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을 본향(本鄕)으로한 재활 순례기①
"전봇대 꼭데기 까지 솟았다가 떨어지더라"는 목격담을 2025년에야 전해 들었다.
믿음의 여정으로서의 재활
순례자 아브라함은 목적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약속을 나침반 삼아 안전과 안락이 보장된 갈대야 우르를 떠났다. 때로는 의심이 발걸음을 붙잡았고, 고통은 기도의 끝자락을 흔들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약속은 희미한 등불처럼 꺼지지 않았다. 그 눈빛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고요히 머물렀다. 그는 알지 못하는 땅을 향해 나아갔지만, 그 마음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여정은 단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믿음이 시간과 현실을 넘어서는 순례였다. 아브라함은 이 순례로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를 망라한 믿음의 조상으로서 인류 구속사의 시작점이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갈대야 우르가 문명의 품이었다면, 필자에게 의료체계는 이성의 요새였다. 아브라함처럼 필자도 믿음에 의지해 그 모든 것을 넘어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향했다.
재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지방 국립의대 재활의학과 교수 출신 재활병원장의 완곡한 반대를 물리치고 ‘팔십여 일 만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불러일으키신’ 하나님이 예비하신 회복의 땅을 향해 나섰다. 수시로 덮친 의심과 좌절을 믿음의 자양분 삼아 시간과 현실을 넘어선 여정을 걸었다. 아브라함의 순례가 인류를 향한 구원의 첫걸음이었다면, 필자의 21년 재활은 장애로부터의 해방을 향한 사역의 시작이기에 필자의 나 홀로 재활은 ‘재활 순례’다.
존재의 회복을 향한 순례
당시 메소포타미아는 아누(하늘의 신), 엔릴(공기의 신) 등 절대적인 존재 모두를 신으로 섬기는 다신교가 주류였다. 신들이 자연과 운명을 나눠 맡고, 인간은 그들 사이에서 제의와 복종으로 삶을 이어갔다. 다신교 일색인 현실을 떠나, 절대자 하나님(유일신)을 향한 믿음으로 떠난 아브라함의 여정은 정체성과 신념을 향한 결단이었고, 존재론적 인류사 속에서 신앙의 영역을 확장하는 첫 발걸음이었다. 하나의 하나님을 향해 모든 것을 걸었던 그의 여정은 인간이 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부른(召命) 사건이다.
굴지의 대학병원 두 곳에서 1년 가까이 이어온 재활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지는 상황(오마이 뉴스 기사 : 무섭고 외로웠던 8년간의 재활, 기적이 일어났다 참조)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그 시기, 네 살 난 어린 딸은 사고 소식을 접한 엄마와 잠자리에서 헤어져 이모네를 전전하고 있었다. 걸을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병원 생활을 끝내야 할 판에, 그런 일까지 닥친 것이다.
그 절박한 마음에 여전히 나를 남편으로, 아빠로 여기는 가족들과 부모님, 형제들을 떠올렸다. 천 길 낭떠러지에서 생명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병원 내 교회를 찾았고, 기도 속에서 하프 마라톤 완주를 서원했다. 그것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회복의 상징이자 믿음의 선언이었다. 병원을 전전하며 본격적으로 재활에 임해 만 3년의 병원 치료를 거쳐 이른바 ‘나 홀로 재활’에 나서 맹렬히 재활 중이다.
아브라함이 다신교의 일상에서 벗어나 유일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순례에 나섰듯, 필자의 ‘나 홀로 재활’ 역시 정체성과 신념을 향한 결단이었다. 이는 운명론적 재활 풍토를 넘어선, 재활 영역 확장의 첫걸음이다. 의사조차 반대한 하프 마라톤 완주로 ‘장애에서 건강을 회복한 첫 사람’ 되려 하나님만 의지한 21년 나의 재활 여정은 내가 선택한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소명이기에 필자의 재활은 ‘장애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본향’을 향한 재활 순례다.
아브라함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는 말씀 하나만 붙들고 미지의 땅으로 나아갔다. 그 길 위에서 그는 가뭄과 기근, 갈등과 두려움을 겪었지만, 그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믿음으로 채워진 깨달음의 여정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새겨진 발걸음으로 이뤄진 그의 여정에서 그의 믿음은 깊이를 더해갔다.
마비된 신경 하나하나를 깨우는 일은 오랜 시간과 막대한 노력이 필요한 고된 여정이다. 그 모든 순간,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견뎠다. 아브라함의 순례가 믿음의 성장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삶의 고비마다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점철된 여정이었듯, 필자의 재활 또한 그러했다. 재활 과정은 회복 징후들의 연속이었다. 시각령(Visual Cortex)) 손상으로 인한 사시와 복시가 시시각각 개선되었고 구축으로 인해 사라졌던 왼편 팔자 주름이 서서히 복원되는 등의 연속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된 왼쪽 몸을 짓누르던 무게감과, 영원히 남을 것 같던 이물감은 절망과 갈등을 불러왔지만, 그것마저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 완연히 회복되고 있다.
나 홀로 재활의 그 모든 순간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로 점철된 깨달음의 여정이고 하나님의 약속이 새겨진 발걸음이라는 확신으로 필자의 믿음은 깊이를 더해갔다. 미세한 변화를 관찰하며 회복을 확인하고, 감사 속에 운동을 조율해 나갔기에, 나의 재활은 믿음으로 걷는 재활 순례다.
신경망의 회복
필자는 미만성 축삭 손상(diffuse axonal injury)과 경추 2·6·7번 손상으로 인해 중추성 왼편 마비가 발생했고, 해당 부위는 감각적으로 인지조차 되지 않았다. 움직임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결국 ‘의도하고’, ‘실행하고’, ‘조정하는’ 운동 기능 전반이 상실된 상태였다.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는 축삭돌기에서부터 신경 전달체계 전체를 다시 세워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단순한 재활이 아니라. 신경망 전체를 다시 구축(構築)하는 고통스럽고도 치열한 여정인 것이다. 그러니 필자가 감각을 회복할 때마다 가졌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는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의 감사에 비견되고도 남을 정도였다.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과정은 존재의 회복이었다. 움직임은 다시 연결되고 감각은 다시 살아나며 비로써 내 몸은 다시 깨어나고 있다.
완주의 소망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순례에 나서 수많은 시험을 통과한 끝에 마침내 가나안에 이른 첫 사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유일신 사상의 종교적 체계 확립과 고등종교의 형성과 전개의 결정적 계기를 이뤘다.
필자 역시, 하프 마라톤 완주를 통해 ‘장애에서 건강을 회복한 첫 재활 순례자’가 되려 한다. 이는 단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장애의 소극적 개선만으로 장애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기존의 재활 인식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일상에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재활 체계를 확립하는 길을 여는 일이다. 아브라함의 순례가 고등종교의 시작이었듯 필자의 재활 순례가 장애에서 건강을 회복하는 ‘고등 재활’의 형성과 전개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장애의 어둠을 걷고 건강의 빛을 되찾은 내 첫걸음이 뒤따를 이들의 희망 되어 완전한 재활이라는 본향을 향한 길 위에 고요히 빛나는 이정표 되어,
뒤따를 수많은 발길로 ‘완전한 재활’에 이르는 더 빠르고 더 안전한 순례길이 마침내 완성되기를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해 소망하기에,
21년 ‘나 홀로 재활’은 곧 믿음으로 걷는 재활 순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