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왜 이리 어려운겨?
명퇴 후 귀촌하기 전까지, 2년간 서울시교육청의 의뢰로 초등학부모 대상 성교육을 나갔었다.
서울 시내 학교를 돌며 보호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 1위는?
" 아기는 어떻게 태어나요?"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설마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모르실 리 없다.
성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이분들! 젊은 시절 중학교 교실에서 만났던 그 학생들이 자라 부모가 된 세대다.
당시 성교육을 하러 교실에 들어가면 첫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다짜고짜 이 말을 듣곤 했다.
" 다 알아요."
그랬다.
학교에서 성교육도 흔치 않았지만
어쩌다 하는 성교육이라곤
관련 교과마다 돌림 노래처럼
사춘기 신체, 심리 발달, 정자. 난자, 월경 주야 장천 같은 이야기였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방송으로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니 학교 성교육에 실망한 아이들은 아예 기대를 접었다(사실 나도 학교 성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다).
게다가 중학교 입학 전후로 음란물을 접한 일부 (사실 아주 많은) 아이들은 이제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성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늘어놓을 것처럼 생긴 나의 등장에 "다 알아요"라고 철벽을 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울에서 가장 열악한 환경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선생님들은 수업을 전쟁하듯 치러내셨고 당연히 생활지도와 관련된 문제도 많았음은 물론이다. 우리들은 교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웃으며 말하곤 했다. “여기서 수업할 수 있으면 전국 어느 학교에서나 수업 잘할 수 있어”
나는 거칠지만 가감 없이 자기감정과 생각을 노출하는 아이들을 영혼이 털릴 만큼 힘들어하면서도 그 애들이 좋아서 신규발령을 받았던 그 지역에서 32년을 살아내고 명퇴를 했다.
세상을 따라 빛의 속도로 급변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맞는 성교육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성교육은 살아남을 수 있다.
때로는 부끄러울 만큼 수업을 망치고 다시는 교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유혹과 자괴감에 시달렸다.
이런다고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안 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을 수업.
투쟁하다시피 수업 시수를 어렵게 확보하면서까지 난 왜 이 지경을 자초하는 걸까?
그러나 수업을 포기하고 싶을 만하면 터지는 안타까운 성문제
샘! 우리 학년은 언제 성교육해요?라고 묻는 아이들
저번에 배운 거 옆 학교 다니는 친구에게 알려줬어요. 그 학교는 성교육 안 한대요 라는 말을 외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산같이 여겨졌던 주제들을
하나하나 넘어가는 것이 그렇게 보람 있고 재미있을 수 없었다.
약속이나 한 듯 학교마다 비슷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질문들이 교실에서 아이들이 내게 던졌던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 알아요”를 외쳤던 그 많은 아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냐? 는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간다.
성교육자의 딸인 내 딸 역시 엄마가 되고 보니 '이제 이 질문에 어떻게 답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나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거다.
아무튼 그해 나는 서울 시내 여러 초등학교에서 이제는 부모가 된 다 알아요 세대들을 만났다.
그리고 짧은 특강으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성이라는 바다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눌 수 없음이 늘 안타까웠다.
나는 60년대에 태어났다.
우리나라 성문화와 사회변화의 변천에 맞춰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며 현재까지 성교육 강사로 활동 중이다.
언젠가 한 번은 현장에서 만났던 아이들의 말과 생각, 학부모와 선생님의 고민을 글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늘 시간 부족과 체력 고갈로 허덕여 엄두를 못 내다가 드디어 시간부자가 되었다.
나는 교사이기도 했지만, 한때는 노심초사하며 사춘기자녀를 키운 엄마이자 학부모였다.
부모로서 같은 걱정을 안고 살았다는 뜻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이 글을 연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