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기억 (劍之記憶)

by 강민규

제5장. 무영(無影)의 등장과 피할 수 없는 대면


류원(柳遠)과 천기자(天機子)는 강남을 빠져나와 험준한 산악 지대의 한 동굴에 몸을 숨겼다. 천하맹 맹주 조혁(趙赫)의 위선이 드러난 후, 중원 무림은 혼란에 빠졌고, 천하맹은 류원을 추격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맹주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숨지 않을 걸세." 천기자가 류원에게 씁쓸하게 말했다.

"천하맹이 '무영'의 앞잡이였다는 말입니까?"

"앞잡이를 넘어섰지. 맹주 조혁은 '무영'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을 걸세. 자네 스승의 '칼의 기억'과 '무명검'의 비밀이 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자지."

천기자는 동굴 벽에 흙으로 중원의 지도를 간략하게 그려 보였다.

"무명검은 단순한 명검이 아니네. 그것은 세상 모든 무공의 이치를 담는 그릇과 같지. 벽산문주가 생전에 그 검의 힘을 봉인하고, 그 봉인된 힘의 열쇠를 바로 자네의 가슴에 '칼의 기억'으로 새겨 넣은 걸세."

류원은 가슴에 손을 얹었다. 뜨거운 각인이 맥박처럼 뛰는 듯했다.

"그렇다면, '무영'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천기자의 눈빛이 순간 섬뜩하게 변했다.

"무영은 무명검의 봉인을 완전히 풀고, 그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네. 그 봉인을 푸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자네의 몸에 새겨진 '칼의 기억'의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지."

류원은 분노와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은 복수를 위해 그 칼의 비밀을 찾았지만, 결국 자신이 그들의 마지막 목표였던 것이다.

"무영의 위치를 아십니까?" 류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짐작 가는 곳이 있네. 무영은 칼의 힘을 완성하기 위해 중원에서 가장 강력한 기운이 응집된 곳을 찾아야 했지. 바로 옛 왕조의 사당이 있던 **'천봉산(天峯山)'**의 지하 밀실일세. 서두르지 않으면 늦을 걸세!"


천봉산.

중원에서 가장 험준하고 기이한 봉우리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의 깊은 지하 동굴에서, 류원은 마침내 그의 숙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밀실은 기이한 푸른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흑철로 만든 제단이 있었고, 그 위에 10년 전 벽산문을 멸망시켰던 바로 그 검, **'무명검'**이 놓여 있었다. 검은 단순한 검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이하고 끔찍한 검기를 내뿜고 있었다.

제단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기괴한 가면을 쓰고 있어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등 뒤로는 천하맹의 맹주 조혁을 포함한 수십 명의 고수들이 무릎을 꿇고 호위하고 있었다.

류원이 나타나자, 가면 속의 사내, **'무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다... 벽산문의 잔재여." 무영의 목소리는 낮고, 음산한 공명음을 냈다.

류원은 검은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검은 검집에서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무명검의 후계자임을 증명했다.

"벽산문의 문주 류천(柳天)의 원혼이 너를 지켜보고 있다. 10년 전의 빚을 갚으러 왔다, 무영!"

조혁이 류원을 향해 포효했다. "맹주님 앞에서 건방진 놈! 당장 끌어내라!"

수많은 천하맹 고수들이 일제히 류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는 내버려 둬라, 조혁. 그는 내가 처리해야 할 마지막 조각이다." 무영이 차가운 손짓으로 고수들을 제지했다.

무영은 천천히 류원을 향해 걸어왔다.

"결국 네놈이 스스로 왔구나. 네 안에 있는 '칼의 기억'... 그것이 바로 이 무명검을 완성할 마지막 열쇠다. 네 스승이 헛된 봉인을 하는 바람에, 10년이나 이 검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했지."

무영은 제단 위의 무명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이 공중에 떠올라 무영의 손에 안착했다.

쉬이익!

무영이 검을 휘두르자, 밀실 전체가 압도적인 검기에 휘감겼다. 류원이 10년 전 벽산문이 멸망하던 밤에 느꼈던 바로 그 파괴적인 검기였다.

"네놈의 미약한 '칼의 기억'이 이 무명검의 진정한 힘을 막을 수는 없다!"

무영이 류원을 향해 검을 찔렀다. 검은 형태가 없었다. 마치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피할 수 없는 검이었다.

류원은 눈을 감았다. 《심검록》의 모든 이치가 그의 몸속에서 폭발했다. 그의 검은 더 이상 류원의 손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칼의 기억'**이 깨어나, 검을 인도했다.

류원의 검은 무영의 무형의 검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앙—!

푸른빛과 검은빛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밀실 전체가 흔들렸다. 조혁과 천하맹 고수들은 그 충격파에 휘말려 쓰러졌다.

류원은 무영의 검과 맞닿은 충격으로 뒤로 밀려났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네놈의 검은 오직 파괴만을 담았을 뿐! 내 검에는 벽산문의 의지가 담겨 있다!" 류원이 외쳤다.

"의지라니, 하찮은 것! 그것은 곧 죽음이다!"

무영이 다시 공격해 오려는 순간, 천기자가 동굴 입구에서 나타났다.

"류원! 무영의 검은 지금이 가장 약할 때다! '칼의 기억'으로 **봉인의 역참(逆斬)**을 펼쳐라!"

천기자의 외침에 류원은 깨달음을 얻었다. 무영이 지금 사용하는 검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무명검의 봉인된 힘이었다.

류원은 숨을 고르고, 자신의 모든 기운을 가슴의 '칼의 기억' 각인에 집중했다. 각인에서 뿜어져 나온 핏빛 기운이 류원의 검으로 흘러들었다.


쉬이이익!

류원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그것은 기술이 아닌, 의지의 구현이었다. 파괴를 향한 복수의 의지, 문파를 되살리려는 염원, 그리고 '칼의 기억'이 담고 있는 무명검의 본질적인 봉인 이치였다.

류원의 검이 무영의 무명검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쨍그랑!

무명검이 공명하며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무영의 가면 틈새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류원의 검에 의해 무명검의 **'봉인'**이 다시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크으으... 네놈이... 감히!"

무영은 충격으로 뒤로 물러섰고, 무명검을 쥔 손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검기가 잠시 흐트러지자, 그의 가면이 부서지며 얼굴이 드러났다.

류원은 그 얼굴을 보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너... 너는... 사형(師兄)?!"

무영의 가면 아래 드러난 얼굴은, 1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벽산문의 수제자, 류원의 가장 친했던 **사형, '진무(眞武)'**였다.

마지막 장 예고:

무영의 정체가 류원의 사형, 진무로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진무가 벽산문을 배신하고 무영이 되었던 충격적인 진실과, 그가 '무명검'을 완성하려 했던 궁극적인 이유가 드러납니다. 류원은 복수와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며, '칼의 기억'을 완성하여 무명검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마지막 선택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진무의 배신 이유와 '칼의 기억'을 건 최후의 결전으로 이야기를 완결 짓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칼의 기억 (劍之記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