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왔지. 비를 뚫고 온 검은 고양이가 밥을 먹는다. 밥은 아침에 일어나 그릇에 가득 부어준 사료다. 그동안 쫄쫄 굶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한 달 만에 와서 주는 밥이니 저 녀석에겐 한 끼 달고 푸짐한 식사일 것이다.
아침 상에서 나온 생선뼈까지 알뜰하게 먹는다. 당당하다. 바로 옆 툇마루에 앉아 저를 빤히 보고 있는데도 전혀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오롯이 먹는데만 집중한다.
까만 털에 노란 눈, 날렵하게 생긴 체를 보니 지난달 한밤중 대문 앞에서 난투극을 벌였던 길냥이들 중 한 놈이다.
한 달 전 길냥이들의 소름 돋는 괴성과 살벌한 난투전이 있었다. 그런 일이 있은 그다음 날 아침에 저 녀석이 어슬렁 들어와 밥을 먹고 갔었다. 저 녀석이 또 온 걸 보면 그동안 길냥이들의 맛집이었을 우리 집이 녀석 차지가 됐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집에서 살지는 않으니 내가 주는 사료를 보고 우리 집을 찾겠지.
사실 길냥이들이 우리 집에 드나들면서 덕 본 게 하나 있다. 어느 날부턴가 쥐가 사라졌다. 전엔 집에 와서 보면 마루나 대청에 쥐똥이 수북했었다. 납득이 안 되는 건 농사를 안 지으니 곡식을 쟁여두던 창고도 텅텅 비었고 게다가 살림 살지 않는 빈집이나 다름없으니 먹을 게 없어 쥐가 발 붙이고 살만한 곳이 못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집에 오면 팔 걷어붙이고 쥐똥을 쓸어내고, 청소기를 돌리고 집안을 샅샅이 걸레질하느라 바빴다.
비어둔 집이니 먼지 쌓이는 거야 그렇다지만 쥐똥 치우는 일은 늘 걸쩍지근하고 마뜩잖았다. 어느 순간 쥐꼴을 안 보니 비워진 채로도 깨끗하고 청소도 한결 수월하고 한갓지다. 따지고 보면 다 저 녀석들 덕분이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와서 보면 시골은 도시와 다르게 온갖 미물들이 공존한다. 빈 집이 그냥 빈 집이 아니다. 온갖 생명체들이 집안팎에서 지들 스스로 공존하고 있다. 바퀴벌레를 제외(아직까지 바퀴벌레는 못 봤다)한 고양이, 개미, 공벌레, 나비, 나방, 벌, 지네, 지렁이, 쥐며느리, 뱀, 비둘기, 애벌레, 참새, 제비, 까치, 까마귀, 이름 모르는 새들까지, 그중 제일 덩치 큰 녀석이 저 녀석이다. 6월 여름밤 그 사건 이후로 녀석이 달라졌다.
여느 때 같으면 밥 먹을 때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힐끔거리고, 밥 먹다가도 내 인기척에 놀라 핫바지에 방귀 세듯 간지 모르게 개구멍으로 달아나곤 했는데, 오늘은 녀석이 아주 여유 만만이다. 대문으로 걸어 들어와 아침을 먹고 있다.
밥그릇을 싹 비운 뒤 혀로 제 몸을 핥다가 비 오는 바깥을 보고 있다. 빗소리를 듣고 있는 건지 비멍을 즐기는 건지 배가 불러 나른한지 아주 눈빛까지 게슴츠레하다.
지금까지 못 보던 저 여유는 어디서에서 비롯된 걸까. 저 녀석도 우리 집에 처음 와 내게 곁을 준 봄이처럼 저러다 어느 순간 다가오려나. 두고 보면 알겠지.
비오는 날의 시골 집 풍경
빗방울이 굵어진다. 물받이를 타고 내려오는 물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티브이에서는 비로 인해 발생한 사건 사고 소식을 전한다. 비가 좀처럼 갤 조짐이 안 보인다. 툇마루에 앉아서 보니 어제 물바다였던 논에 물이 빠졌다. 들판이 온통 초록이다. 초록 들판은 여름에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툇마루에 걸터앉으니 눈이 다 시원하고 맑다.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 비 오면 담배 한 대 피우며 나른한 눈빛으로 들판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자리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잠시 일손에서 놓여난 아버지가 이곳에 앉아 담배 한 대 참의 망중한을 나른하게 즐기셨는데. 아버지는 그때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서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하신지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연하다. 비도 오고 오늘 이 자리에 앉아 보니 몸과 마음이 다 풀어진다. 커피 한 잔 생각나 부리나케 내렸다. 비 오는 날 커피는 향이 먼저다. 참 별일이다. 고양이 녀석도 오래 비를 긋고 있다. 가만하니 잠시 그때 그 시절로 돌아온 듯하다. 나도 오늘은 툇마루에 걸터앉아 비멍에 고양이멍, 들판뷰 멍까지 오롯이 한번 즐겨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