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지금까지 세 번의 필기시험과, 한 번의 실기시험, 두 번의 면접시험을 치르는 고난한 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오늘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는데요, 제 앞 순번의 남성 지원자가 합격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확인할 때까지는 무척 떨리더니, 결과를 보고 나서는 막상 아무런 느낌도 없었어요. 가고 싶었던 브런치 가게에서 혼자 아침을 먹고, 예쁜 노트와 필기구를 사서 기분전환을 하기로 합니다. 새로운 책도 둘러볼 겸 터덜터덜 서점으로 갔습니다.
복수의 채용 시험을 진행하면서, 곧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아직 머리 쓰며 살아가는 일에 소질이 있다는 것 같아 조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저희 집 아이들을 두어 번, 아니 서너 번인가요, 아닙니다. 네다섯 번은 밤새 고열을 오가며 교대로 아팠어요. 직장일이 바빠 도무지 연차를 쓸 수 없는 남편을 두고 혼자 둘째 대학병원 진료를 다녀오고, 첫째 아이 친구들과의 만남, 주말 가족 여행 스케줄 정리를 제 시험보다 더 앞세워 두며 정신없는 시간들을 보냈네요.
아이 엄마라서, 나이가 많아서, 여자라서, 채용의 결정적 순간에 위축되기도 했지만, 제가 떨어진 이유를 그런 유리천장이라고 한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탈락의 이유를 합리화하는 모양이 썩 좋아 보이지도 않고, 회사의 사정은 제가 알 수 없는 영역이며, 설사 그런 이유였다고 하더라도 인정해버리면 제가 앞으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저의 취업 도전기가 ‘합격’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면 뭇 아줌마들의 희망이 되었겠지만, 끝내 그들의 가슴에 그 희망을 불씨를 지피지 못하고 다시 사계절의 시작에 섰습니다. 아마 리플릿을 들고 채용 박람회 부스를 들어서는 사회 새내기들의 마음으로, 현실은 그들과는 사뭇 다른 노구(老軀)의 노안(老顔)으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릴 겁니다. 창업이나 할까? 하는 무모함으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 밤을 세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기회가 되면 일하고, 그렇지 않으면 쉬고 편하게 살라는 남편에게 부득불 반기를 들까요. 지금은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몸으로 있는 외로운 시간이 간절하지만, 막상 아이들이 저를 찾지 않는 진짜 그 시간이 됐을 때, 제 가치를 노동으로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어서입니다.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면 자존감이 낮아지는 구조로 빠져들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사노동에 취미와 적성이 없으니 양육 노동을 졸업하고 나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인간으로 정의해야 할까요. 남녀 차별 없이 고등 학문을 경험한 세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노동을 연봉으로 연결 짓고, 그 연봉을 사회 안에서 자신의 가치로 환원하는 구조를 학습한 엄마 노동자가 설 자리는 어디일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 과정을 경험하는 동안 성장했다는 교훈적인 결론은 급히 내고 싶지 않습니다. 어쩐지 그렇게 성급한 결론은 지금 제 마음을 거스르는 위선처럼 느껴집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뽑아주지도 않을 거면서 사람을 오라가라 한 여러 사측에게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젠장’
잘 될 거라는 낙관보다 오늘 제 곁에서 같이 욕하고 웃어준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가장 좋아하는 맥주 캔을 따겠습니다.
p. 99
실패가 성공으로 돌변하는 이야기. 결말에는 언제나 성공이 있는 이야기. 실패가 실패가 아닌 이야기.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세상에는 실패에서 시작해 실패로 끝나는, 그저 실패이기만 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안다.
p.107
나의 실패를, 내가 겪은 모든 실패를 아직 이루지 못한 성공과 연결 지어 본다. 그러다 문득 그것이 실패였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는 실패 같기만 했는데 지금 보니 그건 그저 내 인생에 일어난 어떤 일일 뿐이었다. 그 후에도 인생은 끝나지 않았고 또 다른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실패도, 성공도 아닌 일들이.
한수희, <조금 긴 추신을 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