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하면 안된다.
세 살 아이를 데리고 온 엄마가 아이 이름으로 접수한다.
아이는 겁이 나서 운다.
아이를 달래면서 엄마가 말한다.
"너 안 보고 엄마 볼 거야"
엄마 말을 들었음에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진료 대상자라는 것을 안다.
엄마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기 때문이다.
설령 잠시 방심해서 자기를 접수하는 것을 못 들었고,
단지 병원이라는 곳이 무서워서, 혹시 자기가 진료를 봐야 할까 봐 미리 걱정이 되어서 울었다고 할지라도
10분 안에 누가 진료를 보는지 알게 된다.
아이는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이 말을 너무 자주 써먹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이미 아이에게 엄마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엄마가 아니라고 해도 아이는 믿지 않는다.
이렇게 엄마의 신뢰가 깨졌다.
아무것도 아닌, 고의가 아닌, 그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한 말이 가져올 나비효과는 의외로 엄청나다.
아이는 엄마의 다른 말도 믿지 못할 것이다.
가족 간의 관계 중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엄마와 아이 사이의 신뢰가 금이 가버린 것이다.
엄마를 신뢰하지 않는 아이는 당연히 다른 사람을 신뢰할 수가 없다.
진료실에 들어오는 순간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한다.
아무리 주사를 주지 않는다고, 아프게 하지 않는다고 통사정을 해도 전혀 들을 생각이 없다.
(실제로 나는 주사를 주지 않는다. 아예 주사실이 없다. 진료 볼 때도 아프지 않다.)
대성통곡을 하면서도 아이는 주변의 모든 상황을 다 감지하고 있다.
당연히 내가 하는 말도 들리지만 내 말에 대해서는 전혀 믿을 수가 없다.
나와는 일면식도 없지만, 나는 아무 잘못도 없이
아이가 보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거짓말을 하는 어른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엄마도 나를 자꾸 속이는데 전혀 모르는 아저씨가 나에게 거짓말을 안 할 리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하다.
눈은 아이의 협조가 없으면 진료 자체가 불가능하다.
꽉 감은 아이의 눈은 천하장사도 뜨게 할 수 없다.
물론 강제적으로 벌릴 수는 있다.
그러면 아프다.
설령 별로 아프지 않더라도 강제적으로 하게 되면 아이는 더 겁을 먹게 되고 더 아프게 느껴지고,
자신이 협조를 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에
'분명히 아프게 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아프게 하구만. 역시 어른 말은 믿으면 안 돼'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아이를 설득한다.
아이에게 신뢰를 심어주기 위해 강제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다른 병원에서 아프게 했어도 나는 아프게 하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믿어봐"
"눈 잘 뜨고 말 잘 들으면 정말 주사 안 준다."
아무리 얼르고 달래도 안된다
"너 계속 이러면 내가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안되면 할 수 없이 강제로 진료를 하면서 말한다.
"네가 눈을 잘 안 떠서 내가 조금 아프게 할 수밖에 없네. 말을 믿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아프더라도 이해해라"
결국 나도 아이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아이는 또 한 번의 경험을 쌓고 만다.
아데노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눈병이다.
눈병 자체만으로도 아이는 충분히 괴롭다.
다시 설득이 시작된다. 눈을 절대로 만지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주사를 안 줬지만, 눈 만지면 주사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눈 만지면 안 돼"
엄마에게도 단단히 주의를 준다. 아이가 눈 절대 만지지 못하게 하라고.
아이는 모든 상황을 다 꿰뚫고 있다.
이 눈병은 최소 15일간은 진료를 봐야 한다.
2-3일에 한 번씩 와야 한다.
두 번째 올 때는 아이는 한 가지를 알고 온다.
'말을 듣지 않았어도 주사를 주지 않았고, 생각했던 것보다 아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믿기지가 않는다.
들어오면서부터 운다. 엄마는 또 같은 말을 한다. 이런...
또 설득을 한다. 아이가 조금 협조를 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의 작은 협조에 힘입어 최대한 눈을 살살 만진다.
이미 확진은 되었기에 눈을 강제로 벌리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에 연고를 발라주고 아주 간단하게 진료를 끝낸다.
아이는 순간 당황한다.(내 추측이지만)
'어? 전혀 아프지가 않네? 왜 그렇지?"
나름 생각을 하게 된다.
세 번째 올 때 아이는 울지 않고 들어온다.
울지 않는 아이를 엄마는 달랠 필요가 없다.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울지 않고 들어 온 아이에게 나는 칭찬을 듬뿍 선물한다.
"오늘은 안 울었으니까 더 안 아프게 해 줄게."
아이는 눈을 뜨고 있다.
"눈도 잘 뜨고 이런 아이는 절대 주사 주면 안 돼"라고 간호사에게 말한다.
엄마는 놀란 표정이다.
처음에는 울어서 못 받았던 적외선 치료도 잘 받는다. 눈도 잘 감고 있다.
나는 이런 경우 꼭 오지랖을 떤다.
엄마를 잠시 들어오라고 해서 말한다.
"아이는 자기 진료 볼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금방 들통날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엄마는 동의한다.
눈병이 다 낫고 갈 때쯤이면 아이는 웃으면서 들어와서 웃으면서 나간다. 인사도 잘하고.
이 아이는 많은 것을 배웠다.
'어른 중에도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
'엄마가 병원에 데리고 와서 거짓말을 안 한다.'
'병원이라고 꼭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 말 잘 들으면 덜 아프다' 등등.
치료가 끝날 때까지 도저히 안 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다행히 많지는 않다.
이 경우는 엄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이 기만을 당했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로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진료도 치료도 너무 힘들다.
내가 힘든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의 눈 상태가 쉽게 낫지를 않는다.
아이는 두세 배의 고통을 겪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한두 살 때는 아직 자기가 누군지 스스로 깨닫거나 알지 못하다가
세 살쯤 되면 서서히 자기에 대해 알아 가게 되고 말버릇이나 행동거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습관들이 몸에 익기 시작한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은 세 살을 아주 중요한 때라고 생각했다.
세 살짜리 아이 앞에서는 나쁜 행동이나 옳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세 살 때부터 몇 년 간이 아이의 성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거짓말이라도 해서는 안 되는 시기이다.
아이가 단 한 번도 거짓말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다고 할지라도,
자라면서 많은 거짓말을 하게 된다.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이 거짓말이다.
인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악하기 때문이다.(성악설)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려 한다.
그렇다고 하여 거짓말을 정당화시켜서는 안 되기에,
아이들 앞에서 우리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특히 금방 들통 날 수밖에 없는 거짓말은 더욱더 해서는 안된다.
할 수 없이 거짓말을 하려면,
영원히 들통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아이를 키우면서, 혹은 다른 사람의 아이 앞에서 꼭 지켜야 하는 것일 뿐
어른에게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성인들끼리는 들통날 때 나더라도 일단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분명히 존재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