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나에 대한 평가에 반박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상대가 나의 인상에 대한 칭찬을 건넨다. “분위기가 뭐랄까 굉장히 차분하세요.” “조용한 ADHD입니다.” “에이 설마, 진단받으셨어요?” “아뇨 저랑 같이 사는 사람이 그렇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아이디어가 많으시네요.” “마무리를 잘 못해요. 시작은 창대하다 끝은 보잘것없는 용두사미형이랄까.” “창의적이세요.” “제가 제도랑 규칙 같은 거랑 잘 안 맞아요. 항상 딴생각을 하죠.”
그렇게 나에 대해 지나치게 객관적이거나 비관적이기까지 한 나는 인생에 중요한 순간에 덜컥 덜컥 사고를 친다. 창업도 내가 친 사고 중에 하나였다. 지역 매거진에 인터뷰 기사를 하나 보게 되었다. 창업지원금을 제도가 소개돼 있었다. ‘나 같은 주부도 자기 경험을 살려 일을 시작하는구나. 정부 지원금을 받아서 초기 사업을 시작하니, 개인의 부담도 적겠어. 아 정말 우리나라 좋은 나라네. 좋은 제도가 이렇게나 많았어.’ 감탄은 잠시. 매거진을 덮어 버림과 동시에 창업에 대한 내 생각도 종결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오래되었다. 내가 50대가 되어서도 나에게 이런 일자리가 주어질까 생각하면 아득했다. 올해 내 나이가 마흔이 되면서 그 불안감은 더욱 심해졌다. 근무가 없던 어느 날 충동적으로 지역의 여성지원센터에 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상담을 하러 방문했다. 담당 직원분이 상담을 마치고 창업지원프로그램을 권해 주셨다. “그거 이미 마감되지 않았나요?” “아녜요, 연장됐어요. 가만 보자, 오늘이 금요일인데 다음 주 화요일까지 원서를 접수하시면 되네요.” 관심이 가던 제도가 연장되었다니 이건 꼭 나를 위해 하늘이 주신 기회인 것 만 같았다. 고작 공고 연장 하나에 나는 하늘을 들먹이다니. 좋은 것은 너무 좋고 싫은 것은 너무 싫은 나는 그 ‘너무’인 기분에 취해 꼭 무언가를 결정해 버린다.
그렇게 빈 화면 앞에 앉아 공고문을 다운로드 받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서식을 살펴봤다. 겨우 아이디어 하나만 가진 나에게 비즈니스 모델? 제품 개발 정도? 대표와 팀원의 보유 역량이라니. 팀원은 없고요. 대표는 고작 아이디어만 가진 저 혼자입니다. 비즈니스 모델이 정확히 뭐를 말하는 거죠? 제가 어떤 회사를 벤치마킹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인가요?(이후 창업을 진행하며 이 생각은 완전하게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구조로 수익을 낼 것인지를 질문 하는 항목이었다.) 차라리 소설을 쓰라면 쓰겠다. 난생처음 써보는 사업계획서는 빈 화면에 커서만 오래도록 깜빡였다.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지원하고 연락 달라는 센터 직원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마감으로 성장하는 거지. 올해 끄적거려보면 내년에 어떤 결과가 나오겠지.’ 빈 화면에서 시작해 20여 쪽의 계획서를 만들어 냈다. 토할 때까지 봤다는 느낌이 들 때까지 들여다봤다. 그 느낌은 느낌이 아니라 위경련이라는 진단을 받으며 진경 주사를 맞고 끝이 났다. 지원 프로그램이니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 믿고 순진하게 발을 들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덜컥 공모에 선정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