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면접을 보다
젊은 선생님이 오셔서 애들이 좋아하겠어요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것 같은 여자분이 내게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에 계신 분은 내 이력서를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곧 나이 사십에 “젊다”는 말을 듣는 것은 언제 들어도 익숙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나이 사십. 이 얼마나 끔찍하고 아름다운 단어인가. 혹하지 않는다고 하여 불혹이라고 하지만 실상 혹하지 않는 사십대는 없다는 것이 내피셜 진리라고 장담한다. 친구들끼리 만나면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굴러가는지 조금 더 알게 된 것뿐이다. 그래서 끔찍하기 그지없다. 세상의 이치를 좀 알게 된 것뿐이지, 세상을 알게 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탐험을 좋아하지만, 온통 미지로 둘러싸인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나이가 들어도 똑같다. 무섭고 두렵다.
가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에서 맹수를 사냥하는 부족민이 나올 때가 있다. 많고 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맹수를 사냥하고 나서는지 나는 항상 의문이었다. 중요한 것은 맹수를 사냥하는 용사 중에도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한 부족민이 꼭 껴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원하는 그림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분들이 항상 눈에 들어왔다. 용맹한 부족민들 틈에 숨어 있는 두려움에 떠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여기 앉아서 기다리시면 돼요”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여자 직원분이 낯선 문을 열고 나를 밀어 넣었다. 문 앞에는 이사장실이라고 쓰여있었다. 벌써 세 번째 학원 면접이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면 뭘 하나 윗선에서 뽑아주지 않으면 나는 그냥 지나가는 아저씨에 불과한데. 면접실에서 면접관을 기다리는 나는 용맹한 전사 뒤에 숨어 있는 선량한 부족민 나부랭이였다. 불혹이라고 긴장을 밥 말아 먹었으랴. 겉으론 평온 한 척, 고상한 척 앉아 있었지만, 실상은 두근대는 심장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진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냥의 시간이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키가 훤칠한 남자가 들어왔다. 누가 봐도 이사장으로 보이는 이 남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경로당에서나 볼 법한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가 바로 오늘 내가 해치울 맹수다. 노년의 맹수는 건강상에 문제가 있는 건지 낯빛이 어두웠다.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난 것도 같다. 나는 이 술에 취한 맹수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이런저런 전략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사장은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나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여자친구와도 그렇게 찐하게 눈을 맞춰 본 기억이 없었다. 뜬금없이 지난 여자친구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맹수의 눈은 초점이 엇나간 흐리멍텅한 눈이었다. 술을 마신 것이 확실해졌다. 눈 구석구석은 핏줄이 터져 빨갛게 착색되어 있었다. 살다 살다 이런 맹수를 만나긴 처음이다. 역시 불혹이라고 해도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다. 이사장은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등을 뒤로 젖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일대기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말이야.”
면접을 보러온 사람은 나인데 그는 자신의 젊은 시절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거의 자기소개에 가까운 자신의 일대기였다. 오전 11시 정각에 시작된 면접이 11시 4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나는 맹수의 약점을 노렸다. 나는 고개를 슬쩍슬쩍 끄덕이며 부드럽게 감탄사를 쏟아냈다. 나는 40분이 넘도록 “아, 네” 이 말 외에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늘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사나운 맹수지 내가 아님을, 죄 없는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상기시켰다. 맹수도 만만치 않게 계속 덤벼들었다.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가 끝나자 성공한 자식 이야기로 나의 허점을 노려왔다. 그는 은연중에 나의 학력과 성공한 자식의 학력을 비교하며 나의 얼굴을 살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자제분이 정말 훌륭하시네요.”라고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이사장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잡았다!
“그래서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지?”
합격이었다. 안내를 맡은 여직원이 오전에만 벌써 두 명이 면접을 보고 갔다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나는 고상하게 주차장까지 천천히 걸어와 차분히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리곤 “예쓰! 예쓰! 예쓰!”하고 고함에 가까운 함성을 질렀다. 기쁨의 포효였다. 숨어 있는 부족민도 맹수를 쓰러뜨릴 수 있는 용맹한 전사가 될 수 있다. 아주가끔이지만 말이다. 자세히 보면 누구든 자신만의 필살기가 있다. 조용한 면접의 전사. 듣기의 화신. 듣는 것은 나의 숨은 재능중 하나였다.
그렇게 나는 기숙학원 생활담임 선생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