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우당탕탕 뉴질랜드 입성기

by 꿈꾸는 쉼터

전례 없던 대혼돈의 시기, 코비드로 인해 한참 미뤄진 나의 해외 생활은 2022년 12월에 시작되었다.


나는 광역시에서 태어났지만 공기 좋은 곳에 살고 싶다는 아버지의 로망을 따라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생이 되던 시절 아주 깊숙한 시골에 집을 지었고,

현관문을 열면 계곡과 꽃과 산이 보이는 그러한 환경에서 나는 학창 시절을 보냈다.

(3-40대를 시골에서 살아보니 나이 들면 편리한 도시로 돌아오는 게 낫겠다 판단하신 부모님은 최근 다시 도시의 아파트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따라 어릴 적부터 전국 곳곳을 다니기도 하고, ‘지방러’ 치고는 서울도 꽤 자주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서울’에 대한 로망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사람이 많고 복잡한 환경이 싫었다.


그래서 대학 진학도 지방 국립대로 갔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강제로(?) 경제적 독립을 당했기 때문에 나로서는 국립대가 최선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부모 인생과 자식 인생은 별개라는 부모님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도 행복하고, 성인이 된 자식에게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조언은 하되, 모든 선택과 책임은 스스로가 지는 그러한 삶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큰 목표가 없었던 대학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행을 준비하던 그 시기에 갑자기 코로나가 터졌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꼼짝없이 갇혔다.

그냥 그렇게 1년이 지났다.

그 시기에 생산성 있는 일을 하진 않았던 것 같다.

다만 여행이 너무 고파졌을 뿐.


규제가 조금 완화된 후, 사람들이 다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제주 여행을 열심히 다녔다.

그때 묶었던 여성 게스트 하우스에서 어떤 언니를 만났는데, 첫인상이 강렬했던 기억이 난다.

키도 크고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너무 예쁜 언니였다.

그런데 역시나는 역시나. 배우로서 연예계 생활을 하던 언니였다. 내가 봤던 유명한 드라마에서도 주 조연을 맡았던, 멋지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 언니와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이었다.


이후 연락을 주고받던 와중, 언니가 서울에 있는 본인의 집에서 한 달간 지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다.

말해 뭐 하겠는가. 내 대답은 당연히 YES!!!


그렇게 한 달 살이로 시작된 내 서울행은 나를 1년여간 붙잡아 두게 된다.

언니의 집에서 나는 한국 어학원을 다니던 독일인 친구와 함께 살았다. (언니는 그 당시 남는 방을 에어비앤비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 친구와 나는 추후 우정타투를 새길정도로 가까워진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 친구와 언니를 통해 나는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친구를 통해 나는 해외살이의 갈망을 더 키워 갔고, 언니를 통해 나는 촬영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MBC 카메라 외주팀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세상이었다.

비록 카메라 막내 스탭이었고, 또 일은 고되고 변동적인 스케줄이 꽤나 힘들었지만 그곳에서 잊지 못할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뉴스, 예능, 드라마, 교양 모든 프로그램에 들어가며 평생 만나기도 힘든 사람들을 그 몇 개월 사이에 다 만났다.)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이 지나갔다.

코로나에 대한 규제가 완전히 끝나갔고, 나는 곧바로 유럽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아쉬웠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오랫동안 갈망했던 시간을 맞이했다. (이 여행을 통해 나는 또 독일 1년 살이를 계획하게 된다. 이에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에 풀도록 하겠다. )


한 달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그때, 나는 한국에 돌아가자마자 뉴질랜드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왜 뉴질랜드였을까?

나는 반지의 제왕의 열렬한 팬이었다.

또 초등학교 시절 영어를 가르쳐 주시던 외국인 선생님이 뉴질랜드 분이셨는데,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언젠가는 꼭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가보리라! 마음속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또 원래 계획했던 캐나다는 그냥 그 시절 흥미가 떨어졌다. 추위를 많이 타서 추운 나라로 가는 게 싫어졌나?


어쨌든 긴 여행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3개월 만에 다시 뉴질랜드로 떠나게 된다.


12월.

‘이제는 정말 여행자의 삶을 살리라!‘

하며 차도 팔고, 주택 청약도 해지하고, 건강보험도 해지한 후 탈탈 털어 떠났다.

막연하고 무모했다. 건강 보험도 해지했다는 소리는 주변에 하지 않았다.

미쳤다는 소릴 들을 거라는 생각에.


또 얼마 없는 대부분의 나의 짐을 청산하고,

꼭 필요한 옷가지와 물품들을 큰 캐리어 하나에 담은 뒤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폭설이 내려 비행기가 뜰 수 없단다.

별수 있겠는가. 그냥 좀 쉬다 간다 생각하자-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렇게 나는 항공사에서 제공한 호텔에 3일간 묶여 있게 된다.


조금 긴 휴식이 되었지만 3일간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며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었다.


그렇게 어렵게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런데 또 이런.

내 모든 짐이 들어있는 캐리어가 분실됐다네?


나의 뉴질랜드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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