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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정안 May 03. 2023

한때 당신의 전부였던,
기숙학원 이야기 9

09. 고통을 견디는 법 2 – 착한 사람들의 몫



“선배, 선배는 깨진 유리창 다시 붙이는 법 알아요?”     


 그녀는 폭력적인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말고 뜬금없이 물었다.

나는 “글쎄, 다시 사야 되지 않을까? 깨졌으면?”이라고 답했다. 그녀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얼굴이 붉어지진 않았을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갑자기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맞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다시 사면 되겠네.” 그녀가 웃자 나도 어버버 거리며 어색하게 따라 웃었다. 

 한참을 웃고 난 그녀는 눈가에 흐른 눈물을 닦아내며 다시 물었다. “그럼, 사람 마음은 어디 가면 다시 살 수 있어요?” 녀석은 자신의 마음이 깨진 유리창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마음이 깨져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폭력을 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거야.’라고 전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겉으로는 “너무 아프지만 말자.”라고 짧게 답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눈은 슬퍼 보였다. 슬프고 따뜻해 보였다.     


 20대, 나의 첫 좌절은 아끼는 사람을 절대 도와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찾아왔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아파하는 사람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다는 무력감. 무력감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그 무력감은 물체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의 무게를 훨씬 웃돌아 내 일상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선배 춥지 않아?” 후배는 나의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켰다. “가자.” 나는 후배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향했다. 나는 어린애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졸졸졸 그녀가 가자는 대로 의심 없이 따랐다.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근처 빌라촌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곳은 학교 근처의 작고 허름한 원룸촌이었다.          



“그...그...그...그래서요? 후배분 집에 들어갔어요?”

순진한 자이언 턱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물음의 답을 갈구한다.

“잤죠? 잔 거죠? 선생님이랑 그 후배분이랑 잔 거 맞죠? 아니, 주무신거 맞죠?”

녀석은 래퍼 지망생임을 증명하듯 속사포 같은 속도로 물음표를 날렸다.

“너, 귀는 좀 괜찮니?”하고 물으니,

“귀는 진즉에 다 나았습니다. 쌤!”하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답한다.

닥치고 빨리 다음 이야기나 하라는 뜻이다.          



 후배는 그녀의 자취방 침대에 누웠고 나는 그녀의 방 책상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의 심장은 아직도 쿵쾅거리고 있었다. 방이 얼마나 좁던지 그녀와 내가 방에 들어가자 방이 꽉 찰 정도였다. 당시 나는 네 명이 함께 쓰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는데, 그녀의 원룸은 꼭 일인용 기숙사 같았다. 방의 가구라곤 침대와 책상뿐, 옷장은 없었다. 화장실은 입구에 간이 벽을 세워 샤워 부스와 변기만 설치된 구조였다.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부엌은 존재하지 않았다. 콘센트 멀티탭이 늘어진 구석에는 딱 봐도 연식이 오래되어 보이는 중고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벽지에선 은은하게 찌든 내가 났다. 편의점 인스턴트 음식 냄새가 밴 방이 외로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나까지 쓸쓸해졌다. 창문에는 다육이 화분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뭔지 알아요?”     


 그녀는 침대 아래에 손을 뻗어 손바닥만한 종이 상자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쪼그려 앉아 있던 내 눈앞에 종이 상자를 딱 들이밀었다.     


“이거 먹으면 잠이 잘 와요. 아빠 생각도 덜 나고.” 

말을 마친 후배는 다시 침대에 바로 누웠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상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미웠는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리워지더라고요. 그 아이러니한 감정이 싫어서 아빠 생각이 나면 이거 한 알 먹고 자요. 나쁜 기억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그녀가 내 눈 바로 앞에 박스를 들이미는 바람에 무슨 약인지 읽을 순 없었지만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유도제]     




 나는 박스에 쓰여있는 이름이 ‘제’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뭔가를 유도하는 약이란 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식은땀이 났지만 긴장해서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근데 이거 수백 알 사서 먹으면 수면제처럼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후배는 종이 상자를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걱정스러운 나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후배는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닿은 곳에 환풍기가 ‘윙윙’하고 돌고 있었다.     


“걱정 마요. 그냥 외로워서. 사람이랑 같이 있어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아서. 이럴거면 혼자만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그녀는 침대 아래로 박스를 집어넣었다.

“죽으면 이 모든 게 다 고요해지겠죠?”     


“자, 자살하면 지옥 간다 너. 그리고 지옥 가면 사람들 엄청 많을걸? 죄짓고 죽는 사람들 엄청 많잖아. 혼자 있고 싶어도 지옥에선 절대 혼자 있을 수 없을 거야. 고요한 건 꿈도 못 꿀걸?!”     


 스물둘의 젊은 나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지금 어디쯤 있는 걸까?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녀와 나의 마음의 깊이는 달랐다. 그녀의 깊은 슬픔에 나는 앞도 당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를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더 그렇게 진지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진짜로 혼자 있고 싶으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부탁해봐.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에 오랫동안 머물게 해달라고. 그게 더 ‘현실성’있어.”     


내가 진지하게 말하면 후배는 꼭 웃었다.

“지옥이랑 천국 얘기 하면서 현실성 운운하는 거 개웃겨.”     


 그녀의 웃음소리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녀는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가 그녀의 삶에 없던 것처럼 정말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난 그때까지 그녀의 고통이 뭔지 전혀 알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삶은 그녀의 삶에 비하면 천국에 가까웠으니까.          


고통은 언제나 착한 사람들의 몫이었다.

마음의 병은 마음에 사랑이 남아있는 선한 사람들에게 생긴다.

후배는 나에게 기대 말없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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