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간극장

by 강민규


1장: 나의존재. 그 의미


개명을 하기전 이름은 대훈이었다. 나는 이 이름 때문에 어쩌면 큰일을 겪고도 목숨을 연장했다는 말이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그안의 슬픔…

당시 어렸던 나에게는 너무도 무거운짐이었다.

그후 10년을 방황하며 살아왔다. 정착하지도 못하고

반듯한 직장도 가지지 못하는게 일쑤였고,

그러나 나는 악착같이 한결같이 버텨냈다.

나의 하루는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주신 모닝 담배 한 개피로 하루를 시작한다.

폐에 물이차서 죽을뻔한 나였지만 나는 그건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역시 나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내가 재수가 없어서 내 주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거나 안좋은일이 생긴다고 생각 했다.

이런 상황을 엄마는 알리도 없고 기억하실리도 없다..

선생님은 과거는 과거일뿐 지금이 중요하다고들하지만

지금의나는 아직도 과거의회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장:활동지원사 선생님과의 인연.


지원사 선생님과는 꽤 오래된 인연이다. 내가 20대

내외동에 있을때부터 어머니와 알고지내시던 지인분이셨다.


별의별일도 많았고 초창기엔 진짜 선생님말을 오지게

안들었드랬다. 해반천 운동을 갔는데 도중에 빠지다가

잡히고 초창기엔 얼굴 붉히는 일도 많았다.

하긴 나도 그때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 다되어갔으

니까 그래도 포기를 안하시고 도와주시는 것에 대한 마음에

이제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처음에는 선생님 말을 처음에는 귓등으로도 안듣다가

나중엔 점점 말씀하시는대로 맞아떨어져서 이젠 신뢰를 가지

고 나도 바뀔수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선생님 말을 조용히

따르고 있다.


3장: 서부 복지관의 인연의 시작


2021년의 여름… 혼자 복지관을 찾아갔다.

아무연고도 없이 지예가 여기에 다닌다는

말만듣고… 그렇게 시작된 서부복지관과의

인연이 벌써 4년이나 되었다. 올해로 4년째다.

처음에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을때는 10분도

제대로 앉아있지를 못하고 튀어나왔다.

사람들과 어색했고, 아는사람도 없었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알아가는 시간이 1~2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때쯤 점점 나도 복지관에서 10분에서

20분 30분 하다보니 어느새 프로그램에 정상적으로

참여하게되고 출근시간도 맞추게 되었다.

다양한 장애유형의 친구들과도 만났고,

그 친구들을 통해 내가 제일 아픈사람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4장 : 신장유 센터와의 인연 그리고 현재


나는 신장유센터의 어쩌고 보면 미운정 고운정 다든

애물단지 같은 녀석이다.

나는 2019년 복지일자리로 시작해 2025년 현재까지 권리중심 일자리와 복지일자리를 오가며 일하는 중이다.

초창기시절… 내 일자리 근무태도는 정말 말도 아니었다.

퍽하면 센터에서 나오질않나 안간다고 엄마한테 어깃장을 놓질않나 센터 선생님들에게 문자를 보내질 않나 악질도 그런

악질이 없었다. 그땐 회사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그냥

시간 때우기 식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관심을 갖고 찾아보면 할 수 있는일이 많은데

그저 놀고싶고 쉬고 싶은 생각에 거부 했었던 것 같다.

특히 권리중심때는 일지를 적는데. 비고란이 제일 곤욕이었다. 물론 야외활동이나 영화도보고 체험도 하고 다른일하는건 즐겁지만… 특히 자립콘서트는 생각하기 싫다. 정말


5장 : 나의 신앙을 말하다.


종종 헷갈릴때가 있는데… 엄연한 나는 천주교인이다.

어릴때부터 영세를 받았고, 수도자를 꿈꾸며 기도했었다.

내가 아프고 나서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지만,

나는 아직도 40이넘어서도 수도자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설령 하느님께서 부르신다면… 기꺼이 나자신을

버릴 자신은 있으니까.


작가의 이전글     당신에게 이런일이 생긴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