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유상증자 추진을 보며..
며칠 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기습적 3조 6천억 유상증자 발표를 보며, 역시나 소액주주들을 위해선 좀 더 강력한 제도적 접근이 불가피하겠구나 싶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유상증자 발표 당시 “국방 산업의 수출 확대, 생산능력 확충, 글로벌 M&A 추진”을 유상증자의 주요 목적이라 밝혔다. 유럽과 NATO의 군수 수요 확대, 방산 산업의 중장기 성장성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별다른 예고 없이, 주가가 역사적 고점을 찍은 직후 발표된 대규모 유증이었다. 단순히 자금을 조달하는 목적이라면, 자사주 매각, 차입, 정부지원 등 다양한 수단이 있음에도 굳이 희석을 동반하는 유상증자를 강행한 배경에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유상증자 직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1조 3천억 원 규모로 ‘한화오션’의 지분을 매입했다. 한화오션은 구 대우조선해양으로, 한화그룹이 인수한 조선 부문 계열사다. 문제는 이 지분을 매각한 주체가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였다는 점이다. 이들은 총수 일가가 100% 소유한 비상장사다. 결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상장사 자금으로 총수일가 회사로부터 고점의 지분을 사들였고, 다시 이를 충당하기 위해 시장에서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셈이다. 이 구조는 투자자들에게 “총수일가의 현금화 수단”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 → 김동관 부회장(장남) 중심의 승계 구도를 이미 공고히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지주회사인 ㈜한화 지분을 확보하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때 필요한 자금은 수천억~수조 원에 달할 수 있다. 즉, 현재 지분 구조상 김동관 부회장 등 총수일가가 직접 현금을 가지고 ㈜한화 주식을 사들일 필요가 있는데, 바로 이 자금의 일부를 이번에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유상증자 발표 이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가 13%이상 폭락한 것을 보면, 엄청난 재무적 지식이 없는 개미투자자들 마저도 ‘에이 좀 심하잖아!’하고 느꼈나 보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 기능만으로는 너무나 역부족이다. 우선 정보비대칭성이 확연하다. 일반 소액투자자는 ‘언제 유증할지’, ‘내부 거래 계획이 있는지’ 모를 수밖에 없다. 한편, 총수일가는 정보를 먼저 알고 준비하거나, 합병·유증 시점을 직접 설정한다. 그러니, 주가로 제재하긴 이미 늦어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는 구조’가 될 수 밖에.
게다가 소액주주들은 말 그대로 소액주주다. 지분 모두를 합치면 과반이 넘을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잠자는 주주들’로서 주총에도 무관심하다보니, 의사결정 과정에 직접적 관여가 힘들고, 결국 총수일가가 가진 20~30% 지분이 100% 권력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시장에서 문제로 인식해도, 제도적 제어 장치가 없다면 꼼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 기울어진 운동장 이슈로 귀결된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LG화학의 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SK이노베이션의 SK온 물적분할, 최근에는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 합병추진까지 소액주주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총수일가나 대주주의 이익을 챙기고, 자기돈을 들이지 않고 승계작업을 이뤄내는 마술 아닌 마술들은 끊이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역설적이지만, 이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유상증자는 상법개정안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킨 사례가 되었다. 상법 개정안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 및 전체 주주'로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대주주 의결권 제한, 집중투표제 도입 등이 포함돼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대주주의 일방적인 의사결정이 훨씬 어려워지고, 합병이나 유상증자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커진다.
시장 기능은 단기적 경고는 줄 수 있지만, 제도 없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결국 신뢰를 회복하려면, 이러한 시도들이 더는 통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 상법 개정은 그 출발점이다. 난 찬성이다.