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아 향기, 문태고모 향기
문태고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방아를 따서 냉동해 놓았으니 가져가서 먹으란다. 고모는 내가 방아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챙겨주시는 것이다. 방아는 여름철에는 필수적인 채소다. 경상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된장국이나 어탕, 추어탕, 장어국에 넣어 먹는 익숙한 맛이기 때문이다. 속을 따뜻하게 하고 기생충을 없애고 향기도 독특하지만(서울 사람들은 잘 못 먹는 채소다.) 거의 필수적인 향신료다. 비교하자면 고수같은 존재다. 엣날에는 여름철이면 미꾸라지를 직접 잡아서 추어탕을 끓여 먹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냇가에 큰 가마솥을 세워놓고 어탕을 끓였다. 마을 남자 어른들은 물고기를잡고 여자 어른들은 야채를 다듬고 된장을 풍러 어탕을 끓였다. 아이들은 그 옆에 서서 구수하게 익어가는 아탕냄새를 맡으며 군침을 흘렸다. 가장 기억나는 맛은 매운 맛과 방아 맛이 어우러진 칼칼하고 구수한 어탕국물 맛이다. 맵고 뜨거운 것을 한 입 먹고 하늘을 향해 불을 품었던 여름 냇가, 그 때도 방아맛을 느꼈다. 어탕에서 건져 주던 찡기미(민물 새우) 맛은 잊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제일 맛있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방아는 혈액이 부족하고 위가 답답한 나에게는 정말 좋은 음식이 되어 주었다. 추석 음식 끝에 방아가 들어간 풋고추전은 명절 음식으로 답답해진 가슴을 뚫어주는 맛이 되었다. 제사가 많았던 친정에서는 명절이 아닐 때라도 방아가 들어간 고추전을 자주 먹었다. 어머니는 초봄에 새고사리가 나고 죽순이 올라오면 찜을 해 주셧고 초여름 논고동이 잡히면 논고동으로 찜을 해 주셨는데 논고동 찜에도 방아가 꼭 들어갔다.
여름철 애호박과 두부를 숭숭 썰어넣고 끓이는 된장국에는 방아와 땡초가 들어가지 않으면 제 맛이 안난다. 게장국도 마찬가지다 된장을 연하게 풀어 양파, 호박, 두부 등을 넣고 끓이는 게장국에도 방아는 필수이다. 요즘은 사찰 방아가 나지만 어릴 때는 여름철에 집중해서 먹었던 것 같다, 가을, 겨울 하면 씨레기국, 무국, 모재기국, 굴국, 연포탕 등이 떠오르지만 게가 발갛게 익으면 게딱지에 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먹던 맛있는 추억이 가장 기분을 푸근하게 한다. 그때도 방아를 넣어 마치 샤브샤브처럼 방아를 건져 먹고 했다. 지금도 아이들이 집에 오면 게장국을 끓이거나 방아가 듬뿍 들어간 부추전을 부친다. 아마 나에게는 가장 맛있는음식이라고 각인이 되어 자주 해 먹인 모양이다. 딸들이 우리만 오면 부추전을 부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꽃게가 잡히는 가을철에는 게장을 끓인다. 방아는 많이 넣어 많이 먹어도 좋은 야채다 여름이면 시골에 갈 때마다 '방아, 방아!' 하니까 고모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방아를 따 모으신 것이다
문태고모는 이제 90세가 넘었다. 다리 수술도 몇 번 하셨고 손목도 근육이 불거져나와 수술을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문태고모는 진주로 오셨을 당시에는 6촌동생들도 어렸고 셋째 고모 집에서 집안 일을 도우는 가사도우미를 하셨다. 그 외에도 많은 일을 하셨지만 나도 어려서 무슨 일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돌아가시자 오갈 데가 없어서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언제 지었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산밭에 아버지는 사촌누나를 위해 밭을 내어 주셨고 그곳에 여적암을 세우기 전까지 사셨다.
그 때 들은 고모의 사연은 재취로 들어갔는데 혼안 신고가 안 되어 두 아들을 낳아 기를 때까지 술 도가를 하던 그 집에 집안 일에, 본처 자식까지 키우며 시집을 살고 남편이 돌아가시자 쫓겨나다시피 고향으로 돌아오신 거라고 기억이 난다. 고구마 농사 짓고 뽕나무를 기르던 산밭에 고모가 방 한 칸 지어 동생 둘을 키웠고 그 산밭에 출가한 여동생은 암자를 지어 들어왔다. 늙은 고모는 매일같이 출근하여 방도 치고 약수터도 청소하고 풀도 뽑으시며 지내고 있다. 이사 가려고 아파트 값에 대해 파악을 하게 되었는데 고모집 둘째 아들이 사는 아파트는 우리도 비싸서 못들어가는 좋은 곳에 산다. 나는 이 점이 정말 기뻤다. 열심히 살아서 이젠 둥지를 튼튼하게 튼 것이다. 6촌 동생은 집 짓는 기술을 배워서 일하고 있다. 성실하게 살아온 것이 눈에 선하다. 고모를 그 동생집에 모시는데 몸이 영 안좋으실 때나 수술을 하신고 안정을 취하실 떄는 아들네 집에 가신다. 그 외에는 시골 집에 혼자 사신다. 은행이 떨어지면 은행을 주우셔서 다 갈라 주시고 방아가 나면 방아를 따 놓았다 주신다. 정말 찡하다. 방아행이나 문태고모 향기나 다 진하다. 내 가슴을 뻥 뚫어준다. 나쁘고 모진 인간이 있으면 바보처럼 착하고 우직한 사람도 있다. 나는 끝까지 착한 사람은 살아남는다고 생각한다. 우리 문태 고모는 착한 사람이다. 착하니까 착한 향기가 난다. 방아는 유익하니까 유익한 향기가 남는다. 문태고모, 방아, 문태고모, 방아 두 단어가 나를 시소태우고 있다. 달달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