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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점선 Sep 06. 2024

일기

21년 2월

2021년 02.01. 월요일

2월이다. 기온이 바뀐다고 바람이 이는 이월이다. 새 학년 준비를 하고 교실을 바꾸고 설이 든 2월이다. 논문과 교실 이사. 집 정리, 방학이 있었지만 올해를 실제로 준비하는 달이다. 이달에 시간을 아껴야 한다. 계속 티비앞에 앉았다가 낭패볼 것이다. 

하루 시집 한 권 읽기 한 편 이상 옮겨적기이월의 약속이다          

제수용품은 하나도 사지 않았다. 어제 보살님이 배추를 많이 주셨다.

이번달 명절 준비물 : 생선, 과일 곶감 대추 전 나물 탕 육전 어전 찜 문어 낙지 우엉 당근 

슬비가 내려오면 소고기 샤브샤브용 사기(참나물, 가리비, 전복 등)     

나는 검색한다 고로 존재한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검색한다. 설 선물로 사고 괜찮은 물건을 고르느라 오랫동안 검색했다. 가격이 좋는 좋은 물건을 고르느라, 괜찮은데 싼 물건 고르느라. 싸고 괜찮은 물건 고르느라 인생을 소비하고 있다. 책을 검색해 보긴 하지만 그냥 학교에서 산 책으로도 충분하다. 그만큼 충분하게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읽어야 산다. 써야 산다.      


2021년 2월 2일 화요일     

정리하는 달, 청소하는 달, 버리는 달 어제는 시 한편도 못 읽었다.      

비가 온다     

적재해 놓은 돌무더기 위에도

검은 꽃순 위에도 

보얀 꽃눈 위에도     

창문에

얼룩을 내며 비가 내린다     

청공     

송준영     

돌하나 놓여 있다

돌 하나 옆에 

고개든     

금잔화

한 포기 피어 있다.          

오리      

이점선     

오리는 수직으로 잠수한다

물방울처럼 물 밖으로 튀어오른다

혼자

혹은 둘이 

혹은 무리지어 논다

점심 뒤엔 물 튀기는 장난도 친다         

 

2021년 2월 5일 목요일     

대학원 수강신청을 했다.

저녁에 운동을 갔고 소파에서 초저녁에 한 심 자고 한 밤중에 잠이 깨어있다.

토란의 효능과 토란 줄기 삶는 법을 검색했다. 

학생들 책상을 닦았다. 세재와 수세미까지 동원해서 다깡아야 했다. 가림막을 붙인 유리테이프 때문에 자국이 지우기 어려웠다. 몇 몇 학생은 깨끗하게 흔적없이 닦아 놓았다. 기특했다.

내일 오전에는 교실정리를 하고 오후에는 조퇴를 해야겠다. 삼천포에 가야겠다.     


우수      

강미영     

지지배배 지 - 지배     

금이 간 유리창 사이로      

봄이 돌리는 주파수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10년안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벼려야 할 것은 집중하여야 한다. 

남은 시간은 10년이다. 10년 뒤에는 나는 어떤 노인이 되어 있을까?

역시 책을 쌓아놓고 집안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음식을 만들고 할 것이다. 

        

2021.2.6.(토)

정언이가 갑자기 오게 되었다.

강희근 교수님과 김언희 선생님께 처음으로 설선물을 보냈다. 간단한 선물이었다. 진주에서 가장 나에게 영향을 끼치신 분들이다. 난 아무래도 현재는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시집 「어느 푸른 저녁」 88인의 트리퓨터 시집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첫 문장을 품었다

신들의 상점에 불이 켜지고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고

가자아 부드러운 고요를 골라 

밤으로 태어난다

까마득해지고 있었다

안개는 내 입술 끝에서도 고요히 피어오르고 있다

진눈깨비가 흩날렸고 죽은 비유 같았다

죽음에게도 비밀이 있다면

긴 휴가의 기록

사실 난 바다에 대해선 무지했던 것입니다          

사실 난 10대부터 떠나고 싶었습니다

기차역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도착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빛바랜 역사는 희미하게 안개에 묻혀있고

플랫포옴을 빠져나와 역무원의 개찰구를 통과하면

둥근 모양의 회양나무 화단이 있고 도시는 

돌아앉은 모습으로 창을 열지 않습니다

떠나지 못하고 남았습니다

사실 난 세상에 대해선 무지했습니다

표를 끊지 못했고

철길의 건너 떠나는 선로쪽으로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문 하나가 닫힌 채로

열리지 않았습니다 문 뒤 세상은 안을 가득 메웠던 쓰레기가 지옥처럼 나를 뒤덮는 꿈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 나의 일부가 떠나가고 계속 그리워한다는 걸

최근에야 깨달았습니다

떠나버린 내 일부 때문에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애착도 없고 연민도 없고 행동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보면서 그것을 갈증이라고 여긴 것은 자신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떠날 것입니다 육체를 떠날 것이고 그 전에 다른 형식으로 떠나왔던 모든 형식으로부터 떠날 것입니다.          

