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他)의해 규정된 자아는 필연적으로 붕괴된다.
오랜만에 주말에 출근을 했다.
입사 첫해부터, 그리고 특히 작년에는 야근과 주말출근을 거의 했다. 회사 내에서도 사람들이 ‘괜찮아요?’라는 말을 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은 사람으로 통했다. 게다가 학업을 병행했기 때문에 정말 많이 바빴다. 하지만 이 텐션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없다는 생각은 늘 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대학원을 처음 들어가던 해 당시 부총장님이셨던 이인성 교수님께서 내게 ’이제부터 인생은 마라톤이야. 반드시 그걸 명심해야 해‘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올해는 내 인생사에 찾아온 개인적인 소중함에 더 집중하는 한 해로 다짐하며, 일과 삶의 경계를 과감하게 그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어느 때보다 바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어느 때보다 적당하다고 느껴지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음에 불안감이 생겼다. 아마 나 자신을 극한의 환경으로 몰아야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지독히도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불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년에 상대적으로 한가했던 주변 동료들이 나보다 바삐 움직였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내가 도태되고 있나 하는 마음속에 불안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사라졌고, 이어서 자존감도 낮아져 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올 한 해는 내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고 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오고, 경험치를 쌓았지만 머릿속이 늘 복잡했다. 성과와 실적은 계속해서 쌓여가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라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혼란스러웠던 개념들이 자리를 잡아갔고, 이제 어느 분야를 깊게 들어가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일부지만, 그렇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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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주말에 출근을 했다. 3시간 정도 일을 했는데 시간의 밀도가 너무 높았다. 머릿속이 상쾌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스스로 올해의 나를 평가하기에는 ‘이보다 더 과거의 나보다 성장한 해가 없는데, 왜 나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불안함을 느끼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던 순간 자신감과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일반적으로 ‘자신감’하면 용기 있는 모습을 연상하고, ‘자존감’하면 굳건하면서도 심지가 단단한 모습을 연상한다. (나는 그렇다).
그런 모습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어원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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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自信感; Self-confidence)
스스로를 믿는(confidence) 느낌
자존감(自尊感; Self-esteem)
스스로를 존중하고 받드는(esteem) 느낌
여기에 타(他)는 없다. 그렇다. 나의 불안의 원천은 타(他)의 관점에서 늘 나를 지켜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주말에 출근을 하거나, 남들보다 일을 많이 하거나 혹은 남들이 업무 외적으로 시도하지 않는 성과를 내기 위해 공부하고 논문을 쓰는 그러한 행위에도 나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고,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였지만, 나의 성장과, 나의 만족감과는 별개로 늘 타(他)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봤다. 그러다보니 내 스스로의 가치가 타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았다. ‘인사가 만사다’라는 보기 좋은 핑계로 내 자아를 포장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마음이 후련했다. 그리고 타인에게 내 인생을 맡길 수 없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타인에 의해 자아를 규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이 따르는 것 같다. 내가 올바르게 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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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성과뿐만이 아니라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괴롭힐 때, 오직 신 앞에 단독자로서 나 스스로에게 한치의 부끄러움이 없게끔 살아가면 그것으로 훌륭한 모습이지 않을까.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이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