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기술 2

거짓말과 용서

by 장예만

나는 어릴 때 동네에서 소문난 효자였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 일도 잘 도와드리는 아주 착한 아이였다.

선행상도 많이 받았고, 중학교 때는 도교육감이 주는 선행상도 받았다.

거짓말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이중에, 마지막 말은 거짓말입니다.

부모님과 선생님과 친구들이 속았을 뿐이지 제가 거짓말을 전혀 안 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큰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기억을 정확히 할 수는 없지만,

잘잘한 거짓말은 꽤 했었습니다.

어쩌다가 거짓말이 들통났을 때는 매를 맞았지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까지는 거짓말이 그렇게 나쁜지를 몰랐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시는 선생님도 부모님도 거짓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하는데 친구랑 놀다가 해가 저물 때에야 집에 온 날

"뭐하다가 인자사 들어온다냐"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겁이 나서

"선생님이 남아서 아침 자습 내라고 해서 늦어부렀어요"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예전에는 선생님께서 주신 문제집을 보고 칠판 가득 써 놓으면 다음 날 아침자습 시간에 학생들이 노트에 적고 풀었었습니다. 당시에는 교과서도 돈 주고 사서 봐야 할 정도였으니까)

이게 들통이 나버려서 디지게(?) 맞고 나서야

거짓말을 할 때는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서야 고통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거짓말을 별로 한 기억이 없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착하다고 칭찬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서 빼준 것 같습니다.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때는 대학교 다닐 때였던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머리가 큰 것이지요.

부모님 말씀보다는 내 생각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의 빚을 갚기 위해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것이 들통나면 다 내놓아야 했기에 항상 "다 썼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 말 끝에 나온 아버지의 말씀은 "이 놈이 집 형편 어려운 줄 알면서 여자 똥구멍으로 돈을 다 쑤셔 넣는구먼"이었습니다.

그때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었거든요.

여자 친구를 사귀면 당연히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하는 것으로 교육을 받았었기에,

사귀기로 하자마자 집에 데려갔었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서도

나중에 엄마께서 동생으로부터 들어서 아시고(동생에게 절약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지요) 돈을 빌려달라고 하시기 전까지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습니다.


여자 친구랑 둘이 지리산 등산을 갈 때도 서클에서 놀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고,

데모를 열심히 하고 나서 너무 힘들어 휴학할 때도 부족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 휴학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기억에는 없지만, 이런 류의 거짓말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이랬던 제가,

아이들을 키울 때 아이들에게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도 철저히 지켰습니다.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약속을 철저히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천지가 개벽을 해도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약속을 안 하면 안 한 만큼 약속을 어길 일은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아빠는 약속을 아주아주 잘 지키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딱 한 가지 거짓말한 것이 있습니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에 대한 것입니다.

저도 '울면 안 돼'를 악용했었습니다.

당연히 나중에 아이들이 먼저 산타가 없다는 것을, 양말에 선물을 넣어주는 사람은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산타 할아버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하는 유쾌한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어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하는 거짓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거짓말이었다고 알고 나서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산타라는 것을 알았기에,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아예 대놓고 말할 수가 있었습니다.

설령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었다고 할지라도,

'운 것은 운 것이고 크리스마스 선물은 선물이다'는 것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울어서, 말 안 들어서 선물을 못 받을 것 같으면,

아빠 앞에서만 울지 않고, 그 기간만 말을 잘 들으면 다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산타는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지만, 아빠는 그렇지 않았으니까요.


거짓말인 것이 들통이 나더라도, 서로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짓말은 이미 거짓말이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선의의 거짓말'이 이 범주에 들어갈 수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내가 선의를 가지고 한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알고 나면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기에 '선의의 거짓말'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거짓말이라 할 수 있겠지요.(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을 할 때는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에서도 확실히 '선의'인지를 최선을 다해 따져보아야만 합니다.

들통난 후에 상대방이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면 이 '선의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키웠기 때문에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저희 아이들은 저에게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방금 또 거짓말을 했네요.

저희 아이들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저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제가 눈치챈 것만 해도 꽤 많이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양심이라는 것이 있다. 나쁜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양심이 없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다. 너희는 착하니까 거짓말을 하려고 마음을 먹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스스로는 알 수밖에 없다. 양심에 걸리는 말과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수없이 교육을 했지만,

거짓말을 안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저희 아이들이 착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사실, 부모가 자식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부모는 팔불출인 것도 사실이지만) 저희 아이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도 부모에게만큼은 아주 착합니다.

단 한 번도 큰 소리로 대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자신들의 일을 열심히 하니까요.(팔불출임을 아예 까놓고 말하네요^^)


거짓말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라,

어떠한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느냐가 구분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썼었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쳤었고,

(어차피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거짓말을 용인하는 것은 옳지 않겠지요.

키우는 동안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나쁜 거짓말을 덜하게 될 테니까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는 최소한 부모형제에게는 가능한 한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인인 자식에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라고 굳이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충분히 판단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리 하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하여 그것이 꼭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만은 아니기에,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단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정 부담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힌 것 같다면 시원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빌면 됩니다.

용서는 해주는 사람 마음이지만,

용서를 빌었을 때 용서해 주지 않는 사람과는 만나지 않으면 됩니다.

용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이고 가까이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기에

굳이 더 굽히고 들어가면서까지 만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설령 가족이라 할지라도.

잘못을 빌지 않는 사람을 용서할 수는 없겠지만(영화 '밀양'이 생각나네요)

진심으로 비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나는 절대 용서를 빌만한 잘못을 하지 않는다'라는 자만에 빠져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만한 잘못은 대부분 이 범주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 비는 것은 진정성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처벌은 달게 받고 정말 뉘우쳐서 용서를 비는 것이라면

기꺼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는 용서를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용서를 해주는 사람에게도 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들통날 경우에 상대방이 기분 나빠질 거짓말을 이미 해버렸고, 굳이 용서를 빌 생각이 없다면

절대로 들통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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