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기억 (劍之記憶)

by 강민규

제3장. 흑룡회의 표적과 심검의 첫 시험


천기자(天機子)와 류원(柳遠)은 폐허가 된 벽산문을 뒤로하고 중원의 깊은 산악 지대로 접어들었다. 천기자의 발걸음은 겉보기엔 느릿했으나, 류원이 전력을 다해 따라가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무영(無影)의 그림자는 중원 곳곳에 스며들어 있네. 그들은 벽산문뿐 아니라, '무명검'의 비밀을 아는 모든 이들을 처리했지. 그들의 실체는 아직 미궁이지만,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조직은 짐작 가는 곳이 있네."

천기자가 대나무 지팡이를 휘두르며 말했다.

"흑룡회(黑龍會) 말입니까?" 류원이 물었다.

"맞네. 흑룡회. 중원의 뒷골목을 주무르며 암살과 정보 수집을 일삼는 집단이지. 그들의 수뇌부가 '무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며칠 후, 두 사람은 중원의 상업 중심지인 낙양(洛陽) 근처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흑룡회의 지부가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천기자의 정보였다.

날이 어두워지자, 류원은 천기자와 함께 마을 외곽의 낡은 주점으로 향했다. 주점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였지만, 오가는 이들의 눈빛은 살기로 번뜩였다.

"저들이 흑룡회 소속입니다." 류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곳이 그들의 거점 중 하나일세. 이제 자네의 **《심검록(心劍錄)》**이 첫 시험을 치를 시간이야." 천기자가 류원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류원은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일부러 허리춤의 검은 검을 노출시켰다. 벽산문에서 내려온 검법은 이미 중원에 거의 잊혔지만, 그 검 자체의 생김새는 아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었다.

주점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류원을 향한 십여 개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어이, 새파란 꼬마가 잘못 찾아온 모양이군.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주점에서 가장 덩치가 큰 사내가 일어나 류원에게 다가왔다. 그의 허리에는 용이 새겨진 짧은 쌍도가 매달려 있었다.

류원은 사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는 흑룡회의 우두머리를 찾으러 왔다. 벽산문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들을 것이다."

류원의 입에서 '벽산문'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사내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이놈이 감히!"

사내는 쌍도를 뽑아 류원에게 덤벼들었다. 그의 도는 빠르고 사나웠다. 중원을 떠돌며 사람을 해친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흑룡회의 잔혹한 무공이었다.

류원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심검록》**에서 익힌 '심검(心劍)'의 이치를 떠올렸다.

칼은 형체가 있으나, 검심은 형체가 없다.

그는 검집에서 검을 **반 척(半尺)**만 뽑아냈다. 사내의 쌍도가 류원의 목을 베기 직전, 류원의 검이 마치 그의 의지를 반영하듯 미세하게 떨렸다.


팅! 팅!

두 번의 짧은 쇠 부딪히는 소리.

류원의 검은 칼날이 아닌, 검집의 끝부분과 칼이 나오는 틈새만으로 쌍도의 공격을 막아냈다. 사내의 쌍도는 힘이 실린 채 튕겨져 나갔고, 사내의 양손목에는 날카로운 상처가 새겨졌다.

"크악!"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놀란 흑룡회 무사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점 안은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때, 주점 구석에서 맑고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멈춰라."

한 노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흑룡회의 지부장으로 보이는 인물로, 비록 늙었으나 눈빛은 독사처럼 예리했다.

"벽산문이라... 10년 전 사라진 이름이군. 너는 대체 누구냐?"

류원은 노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벽산문의 유일한 생존자, 류원이다. 너희가 '무영'에게 넘긴 정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노인의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건방진 꼬마 같으니. 죽은 문파의 이름으로 감히 이곳을 찾아와?" 노인은 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슈아악!

노인의 손에서 강력한 암기(暗器)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흑룡회가 자랑하는 '천독사영(千毒死影)', 수천 개의 독침이 숨겨진 무서운 암기였다.

류원은 눈을 감았다. 《심검록》의 이치가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검심이 곧 몸이요, 마음이 곧 칼이다.

그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움직였다. 류원은 검을 완전히 뽑지 않은 채, 단지 검집만으로 허공을 휘둘렀다. 검집의 움직임은 유려하면서도 정확했다.

타타타타탕!

독침들이 류원의 검집에 부딪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심검(心劍)**의 경지, 마음이 칼을 조종하고, 칼이 몸을 지키는 무형의 경지였다.

노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류원의 무공은 단순한 벽산문의 검법이 아니었다.

류원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검집에서 검을 완전히 뽑아냈다. 검은 어둠처럼 검고, 칼날은 차가운 달빛처럼 빛났다.


"대답해라. 무영은 어디에 있는가?"

류원의 검이 노인의 목을 겨누었다.

"흥! 비록 네가 벽산문의 비기를 익혔다 한들, 흑룡회의 비밀을 털어놓을 것 같으냐!"

노인은 독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때, 갑자기 노인의 입가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그는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결한 것이다.

류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은 흑룡회 무사들은 이미 노인의 잔인한 자결에 겁을 먹은 채 감히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를 얻는 데는 실패했군. 하지만 자네의 심검은 통과일세."

주점 구석 테이블에 앉아 만두를 먹고 있던 천기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류원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말게. 흑룡회의 우두머리가 자결했으니, 이제 '무영'의 그림자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할 걸세. 우리가 원하는 것은 그들의 실체니까."

천기자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다음 목적지는 중원의 권력 핵심부, 황궁 근처의 **강남(江南)**일세. 그곳에 '무영'의 진정한 배후가 숨어 있지."

류원은 노인의 시신을 바라보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검은 다시 류원의 허리춤에서 평범한 철검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류원의 가슴 속 '칼의 기억'은 더욱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의 복수가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핏빛 각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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