖아. 그래서 내가 엄마 심리를 맞춘거야"

엄마 : (솔직히 좀 소오름이 돋으면서) "와 진짜? 대단하다..."

켈리야 사랑한다. 


# 소결

살짝 희망을 가져본다. 워(커)홀(릭) 맘이었던 내가, "애 버리는 년" 소리를 남편에게 들었던 내가, 켈리 사춘기에 이런 저런 문제에 맞닥드려 고민하고 있다면, 당장에 SWOT 분석과 issue tree를 만들어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성능 좋은 T형 엄마가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켈리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마인드를 "안전하게" 북돋아주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엄마, 무엇보다 공부하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켈리를 위해 주식을 사 모을 수 있는 부자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육아에는 정답이 없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각자 자기 부모들에게 배운 방식을 그대로 반복한다. 자유방임형 부모 밑에서 잡초처럼 자라난 나는 역시나 자유방임 육아철학을 따르고 있고, 통제관리형 부모 밑에서 남편은 그 반대의 방식을 쓰고 있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답이 없는 문제일 수록 소신껏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너무 자기만의 관점을 고집하지 않고 아이의 성장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선이 1이라면 나머지 차선, 차악, 최악은 다 똑같은 0이다. 최선을 찾는데 지치거나 두려워서 문제를 직면하지 못하고 차선의 연속인 삶을 살아왔었던 내가 요즘 깨닫는 원칙이다. 


이제 곧 4학년 될 아이와 이런 쏠쏠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인간인가. 앞으로는 켈리와의 이런 선문답 같은 대화를, 그 짜릿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매거진에 기록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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