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기억 (劍之記憶)

by 강민규

제4장. 강남의 그림자, 천하맹(天下盟)의 위선


류원(柳遠)과 천기자(天機子)는 흑룡회의 거점을 떠나 강남(江南)으로 향했다. 강남은 중원에서 가장 풍요롭고 화려한 곳이었으나, 그 뒤편에는 권력과 암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강남은 화려한 비단으로 싸인 독약과 같네. 겉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그 안에 숨겨진 탐욕은 중원 전체를 좀먹고 있지." 천기자가 작은 나룻배 위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말했다.

"천하맹이 바로 그 탐욕의 중심에 있습니까?" 류원이 물었다.

"천하맹(天下盟)은 겉으로는 중원 정파의 구심점이지만, 그들의 실권자인 **맹주(盟主) '검왕(劍王) 조혁(趙赫)'**은 야심이 대단한 자일세. 벽산문이 사라진 후, 그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중원 무림을 장악했지."

천기자는 낚싯대 지팡이로 물장난을 치며 덧붙였다. "게다가 최근 흑룡회가 강남 지역에서 급격히 세력을 키운 배경에는 천하맹의 묵인, 아니, 협력이 있었다는 징후가 보이네."

낙양에서의 충돌 이후, 류원의 무력은 더욱 깊어졌다. 《심검록》을 익히며 그의 검은 기술을 넘어선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류원은 이제 검을 뽑지 않아도, 마음의 검(劍心)만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제압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강남의 중심, 화려한 저잣거리 한복판.

천기자는 류원에게 낡은 서찰 하나를 건넸다.

"이건 벽산문이 멸문하기 직전, 자네 스승이 중원의 은둔 고수들에게 보냈던 구원 요청 서찰의 사본일세. 이 서찰이 '무영'의 실체와 천하맹의 관계를 밝힐 단서가 될 걸세."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합니까?"

"천하맹 맹주 조혁은 오늘밤, 강남의 최고 명문가인 **'남궁세가(南宮世家)'**의 연회에 참석할 걸세. 자네는 연회에 잠입하여 조혁의 면전에 이 서찰을 던져야 하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중요하지."

밤이 깊어지자, 류원은 천기자의 조언대로 남궁세가에 잠입했다. 세가의 정원은 수백 개의 등불로 환하게 빛나고 있었고, 무림의 고수들과 강남의 명사들이 연회장에서 흥청망청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류원은 그림자 속에 숨어 연회장 중앙을 주시했다. 중앙에는 호화로운 금색 의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바로 천하맹 맹주, 검왕 조혁이었다. 그의 옆에는 남궁세가의 가주가 아첨하듯 술을 따르고 있었다.

류원은 조심스럽게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고, 수련으로 다져진 심검의 이치가 그의 모든 움직임을 통제하고 있었다.

류원이 조혁의 등 뒤 약 10장(丈) 거리에 도달했을 때였다.

"누구냐!"

갑자기 연회장 상석 근처에 앉아 있던 한 무사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천하맹 맹주의 직속 호위무사였다.

류원의 잠입술은 완벽했으나, 그 무사는 류원의 검은 검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살기(殺氣)를 감지한 것이었다.


"침입자다! 잡아라!"

연회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수많은 천하맹 무사들이 류원을 향해 달려들었다.

류원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품속에서 서찰을 꺼내 조혁을 향해 던졌다. 동시에 허리춤의 검을 단 일 촌만 뽑아냈다.

쉬이익!

서찰은 정확히 조혁의 코앞 테이블에 떨어졌다. 그리고 류원의 검기(劍氣)는 그를 막아서는 세 명의 무사들을 튕겨냈다.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가슴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조혁은 놀라지 않은 듯 차분했다. 그는 여유롭게 테이블 위의 서찰을 집어 들었다.

"이게 무엇이냐?" 조혁은 서찰을 훑어보더니, 그의 평온하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벽산문의 문주가 보낸 구원 요청서입니다." 류원이 외쳤다. "벽산문 멸문 직전, 당신은 이 서찰을 받았음에도 묵살했습니다! 당신이 **'무영'**과 내통한 증거입니다!"

류원의 외침은 연회장의 모든 이들에게 똑똑히 전달되었다. 무림의 최고 맹주가 멸문당한 문파와 연루되었다는 의혹은 거대한 파문을 일으킬 만했다.

조혁은 서찰을 손가락 사이에서 찢어버리며 싸늘하게 웃었다.

"하찮은 꼬마 녀석. 벽산문은 마도(魔道)와 내통하여 스스로 멸망한 것이다! 감히 천하맹의 권위에 도전하다니!"

조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검왕다운 위압적인 기세가 연회장을 뒤덮었다.

"잡아라! 산 채로 잡아 내게 데려오너라!"

수십 명의 천하맹 고수들이 류원을 포위했다. 그들의 무공은 흑룡회의 잡배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류원은 맹렬히 달려드는 고수들을 맞이했다. 그는 검을 완전히 뽑아내지 않고, 심검의 이치만을 이용했다. 검집은 방패가 되고, 뽑혀 나온 일 촌의 칼날은 번개처럼 정확한 공격을 가했다.

파강! 챙!

무수한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류원은 비록 홀로였으나, 《심검록》의 경지는 그의 무위를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했고, 검은 고수의 검로(劍路)를 완벽하게 차단하며 허점을 파고들었다.

그때, 천기자가 연회장 지붕 위에서 나타났다. 그는 류원을 향해 조용히 손짓했다.

"원아, 됐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미 얻었다!"

류원은 천기자의 뜻을 깨달았다. 조혁의 당황한 눈빛과 즉각적인 서찰 파괴는 이미 그의 연루를 증명하고 있었다. 지금은 퇴각할 때였다.

류원은 검을 빠르게 휘둘러 포위망에 틈을 만들고, 그 틈으로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그의 등 뒤로 천하맹 고수들의 분노에 찬 고함이 쫓아왔다.

류원은 천기자와 함께 강남의 밤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뒤에는 조혁의 분노와, 벽산문 멸문의 진실에 대한 무림인들의 의혹이 폭풍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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