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냐 이과냐 그것이 문제로다
최근 한 IT 스타트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직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대의 중반에 접어든 나이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의 직장'을 넘어 이 세계의 '직업' 자체에 관심이 많다.
'왜 어른들은 이과에 가라고 했을까', '왜 문과에서 상경계열이 취업이 잘될까'. 의 고민의 답을 스무 살이 되고 어렴풋이 이해했지만 이제야 활자로 표현할 수 있다.
결국 창작자 VS 기술자는
흔히 말하는 문과 VS 이과이다.
물론 논리의 비약이며, 수많은 예외케이스들이 존재한다. 로켓을 만드는 사람은? 신약을 개발하는 사람은? 혁신과 혁명은 기술에서 비롯되지 않나? 너무나도 맞는 말이다. 다만 평범한 절대다수의 목표인 취업과 직장에 한해 생각해보면 창작자 vs 기술자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이과에 가면 저마다의 기술을 배운다. 고려대한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술의 정의는 '어떤 원리나 지식을 자연적 대상에 적용하여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만드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수단.'이다.
1학년 때부터 원리와 지식을 차곡차곡 쌓으면서 학년을 거듭하며 뼈대에 살을 붙인다. 뼈대 없이 살을 붙일 수 없기에 기술의 실체를 만들어 내기 위해 시간이 꽤나 걸린다. 재능의 여부에 관계없이 들여야만 하는 절대적인 시간이 존재한다. 물론 그 시간이라는 것이 재능과 노력으로 단축될 순 있지만 말이다.
문과는 어떨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문과의 정의는 '사상, 심리, 역사 등 인간과 사회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 문학, 철학, 사학 따위 문화에 관한 학문을 주로 이르며 때로는 법률, 경제학 따위도 포함한다.'이다.
비상경계열의 문과에서는 인간과 사회에 관하여 연구하고, 문화에 관한 학문을 가르친다. 인간과 사회, 그리고 문화를 이해할 때 절대적인 선수과목과 후수과목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가는 사회와 문화에 무조건적인 '진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문과의 학문에 깊이가 없다, 전문적이지 않다.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문과의 학문에는 끝과 정답이 없으며, 지식이라는 뼈대를 바탕으로 살을 붙일 때, 이전에 배웠던 것에 또 하나의 사실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도 어렵다. 살을 붙이는 단계, 즉 전문가가 되는 단계에서는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이과의 응용과는 다르다. 나의 색과 나의 생각이 묻어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만 전문가이자 직업인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글을 쓰고,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고, 역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해석을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창작이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왜 이과의 기술자들은 창작의 영역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직업인이 될 수 있지만, 왜 문과의 창작자들은 무얼 만들어내야 하나?라고 묻는다면 문과는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고, 이과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기에' 존재한다.라고 답할 수 있다.
직업 시장에선 우리 사회의 생존에 꼭 필요한 다양한 기술 기반의 직업이 당연히 수요가 많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은 생존 그 다음의 문제이기에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다.
'문과가 이과보다 쉽다.'라는 말은 고등학교에서나 존재할 수 있다. 평범한 절대다수가 전문성을 가지기엔 어쩌면 이과의 기술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창작의 영역까지 가지 않아도, 응용의 수준에만 도달해도 '전문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문과와 이과를 언급했던 이유는 창작자와 기술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했을 뿐 사실 실제로 그 경계는 모호하고, 모든 직업엔 두 가지가 섞여있으며, 문과의 학문을 바탕으로 기술자가 될 수 있다. 다만 '왜 이과가 취업이 잘 되는가', '왜 취업 시장에서 이과의 수요가 높은가'의 측면에선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고민이다.
기술자에 가까운 직업인이 될 것인가, 창작자에 가까운 직업인이 될 것인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아예 흥미와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그리 큰 장점을 지니고 있지 않단 걸 안다.
그렇기에 기술을 40% 섞은
60%의 창작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라는 무기 없이 순도 100%의 반짝이는 창작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을 터...
가끔 순도 100%에 가까운 창작자들을 보면 고개가 비스듬해지고 눈이 살짝 커지면서 나도 모르게 작게 '와..'를 외치게 된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과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무언가를 보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감동적이다. 그런 창작자들이 기술까지 갖춰 직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존경의 마음이 생긴다.
나 스스로 창작자가 아님을 알면서도 AI가 무한으로 그려내는 지브리풍의 그림보다 처음 보는 글과 그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접할 때 내 눈이 반짝이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나는 창작을 동경한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나의 직업이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직장이 아닌 '직업'은 점이 아니라 선으로 이뤄진 삶의 발자취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해볼 수 있는 모든 것, 모든 도전을 해보고 싶다.
20년이 넘도록 매일 세끼를 먹어도 여전히 음식 취향이 확고하지 않고, 일주일 후면 좋아하는 음식이 바뀌는 우리가, '직업'이라는 단어를 피부로 느낀 지 수년 만에 평생의 직업을 정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평생 갈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쩌면 이룰 수 없는 큰 바람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