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가 바라본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착각
한 나라의 정체성은 세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러나 오늘날 MZ세대가 마주한 ‘한국의 정체성’은 혼란스럽다. 한강의 기적, 분단국가, K-POP의 나라, 헬조선. 이 모든 키워드가 한국을 설명하는 이미지로 소비된다.
미술에서의 한국적 정체성은 어떠한가. 달항아리, 단색화, 먹과 한지가 사용된 작품들은 여전히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기성세대가 예술을 통해 서술한 ‘한국’은 100년도 더 전에 멸망한 조선의 양반·선비 정신과 여전히 혼동되고 있으며, 마치 그것이 오늘날 우리를 설명할 수 있을 것처럼 해외에 전시되고 판매된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얼마나 선비처럼 살고 있는가. 이러한 키워드들이 과연 현대 한국인의 다양하고 복잡한 정체성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을까?
특정 시기에 유행했던 단색화는 몇몇 평론가와 남성 작가들이 개성을 내려놓고 하나의 미학적 흐름을 함께 구축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단색화는 무비판적으로 ‘우리 것’이라는 이름 아래 시장에서 소비되고, 대중의 취향을 장악해 버렸다. 이와 함께 대량 생산되고 있는 것이 달항아리이다. 단색화와 함께 인테리어를 채우는 머스트해브 아이템이 되어버린 달항아리는 무결한 흰색 뒤에 빈곤한 취향을 숨기는 물건으로 전락해 버렸다.
현대미술의 최전방 행사라고 볼 수 있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숯의 작가’로 알려진 이배는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통적인 배첩(marouflage) 기법으로 바닥과 벽을 흰색으로 도배한 후 검은 먹으로 붓질을 보여주었고 달집 태우기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공간과 시간의 맥락이 떠난, 지구 반대편에서 이루어지는 텅 빈 리추얼이었다. 한국의 전통이 유럽 한복판으로 옮겨져 동양적 이국성이 더욱 강조됨으로써 관객들은 마치 정신이 고양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미술이 결합된 이미지는 깊은 성찰 없이 반복 재생산되며, 정체성 논의보다는 그저 ‘한국적 미감’이라는 이름으로 상업적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통의 계승과 현재의 담론은 다르다. 그러나 한국 미술에서는 이 두 개념이 구분되지 않은 채 뒤섞인다. 이 혼합은 특히 젊은 세대에게 혼란을 준다. 젊은 작가들에게 한자보다 익숙한 것은 영어이며, 서예와 먹보다는 SNS와 케이팝이 더 가까운 존재이다.
서양 문화와 시각언어는 이미 일상 속 깊이 스며들어 있고, 우리는 단순한 서양의 모방을 넘어 그것이 여러 번 복제되고 변형된 ‘우리 것’이 되어 역으로 세계로 수출되는 상황에 있다. 혼종이 거듭된 문화 속에서, 서양적 조형언어를 쓰면서도 자신이 그것을 ‘뿌리’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뿌리와 현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현상은 서양을 닮을 수 있지만, 뿌리는 여전히 한국이다. 그러나 이 경계가 흐려진 상태에서 작품을 제작하다 보면, 스스로의 뿌리를 서양의 것으로 착각하거나, 전통을 단순히 이미지 마케팅 수단으로 재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케데헌의 성공 사례는 이러한 논의에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미국 스튜디오 제작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와 일상을 세밀하게 반영했다는 점이다. 서울의 거리 풍경, 국밥·김밥 같은 음식, 무속과 전통 문양, 응원봉이나 노리개 같은 디테일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한국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은 감각을 준다. 이제 한국을 말할 때 ‘고전 전통의 반복’이나 ‘서양 베끼기’만이 답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겐 이러한 작품들이 지금의 한국성을 논할 때 더 와닿는다. 전통과 외래의 경계에서 무엇이 ‘순수한 한국성’인지 따지기보다, 혼종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한국적 감각을 날카롭게 길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현재의 한국 미술은 어쩌면 매너리즘의 시기에 접어든 듯하다. 서양을 충분히 받아들인 뒤, 더 가져올 것도, 새로 개척할 것도 없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의 '우리 것'을 외쳐야 한다. 다만 그것은 무의식적으로 답습한 형식과 상징을 비판적으로 해체하고, 그 안에서 오늘의 한국을 다시 정의하는 시도에서 비롯되어야 할 것이다. MZ세대의 한국 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은 전통을 그대로 붙드는 것도, 서양을 무비판적으로 복제하는 것도 아니다. 혼종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지금, 여기’의 한국적 감각을 날카롭게 구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