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로부터

- 영화 <프란시스 하>를 보고

by 구구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 하고 있진 않거든요.” 무용단 친구 레이첼 지인과의 식사 자리, 직업을 묻는 질문에 프란시스가 답한다.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는데 ‘하고 있진 않다’는 답이 돌아왔으니 레이첼과 그 지인은 황당하기만 하다. 모두가 멀뚱멀뚱 프란시스만 바라보자, 이어진 그녀의 답은 더욱 가관이다. “전 무용수예요. 아마도요.” ‘아마도 무용수’라는 말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 프란시스는 정녕 그런 사람이다.


<프란시스 하>의 주인공 프란시스는 전속 무용수를 꿈꾸는 견습 무용 단원이다. 프로 무용 단에 속해 있으니 무용수는 맞지만, 그렇다고 정식 공연에 서 본 적은 없기에 스스로를 당당히 무용수라 소개할 수도 없다. 프란시스가 뒤에 작아진 목소리로 ‘아마도요.’를 덧붙인 데에는 이러한 사정이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무용을 향한 프란시스의 사랑은 전속 무용수인 레이첼에 뒤지지 않는다. 프란시스는 매번 아무도 없는 무용실에서 홀로 땀을 흘려가며 연습하고, 수업 중에는 자신의 차례가 아님에도 지도받는 다른 무용수의 동작을 뒤편에서 조용히 따라 한다. 값비싼 뉴욕에서 가난에 쪼들리며 사는 것 또한 무용에 대한 애정 탓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무용단장 콜린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곧 있을 크리스마스 공연 팀에서 본인이 제외되었다는 것. 콜린은 대신 무용단 사무직을 제안하는데, 프란시스는 당연하게도 이를 거절한다. 그녀에게는 오로지 무용수로서의 삶만이 가치 있으므로.


금전적인 문제로 시작한 대학 행사 보조 업무에서 역시 그녀는 자신을 웨이트리스라 칭하는 사람에게 음료를 따를 뿐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는 중, 그녀는 그곳에서 남자 친구를 따라 일본에 갔던 절친 소피를 우연히 마주친다. 반가움에 겨운 둘은 그날 밤새 소피의 남자 친구 험담을 나누는데, 다음날 소피는 홀연히 그 남자 친구의 할아버지 장례식에 가 버린다.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소피를 쫓는 프란시스. 현관 앞까지 달려 나온 그녀는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의 초라한 맨발이 닿아 있는 곳은 바로 여기,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후 그녀는 이전에 무시한 사무 일을 시작한다. 친구와 혹은 친구에게 얹혀살던 과거와 달리 자신만의 온전한 집도 구한다. 무용수와는 거리가 먼 안무가가 되어 공연도 하며, 점심시간에는 혼자 춤을 추기도 한다. 그리고 마침내 프란시스는 진실로 미소 짓는다.


<프란시스 하>는 감히 꿈을 버리라고 종용하는 영화가 아니다. 꿈을 좇되, 현실을 인지하길 감독 노아 바움백은 제안한다. 프란시스가 영화 내내 무용수로서의 꿈을 품고 두 다리를 움직이는 곳 역시 실존하는 뉴욕 거리가 아니었는가.


나아가 그는 이 양립 속에서 우리의 일상도 너그러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무용단 사무 업무를 맡은 후, 프란시스는 더 이상 친구들에게 자신의 처지를 변명하지 않는다. 지난날, 레이첼의 집에서 자신이 무용수임을 증명하기 위해 아무도 묻지 않은 향후 일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도 이제는 없다.


대신 프란시스는 떳떳이 지인들을 공연에 초대한다. 안무가로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와준 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춰 가며 고마움을 전한다. 그런 프란시스의 모습 앞에 비로소 모두가 여유로이 기쁨을 나눈다. 무대 뒤편에서 절친 소피와 아무 말 없이 눈빛을 주고받는 순간, 프란시스가 그토록 바란 ‘비밀스러운 세계’를 공유하는 관계 또한 완성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프란시스는 새로운 집 우편함에 끼워 넣을 이름표를 만든다. 본명 ‘프란시스 할러웨이’가 적힌 종이가 이름 칸에 다 들어가지 않자, 그녀는 망설임 없이 종이를 접어 밀어 넣는다. 그렇게 그녀는 ‘프란시스 하’가 된다.


주어진 이름 칸에 맞춰 ‘프란시스 하’가 됐을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춤을 추고, 사랑하며, 소망한다. 이름이 잘리게끔 종이를 접어야 했을 때, 그녀가 전혀 슬퍼하지 않은 까닭도 이 때문일 테다. 프란시스가 내보인 타협은 현실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도약의 시발점이었다. 그녀가 안무가로서 선보인 공연에 콜린이 건넨 말이 영화 후반부 내내 감돈다. “정말 흥미롭고 너다운 작품이야. 아주 훌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