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을 이루는 일곱 가지 범주들
펠드먼은 “‘표면’(surface)을 지닌 음악은 시간과 함께 고유한 구조를 형성하지만, 표면을 가지지 않은 음악은 시간에 종속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말하는 ‘표면’은 음악의 형식이나 리듬, 구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소리의 감각적 층위, 즉 청자에게 음색으로 인지되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때 ‘표면을 지녔다’는 것은 소리의 물성(materiality)이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층위를 가리킨다.
소리는 분명 물질로부터 태어난다.
예를 들어, 누군가 현을 퉁기거나
북이나 팀파니를 두드릴 때 그렇다.
그 진동은 들을 수 있을 만큼 명확하며,
우리는 그 진동을 일으킨
악기 자체의 존재를 함께 듣게 된다.
위 인용문에서처럼 소리가 단순한 청각 정보임과 동시에 공간을 점유하는 감각적 실체로 인식된다는 의미는 소리를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바람이나 온도를 감지하듯 그 성질을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지각화된 감각이 ‘촉각화된 음색’, 즉 소리의 표면이라는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로스코 채플》에서 사용된 타악기 중 차임(tubular bells)은 소리의 표면이 감각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인 금속 타악기라 할 수 있다. 차임의 음향적 특성은 불규칙한 주파수 비율을 다수 포함하기 때문에, 긴 잔향과 함께 금속성의 공명을 형성하며, 단일한 피치가 아닌 하나의 사운드장(sound field)을 만들어낸다.
이 악기는 종교적 상징물을 연상시키는 동시에, 단순한 물리적 현상을 넘어 심층적 의미와 결합된 청각적 표면으로 작용한다. 즉, 차임은 발화체로서의 악기를 떠올리게 하는 풍부한 질감과 상징적 함의를 지니며, 그 음색 자체가 ‘표면’을 이루어 소리의 실체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위의 악보에서 205마디 pppp의 매우 여린 음색으로 등장하는 차임의 타격(attack)과 금속성 울림(release)은 마치 빛처럼 공간 속에 확산된다. 이어지는 합창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소리의 여운을 따라 조용히 흐르고, 209마디의 차임이 다시 연주된 뒤 비올라의 피치카토가 소리의 표면 위로 잔잔하게 스며든다.
이처럼 차임이라는 악기의 사용은 악기의 물성과 더불어 음색이 지닌 상징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때 소리는 더 이상 형식이나 구조에 종속된 매개변수가 아니라, 고유한 물성을 지닌 실체로서 시간과 더불어 감각적 표면을 형성한다.
《로스코 채플》에서의 고요함은 악기의 물성이 드러나는 음색을 통해 지각되며, 미세한 다이내믹으로 조정되는 음향이 공간을 따라 흐르며 생생한 현재적 체험으로 드러난다.
https://youtu.be/TxEGPIEraFA?si=BCfoukrC59kQtP6g
1. 펠드먼은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시각예술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을 자주 차용하였다. 이러한 언어의 교차 사용은 공감각적 지각을 활성화시키며, 음악을 개별 감각들이 통합된 경험으로 이해하도록 이끈다. 본 장에서 사용한 ‘표면’이란 용어 역시 시각 예술 용어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뒤에서 다룰 ‘평면성’, ‘수직성’ 개념과 같이, 소리를 공간적·지각적 차원에서 사유하려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Feldman, Give My Regards, 85.
2. 인용문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b.1943)의 작품과 모튼 펠드먼의 《로스코 채플》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예술 장르에서 감각과 공간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을 시도한 다음의 글에서 가져왔다. Günter Figal, “Intangible Matters,” Research in Phenomenology 48, no. 3 (2018): 307–313.
3. 조너선 하비(Jonathan Harvey)의 「Mortuos Plango, Vivos Voco」(1980)는 성당 종소리와 소년 성가의 음성을 전자적으로 분석·변형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종의 배음 구조와 음성 스펙트럼이 결합된 음향은 추상적인 소리의 표면과 물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공간 속에서 이동하는 복합적인 청각 경험을 형성한다. 이러한 특징은 펠드먼의 ‘표면’ 개념을 이해하는 하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작품의 제목 「Mortuos Plango, Vivos Voco」는 라틴어로, 직역하면 “나는 죽은 이를 애도하고, 산 이를 부른다”(I lament the dead, I call the living)는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