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가 있는 엄마들에게는 절대로 '여유로운 장 보기' 란 존재하지도 않는 먼 나라의 단어이다.
마트를 가는 날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며, 언제든 튀어나가 달릴 수 있도록 운동화끈도 단단히 메어야 한다. 찰랑이는 시원하고 멋스러운 원피스는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걸리적거리는 머리도 단단히 묶고 아주 비장하게 시동을 켜야 한다.
도착하자마자 카트를 재빨리 가져와서 의자에 아이를 앉히고(묶어두고) 이렇게 저렇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열 번 정도 돌려보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형아? 가 되어서 그런지 루틴이 비슷해져서, 시뮬레이션 돌리는 시간은 각오를 다지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최대한 문에 가까운 곳으로 스무스하게 주차를 하고 나면, 아이를 내려주기 전에 잔소리의 시간이 있다.
팔을 살짝 잡고,
"라니야.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그랬지? "
" 뛰지 않고, 크게 큰 소리로 말하지 않고!"
" 또? "
" 또.... 떼쓰지 않고 울지 않기! 엄마말을 잘 들어야 해!"
마트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한껏 업 돼있는 기분을 조금 진정시키고 차 밖 전쟁터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그놈의 '자동차카트'가 다행히도 구석에 하나 남아 있었다. 저걸 타겠다고 동네방네 떠나가라 울어서 마트에서 바로 다시 나온 적도 있는데 오늘은 럭키비키?
나보다 먼저 발견한 아이가 도다다다 뛰어서 자동차에 앉는다.
소독티슈로 닦고 그런 시간은 애초에 주질 않아서 이제는 과감히 포기하고 차문을 단단히 잠근 후 출발한다.
긴 쇼핑은 너무 지루해하기 때문에 빨리빨리 살 것을 찾아서 다급하게 움직인다.
다 찾지 못했는데 엄마 이제 가자 소리가 나오면 원하는 품목을 다 사지 못한 채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눈을 빠르게 굴려야 한다.
이게 좋은가? 저게 당이 덜 들어간 건가? 비교할 시간도 사치이다. 써봤던 것, 먹어봤던 것 친숙한 위주로 착착 담는다.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장난감모형의 카트는 생각보다 빨리 지루해지나 보다.
그럼 눈치껏
" 라니 엄마 장 보는데 조용히 잘 따라와 줬으니까 (원래 사주려고 했지만) 과자코너에서 먹고 싶은 과자 골라와! 하나만 골라와야 해!"
사실 마음 같아서는 열 개도, 백 개도 사줄 수 있지만 이렇게 조금씩 자기 절제를 배워가고, 선택의 고민과 집중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는 개뿔,
자기 몸뚱이만큼 커다란 봉지를 들고 웃으며 뛰어온다.
" 엄마 한 개 골랐어! 이거! 이걸로 사자! "
어디 술집 안주로 나가는 초 대용량 콘칩 봉지를 웃으며 가져오는 아들을 보며, 오늘도 내가 졌다....
한 개를 고른 건 맞으니까....
이대로 무난하게 끝날 수 있으면 베스트지만 윗 층 세제코너도 가야 한다.
바로 옆에 장난감 코너가 아주 크게 있기 때문에 각도를 잘 맞춰서 어찌 됐건 안 보이게 가야 한다.
하필 락스가 똑 떨어져서 급하게 락스를 카트에 담고 있으면, 아빠 닮아 시력이 무척 좋은 우리 웬수가
" 엄마! 저기 가보자 저기!!!!"
초흥분 상태로 기다리지 못하고 차 밖으로 나와서 뛴다.
인내심을 가지고 화를 내면 안 되지만 단호하게 말하되 울리면 낭패다.
요즘 한창 빠져있는 미니카 앞에서 눈이 반짝반짝... 살짝 벌어진 입에서는 침이 곧 떨어질 것 같다.
" 좋아. 하나만 골라 딱 하나만...! "
" 이거 빨간 색깔?"
" 그건 집에 있어. 저거 봐바. 저거 하얀색 저거 맥라렌이라고 엄청 비싼 차야. 아니면 저거 파란 색깔 벤츠어때 벤츠 AMG! "
아... 나도 모르게 같이 신이 났다...
" 못 고르겠는데..... 엄마..."
파란 AMG와 하얀 멕라렌을 양손에 쥐고 고민이 가득한 아들래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 하나만 골라 봐. 엄마가 기다려 줄게. 천천히 생각해 봐~ "
이걸 집었다 저걸 집었다 카트에 넣었다가 뺐다가 하더니 결국 멕라렌을 골라 넣고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다.
파란 친구는 몰래 머리 위에 달려있는 카트에 넣었다.
" 이제 집에 가자! "
" 그래 집에 가자!"
장난감 코너 쪽 가까운 물건들은 될 수 있으면 제일 나중에 가는 것이 좋다. 빨리 집에 가서 가지고 놀고 싶어서 집에 가자고 보채기 때문이다.
줄을 서서 계산을 끝마치고 손에 자동차를 꼭 쥔 아이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계산하는 즉시 장바구니에 물건을 바리바리 담아서 카트로 이동.
주차장에서 아이를 먼저 묶고, 짐을 실은 뒤 카트를 가져다 두고 운전석에 앉으면 오늘 장보기는 거의 끝난다.
신난 친구에게, 오늘도 사건사고 없이 엄마말을 잘 들어주고 나름 얌전하게 마트에 다녀와줘서 고맙다고 뒤돌아 한 손에 아까 고르지 못한 파란 친구를 내밀면
" 엄마!! 너무 기뻐!!! 엄마 최고!! 마트 너무 좋아!!"
웃으면서 집까지는 금방 도착한다.
아, 마트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