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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bbie Oct 20. 2023

삶의 최전선으로 우리를 부르는 작가. 은유

작가 되기보다 살기에 집중하는 삶

 

‘은유의 글을 한 번도 안 읽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사람은 없다.


 

읽은 사람은 전 책을 찾아 읽게 되는 매력을 지녔다’고

 알릴레이에서 스스로를 소개했다.

 

작가를 알기 전 책으로 먼저 만났다.

<쓰기의 말들>은 좋은 격언집이라는 느낌으로 끄덕이며 읽고 꽂아 두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시집을 든 데는 성공했으나, 이해력은 키워야 할 숙제로 주었다.


영아 유기죄로 감옥에 갇힌 산모는 미역국을 먹었을까 하는 글은

현상 너머를 실체를 생각하게 했다.


은유, 삶의 최전선으로 우리를 부르는 작가


“글쓰기는 기예의 영역이다. 불가능을 안고 출발하는 일이다.” <글쓰기의 최전선> p.34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전태일은 글을 쓸 수밖에 없었고 글을 쓰면서 ‘자기 한계’와 ‘삶의 경계’를 돌파 수 있었다.” <글쓰기의 최전선> p.53

처음 읽을 때는 용기를, 두 번째 글쓰기 이론이 들렸고, 세 번째는 쓰기 어려움을 발굴하듯 보고 있다. 쓰기 책에서 만난 시는 당혹스러웠지만 이제는 작가들과 통성명을 할 정도는 되었다.

<글 쓰기의 최전선>을 시적 글쓰기라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생활형 잠언에 가깝게 들린다. 내 삶이 일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 없지만 일상에 좋다는 감탄사가 자주 출몰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기 한계’와 ‘삶의 경계’를 돌파하고 있다. 한 걸음 나아가기도 하지만 두 세 걸음 밀려날 때가 더 많다.


“작가는 되기는 쉬워도 작가로 살기는 어렵다.” <글쓰기 최전선> p. 22

 

지금껏 되기만 집중했지 살기는 신경 쓰지 않았다. “작가는 데뷔는 있지만 은퇴는 없는 미로이다.” 임리나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시작을 해야 미로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쓰기 책은 결국 쓰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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