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비평 14.
1. 이윤희, 다채로운
우리가 잘 알려진 작가에게 ‘씨’자를 붙일 때는
호메로스나 단테나 셰익스피어가 누리는 호칭 생략의 명예로운 자격이
그 작가에게 모자란다는 암시가 있다.
- 에드거 앨런 포, 『글쓰기의 철학』, 시공사, 2018.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가 마음에 들어온다.
『스페이스 오디세이』 네 권을 읽고 나서
아서 C. 클라크로 검색되는 책을 내리 몇 권 샀다.
지난해부터는 포를 읽고 있다.
포는 시인, 소설가, 비평가, 추리소설의 창시자, 공포소설의 완성자이며,
「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은
쥘 베른, H. G. 웰스, 아이작 아시모프에게까지
큰 영향(『한스 팔의 전대미문의 모험』, 시공사, 2018)을 끼쳤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대한민국에 이윤희가 있다.
20세기 어느 날,
어여쁜 표지 그림에 이끌려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푸른책들, 1995)을 읽고 매료되었는데,
이 작가가
『네가 하늘이다』(현암사, 1~4권, 1998, 푸른책들, 2008)에서는 역사를 묵직하게 다루더니,
『끝없이 웃는 호랑이』를 시작으로 어느새 서른 편이 넘는 우화를 내고 있다.
이윤희는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동시,
1990년 아동문예작품상에 단편동화,
같은 해 새벗문학상에 장편동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지 30년이 넘은 중견 작가로,
대표작 한 편을 꼽기 어려울 만큼 작품 세계가 다채롭다.
거기에다가 2020년에는
우화를 다시 쓴 동요 가사를 멜론에 등록하기 시작했고,
유튜브 동화 노래 채널에 계속 업로드하고 있는 “어머나쏭”은
중국에 수출이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오늘도 대한민국 아동문학 숲에 새 길을 내며 걷는
이윤희의 대표작을 찾아보자.
2. 『네가 하늘이다』, 묵직한
동학 농민전쟁을 소재로 한
2000매짜리 청소년 장편소설 『네가 하늘이다』는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대표작이 될 만하다.
이윤희는
‘우리가 하늘’이나 ‘내가 하늘’이 아니라,
‘네가 하늘’이라고 말한다.
너를 하늘처럼 대할 때 비로소
나도 하늘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늘이라면
너도 하늘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동학의 가르침 “사람은 곧 하늘이다”를
이보다 더 잘 나타낼 수 있을까?
평론가 김지은은 이 책을
“사실적 고증에 공을 들인 역사동화”라고 지적하면서,
“역사동화를 쓰고자 하는 후배 작가가 있다면
이윤희 작가의 창작 과정은 하나의 전범이 될 것”1)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이윤희는
“아들과 아들의 친구들, 그 아들의 아들, 또 그 아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롭고도 건강한 눈을 가져,
조상의 피와 땀을 바로 이해하기를,
그리하여 건강하고 가슴 따뜻한 사람으로 잘 자라나기를 소망”(작가의 말)하는 마음으로,
시민 강좌, 역사 특강, 관련 행사, 농민군 전적지 탐사로 지리산 종주에까지 참여하여
나무 하나, 풀 이름, 당시 풍속을 공부하면서
자료 조사를 120% 이상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네가 하늘이다』 길 끝에
『35』(하마, 2020)가 있다.
만화 같은 그림이 섞여 있어 지나치게 무겁지는 않지만,
사실화는 자료 출처와 함께 무게감을 더한다.
그러므로 『네가 하늘이다』와 함께
이윤희 대표작으로도 손색이 없다.
3.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 사랑스러운
저학년 동화집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에는
자연의 이치를 가르쳐 주는 장난꾸러기 요술쟁이를 내세운 표제작을 비롯하여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랑스럽게 읽힐 만한
동화 여섯 편이 실려 있다.
《삼국사기》 권46 열전 설총조에 따르면,
7세기 이 땅 한반도에 우화가 있었다.
신라 제31대 왕 신문왕은
화왕(花王 : 모란), 장미, 백두옹(白頭翁 : 할미꽃)이 나오는
「화왕의 이야기」를 다 듣고 무릎을 치면서,
설총에게
“그대의 우언(寓言)에는 정말 깊은 의미가 있”2)다고 한다.
‘우언’3)이란
“다른 사물에 빗대어서 의견이나 교훈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말”(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이며,
‘우화’란 “비유적인 형식을 빌어서 교훈을 목적으로 쓴 짧은 이야기”4)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우화는
「화왕의 이야기」로부터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에 실린 「진짜 꽃향기」로
명맥이 이어졌다고 보아도 좋겠다.5)
이윤희는 장미와 할미꽃을 차용하면서
‘화왕’을 ‘하느님’으로 치환하였는데,
하느님이 한꺼번에 모든 꽃을 피운 바람에 진동하는 꽃향기를 줄이려고
꽃마다 피는 차례를 정하는 이야기로 다시 썼다.
그러므로 ‘쓸모’에 대한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는
「하느님의 붓자국」6)과
지금은 중국이지만 한때는 우리 땅이었던
대흑산, 평정산, 노극사노산을 알려 주는
「산들의 회의록」을 포함하여
글 맵시 어여쁜 『꼬마 요술쟁이 꼬슬란』은
이윤희 대표작이 되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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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지은, 「어린이에게 생각의 권리를 주는 문학」,
『한국 아동문학가 100인 작가·작품론 2』(강정규 편저),
스푼북, 2022, 566~567쪽 정리.
2) 김종국 ‧ 이동근 ‧ 정호완, 「홍유후 설총(弘儒侯 薛聰)」,
『삼성현 원효 ‧ 설총 ‧ 일연 스토리텔링 연구』,
대구대학교 출판부, 2010, 260~263쪽 정리.
3) 김용희는
세계 명작동화의 번안 예시를 들면서
‘배위충의 『이솝 우언』(조선야소교서회, 1921)’을 언급하였다.
- 「동화문학의 새로운 서사적 가능성」,
『동심의 숲에서 길 찾기』, 청동거울, 1999, 322쪽.
4) 원종익,
『우화의 힘, 문학의 힘 -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 우화 연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지식출판원, 2017, 29쪽.
5) “우화(寓話 그리스어로 ainos, mythos 또는 logos)에는
동물 말고도 식물, 사람, 신(神) 등이 등장”한다.
- 이솝, 천병희 옮김, 『이솝 우화』, 도서출판 숲, 2013, 4쪽.
6) 하느님은
붓으로 세상을 칠하면서
하늘 한 귀퉁이에 연습 삼아 칠해 본 일곱 빛깔 붓자국을
쓸모없다며 버리지 않고 ‘무지개’로 이름을 불러 준다.
거름이 된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운 것처럼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에 쓸모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새롭다.
- 출처:《열린아동문학》 2023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