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코 베어 가는 창업의 세계

by 글지안

집과 학교를 벗어나면 아이들 학원을 겨우 오가며 살았다. 장소도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던 내 일상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자마자 낯선 것들이 그야말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시간제로 근무하는 직장 말고도 창업 때문에 방문해야 하는 곳들이 생겨났고,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는 말을 사업의 불문율인양 여기며 인맥 교류에 힘써야 했다. 내향인이면서 사람들 얼굴을 익히는 기능이 떨어지는 나로서는 버거운 일정들이 많았다. 내 삶이 내 속도와 다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낄 때, ‘정지’를 외치며 꼭 필요한 만남인지 아닌지 자문해보았다.


네트워킹을 통해 만난 사업 선배들은 계약을 잘못해 사기를 당했다는 일화들을 들려주며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사업의 냉혹한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게 해줬다. 아는 사람을 통해 연결되는 방법이 안전하다고 지인들을 연결해줬다.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업체의 명함이 쌓여 갔다. 내가 산출해 내야 할 결과물의 형태와 종류만 묻고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업체가 없었다. 사업비로 총 쓸 수 있는 금액이 얼마인지, 그 금액에 맞춰주겠다는 비슷한 답변들만 늘어놓았다.


안전할 것 같던 네트워크가 이상하게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지원금을 현금화 해서 얼마간을 주면 홍보를 도와주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정부 지원금이 대표에게 현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계약한 업체에 직접 돈을 지불해 주는 방식인데 현금화가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그건 지금 당신이 거래하고 있는 업체에 금액을 부풀려 계약을 체결한 다음 현금으로 받으면 된다며 아주 상세한 코칭을 해줬다.


어떤 이는 자기 업체와 협업해서 새로운 지원금 사업에 도전하자며 제안해 왔다. 이미 안정된 사업체를 꾸리는 것처럼 보이는 대표님이 나 같은 초보에게 그런 제안을 하다니. 선의로만 느껴지지가 않았다. 해당 사업의 목표가 무엇인지 상대에게 물었다. 지원금을 받으면 절반을 나눠 알아서 유용하자나 뭐라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고 수준의 욕을 속으로 퍼부었다. ‘이거 완전 개새끼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정중하게 대답했다. ‘대표님께서 아시다시피 제가 초보라, 그 속도를 따라가기에 어려울 것 같습니다. 차년도에 제가 더 성장한다면 고민해 보겠습니다.’


비슷비슷한 단체에 중복해서 속한 대표들과 얼굴을 붉히지 않으면서도 거절할 수 있는 최선의 답변이었다. 세상이 전부 사기꾼으로 보였다. 그런 세상에 내 속마음을 다 드러내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온실 속의 화초로만 자란 것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내가 자란 세상은 내 부모님의 보호 의지로 만들어진 좁디 좁은 울타리에 불과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절대 가담하면 안된다며 펄떡 뛰었다. 내가 이 사람과 결혼을 결정한 것은 주차선 때문이었다. 차량의 통행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주차를 하면 어떠냐고 권했을 때, 내 몸의 편리함과 타인의 안전이라는 가치를 두고 보면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거절했다. 적당히 주차하라는 권유가 일종의 시험 같은 의도였을까. 남편의 대답이 내 마음에 흡족했다. 주차가 합법적으로 허용된 곳을 찾아, 보이지 않는 타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몇 바퀴씩 도는 쪽이 마음이 편한 사람.


주차선도 못 어기는 우리에게 지원금을 용도에 맞지 않게 쓰는 그런 배짱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 보라며, 너 혼자 고매한 척 콧대나 세우고 있지만 결국 타협하게 돼 있다는 반응을 상상하며 이를 악물었다. ‘무조건 잘 돼야 해.’ MVP를 보란 듯이 잘 만들어야 했다.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고작 초심자가 어떻게?’ 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고개를 들었다. 창업 교육 프로그램에서 강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셨다. “여러분, 제가 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이 질문에 아직 답을 맞춘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M이 무엇인지 맞춰보세요.” 그 때 청중 중에 누군가가 손을 들고 말했다. “MONEY!” “네, 사업에서 돈. 참 중요합니다. 그 대답은 교육마다 항상 나오는 대답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MONEY가 아닙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Morals! Moral Value입니다. 예비 창업자 여러분, 부디 가장 중요한 이 M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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