안개의 식구가 된다     

생강이 안 들어간 김치를 먹다가 생강이 들어간 기차게 맛있는 김치를 먹은 건 초등학교 3학년 유리 도시락에에서였다 3학년 3월 15일에 나는 전학을 왔고 3학년 1반이 되었다. 열무김치 무침이 도시락에 넣어주셨는데 익으면 좀 쿰쿰한 맛이 났다. 유리가 가져온 김치는 산뜻하기 그지없었다. 생강의 차이였다. 한참 뒤 어머니는 김치에 생강을 넣기 시작하셨다. 많이 넣으면 쓰니까 조금만 넣어야 된다고 하셨지만 생강은 아마 비싼 양념 중 하나였고 고춧가루도 귀한 식재료였다. 요즘도 고추 값은 비싼 편이지만 아끼진 않는다 .마늘과 생강을 비싸서 안 쓰진 않는다. 그런 양념이 비싸고 귀해 조금씩 쓰던 옛날 김치가 덜 자극적이고 몸에 좋을 것 같다. 도시락 반찬으로는 수루미무침이 최고였지만 어머니의 멸치 묻침은 더 최고였다 도시락은 쉬는 시간에 먹어야 제 맛이다. 여고 실절 그렇게 1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열고 멸치무침을 꺼내먹었다 아이들이 수루미무침이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면서 슬쩍슬쩍 다 꺼내먹었다.         

      

오늘 나는 네가 살지 못한 만구백오십번째 밤     

믹서기 날을 물에 담그고는 그릇들과 함께 휘저었다 물밖으로 손을 꺼냈을 때는 손은 낭자하게 자해되어 있었다 화를 낸다는 건 자신을 자해하기도 한다. 그릇을 던져버렸다면 내 손은 무사하고 그릇은 깨졌겠지. 믹서기날은 운명 같은 거다. 나를 베는 운명 분명 씻는 날이 아닌데 날은 아픈 날 물 속에 담겨 있었고 주의하지 않고 물을 휘저었다 그릇아 꺼져라 하고 그릇을 깨지 않으면서 구정물만 튀기면서 내 손을 훼를 쳐 놓으면서 손을 치켜들고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흐르는 피를 다 막지 못하면서 휘저으면서 나는 아무것도 들어낸 것은 없었다 손등과 손가락에 자잘한 흉터만 잔뜩 남았다 깨어지지 않은 그릇은 남은 여생의 반려가 되었다 


시집 「어느 푸른 저녁」 88인의 트리퓨터 시집     


눈     

이 세상의 모든 말줄임표들이 둥둥 떠 있다

말에도 부피가 있어 큰 눈송이 작은 눈송이 나뉜다 

눈도 뭉치면 힘이 세진다

골목길에 눈을 눙쳐 눈사람을 세웠다

눈이 녹고도 눈사람은 한참을 기다렸다

말없음의 본질은 잃지 않았다

그런 말도 짓밟힐 땐 

싸그락 싸그락 소리를 한다     

튤립, 무덤, 죽은 새의 가슴 ……          


2021년 2월 8일 월요일

주말에 정언이가 다녀가고 어제 저녁에 할아버지 제사

알베를 까뮈의 페스트를 마치고 이방인을 읽기 시작했다

문장이 조금은 읽기 쉽다.  도서관 도장이 찍힌 책은 되도록 돌려주기로 했다. 

달리 생각하면 내가 알고 싶어 주문했기 때문에 돌려주기 싫기도 하다. 오늘은 두꺼운 엣센스 국어사전을 돌려주어야겠다. 달리 생각하면 사전도 필요하다 가금 펼칠 때가 있다. 욕심 욕심 책에 대한 욕심     

어제 밤 꿈에서 끝내 수박을 고르지 못했다. 작고 예쁜 수박을 처음 보았는데 조금 더 큰 것을 고르느라 결정하지 못했다. 태몽이 될 뻔한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학생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국어 평가를 해 보았고  또 청소를 했다. 몇 번을 정리했다. 아이들에게 감상을 싣지 않았다. 헤어지기 서운한 학생도 있다. 후용이는 엄마가 와서 전학 갈 정리를 했다. 

적응을 못했다. 전학을 가도 불안해서 엄마는 걱정을 하면서 갔다.      

<이방인>을 읽기 시작했다. 

뫼르소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오늘이다. 8일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서울 아이들이 11일 아침에 도착해서 21일 저녁 9시에 상경했다. 먹고 쉬고 자고 하면서 명절이 갔다. 강아지가 있어 잠깐씩 강가로 산책을 나갔다. 

오늘은 얼굴에 물사마귀가 번지고 있어 병원에 가서 뺐다. 기미가 많고 잡티가 많다고 친구는 9회 치료와 관리를 추천했다. 목돈이 여기서 나가 버렸다. 얼굴이 깨끗해지면 바라보는 나 자신도 기분이 나아질 것 같다. 눈과 눈썹 사이에 번지는 좁쌀만한 물사마귀 때문에 신경쓰는 것보다는 깨끗한 것이 낫겠지. 

남아 있는 시간은 긴 시간일까 짧은 시간일까

2월 중에 논문 지도는 한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지금은 내일이 아니고 오늘이네. 이번 주는 논문정리 다음 주는 교실 이사하는 주. 주말엔 정언이가 온다네. 대추 칩도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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