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겋게 달아오른 얼굴, 마른침을 침을 꿀꺽 삼키며 초조해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마셔댔고... 연인, 가족들, 남녀노소 모두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손에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앞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벨라지오 호텔 앞의 에펠탑만이 그 자리의 주인인 양 빛나고 있었다. 호수에 반사된 빛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호수 위의 물결이 일렁거렸다. 이윽고 중앙 원형을 따라 선을 그리며 일곱 여덟 개의 물줄기가 수줍은 듯 올라온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주유소 앞에 서 있는 바람에 허우적거리는 풍선 인형처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점점 더 솟아오른다. 수십 개의 물줄기가 일직선에서 곡선, 하트를 만들었다가 다시 내려앉는다. 물줄기는 홀로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서 춤추는 독무처럼 어딘가 쓸쓸하지만 웅장하다.
그때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bye’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혼자일 때면 수평선을 생각하며 침묵에 잠기곤 해요
그래요, 해가 없다면 이방에도 어둠이 가득하겠죠
당신이 저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창가에서 당신이 불을 지핀 저의 마음을 모두에게 보여줄 거예요
우연히 만나 당신이라는 빛을
제 마음을 담을 거예요
Time to say goodbye (당신과 함께 떠날 거예요)
본 적도 없고 산적도 없는 그 나라에서 살 거예요
당신과 함께 그 나라로 떠날 거예요
제가 알고 있던 바다 위에 배들
아니, 그것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 살 거예요”
그 물줄기를 따라 빛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노래가 무르익어갈 때쯤 이면 아이돌의 칼군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분수가 오와 열을 맞춰 하나씩 앞다투어 힘껏 날아오른다. 필라테스 강사의 현란한 요가 동작처럼 자유자재로 구부러지는 물줄기는 실로 아름답다. 그 모습은 흡사 바다에서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듯했다.
노래의 중간쯤 어둠이 내려앉아다가 동그란 원형으로 분수가 일어섬과 동시에 ‘따따따 땅’ 따발총 소리와 함께 양쪽 끝에 죠스의 지느러미처럼 가운데로 순식간에 들어온다. 점점 더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으로 갈수록 분수에서 내뿜는 물줄기 또한 강렬해진다. 원형 안쪽에서 바깥으로 휘어져 나갔다가 위로 솟구쳐 오르는 물줄기는 수그러드는 듯하다가도 커졌다 했다. “팡팡” 하는 소리와 동시에 폭죽처럼 튀어 오른다.
힘껏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가 내려오는 분수는 나의 마음까지 뻥 뚫리게 만들었다.
중앙에 빛이 모이면서 한여름 밤의 폭죽처럼 여러 차례 “펑펑” 소리를 내며 터진다. 그와 동시에 양쪽 옆에서 ‘파파바방’하고 터지며 전쟁을 끝을 알리는 마지막 대포 소리처럼 차례로 물결을 타고 들어온다. 물줄기는 바다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30~40미터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이내 땅 위로 곤두박질친다.
그와 동시에 모든 불빛은 사라진다. 시트러스향의 시원한 미스트가 옅은 수증기를 타고 나의 얼굴에 와서 닿는다. 상큼함은 얼굴의 미소처럼 번진다. 처음 장면 그대로 호텔 앞에는 에펠탑이 장승처럼 빛을 내며 우두커니 서 있다.
내가 꿈에 그리던 3대 분수쇼를 보게 되다니 가문의 영광을 넘어 자랑이었다. 나의 몸은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움직일 수 없었고, 심장은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 순간 나의 꿈은 미국 호텔리어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 있는 지구상에 가장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에서 일해 보는 것이었다.
꿈과 현실은 많이 달라져 있지만...
난 아직도 분수쇼가 끝난 뒤에 밀려오는 하늘의 물방울처럼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이 40대 중후반 어느 날 가슴속에 꿈틀대던 또 다른 무언가가 나에게 속삭였다.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지?’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날의 그 기분처럼 과연 무언가를 할 수 있을까? 그때처럼 가슴이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의 가슴속에 숨은 응어리를 꺼내어 보자’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쓰고 있다. 글을 쓸 때의 울먹임, 들썩거림, 앞으로의 내가 쓰고 싶은 활자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나에게 집중하고 다양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또한, 같이 무언가를 쓰는 사람들의 관계, 어쩌면 그것도 지금 내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을까? 지금까지 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나를 이끌어 주었을 수도 있겠다.
나는 슬플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기 위해서...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어두운 방, 말하지 못한 이야기, 미친 사연 나 또한 그러한 방의 이야기에 끌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